'재건축 5적?'

분양가 상한제가 집값 만병통치약? '재건축 5적' 따로 있다

     17만 대 8000. 5%다. 스물 가운데 하나의 가격을 잡는다고 나머지 열아홉도 따라서 내릴까. 정부가 10월부터 시행할 계획인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예상 효과다. 가격이 시세보다 훨씬 낮고 공급량이 적으면 공급가격이 시세를 따라 올라가며 시장에 흡수되기 마련이다.

일반분양 적은 서울 주택시장
상한제가 공급만 위축시킬 우려
재건축 발목 잡는 또다른 변수
대단지·대형주택·고령·고층 등

기존 가구수가 6000가구가량으로 대단지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이 인근 고덕 주공단지들보다 10년 정도 늦다. 사진은 철거에 들어가기 전 전경. 


 
17만은 지난해 서울에서 사고판 주택 수다. 8000은 청약통장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아파트 일반분양분이다. 서울 전역이 상한제 적용지역으로 지정되면 상한제 대상이 되는 물량이다. 
 
신규 공급 물량을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 서울에서 주택 7만7000가구가 착공했다. 일반분양분이 10분의 1가량이다.
 
서울에서 민간택지 상한제 공급물량이 찻잔 속 태풍인 셈이다. 일반분양물량이 적은 이유는 주택 유형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기 때문이다. 아파트 이외 단독주택 등은 일반분양 절차 없이 판다. 지난해 서울에서 착공한 주택 중 아파트가 4만4000여가구로 58%다. 


 
일반분양물량 8000가구를 제외한 3만6000가구는 상한제와 상관없는 임대주택, 상한제에서 제외되는 도시형생활주택, 조합원 주택 등이다.
 
사업방식에선 일반분양분이 대부분 재건축·재개발 단지다. 지난해 재건축·재개발 아파트 일반분양분이 7000여가구로 전체 일반분양분 8000가구의 90%다. 
 
분양 물량 외에 입주에서도 재건축·재개발이 압도적이다. 지난해 입주한 아파트 3만7000여가구 중 재건축·재개발 단지가 80%가 넘는 3만1000여가구였다.


 
민간택지 상한제는 집값을 안정시키기보다 재건축·재개발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상한제로 분양수입이 줄어 재건축·재개발 사업비 부담이 커진다.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땅값을 계산해 분양가를 매겨야 해 조합원 분양가가 상한제 일반분양가보다 더 비쌀 수 있다.
 
민간택지 상한제가 서울 최대 아파트 공급원을 옥죌 수 있다.
 
재건축·재개발 발목을 잡는 데는 초과이익환수제(재건축부담금)와 분양가상한제 같은 정부 규제의 외부 요인만 있는 게 아니다. 내부 요인으로 사업에 불리한 조건들이 있다. 단지 규모, 주택 크기, 소유자 연령, 거주자 특성, 층수 관련이다. 대단지, 대형, 고령, 소유자 거주, 고층이다. 이 악조건들을 갖고 있으면 아무리 규제가 풀려도 대개 집안 다툼으로 사업이 속도를 내기 어렵다. 업계에서 ‘재건축 5적’으로 불린다.  


 
단지 규모가 크면 사공이 많은 배이고 가지 많은 나무인 셈이다. 의견 통일이 쉽지 않다. 서울에서 기존 가구 수 기준으로 준공까지 한 최대 규모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이 송파구 가락동 옛 가락시영 재건축 단지(송파헬리오시티)다. 조합원이 6600명이다. 인근 잠실 주공단지들이 준공한 지 10여년이 지난 지난해 말 입주했다. 
 
기존 가구가 5930가구로 옛 가락시영보다 적지만 건립 가구 수가 역대 최대인 1만2000여가구에 달하는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도 고덕동 주공단지들보다 사업이 한참 늦다. 이제 착공을 앞두고 있는데 고덕동 일대에서 사업이 가장 빨랐던 옛 고덕주공1단지는 12년 전인 2007년에 착공했다.  



가락시영과 둔촌주공은 모두 대법원까지 가는 내홍을 겪었다. 가락시영은 사업시행계획 승인 결의 무효 확인 소송, 둔촌주공은 조합설립인가 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 각각 휘말렸다. 확정판결까지 몇 년이 걸리고 사업이 뒷걸음질 치면서 사업 기간이 확 늘어났다. 
 
재건축 대장주로 꼽히면서 사업은 더딘 강남구 대치동 은마(4424가구)와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3930가구)도 ‘가지’가 많은 셈이다.
 
2000년 이후 준공한 서울 재건축·재개발 단지 141곳의 사업기간(추진위~착공)을 조사한 결과 기존 가구 수가 1000가구가 넘는 경우 7.6년, 1000가구 이하 6.6년이었다.


 
기존 집이 크면 재건축·재개발 메리트가 적다. 새집 외에 더 넓은 집도 중요한 사업 동인이기 때문이다. 10평 안팎으로 집이 좁았던 잠실 주공단지들과 반포주공 2,3단지 등의 사업이 빨랐던 이유다. 
 
주택이 크면 과거 소형주택 건설 의무비율 규제 등으로 재건축하는 집이 더 줄어들기도 했다. 대형 주택형 위주인 반포주공1단지가 반포주공2,3단지보다 사업이 뒤처진 이유의 하나다. 

9500여가구로 재건축한 서울 송파구 가락동 송파헬리오시티(가락시영 재건축)는 대법원까지 가는 내홍을 겪었다.
 


고령자가 많고 주인이 직접 사는 비율이 높으면 재건축·재개발 의지가 약해진다. 나이 들고 거주하고 있으면 굳이 상당한 시간과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재건축·재개발하고 싶지 않다. 세입자가 많다는 것은 투자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사업을 빨리 하고 싶어 한다.  
 
층수는 사업성과 관련이 있다. 고층 단지는 재건축·재개발로 늘릴 수 있는 주택이 저층보다 적다. 재건축·재개발 용적률(사업부지 대비 지상건축연면적 비율)은 같은데 고층 용적률이 저층보다 높기 때문이다. 잠실주공 등 5층짜리 저층 단지들의 사업이 빨랐다.  


 
5적 중 4개가 해당하는 단지가 재건축 ‘시계 제로’의 반포주공1단지다. 2017년 기준으로 반포주공1단지 소유자 평균 연령이 74세이고 절반이 넘는 소유자가 거주하고 있다. 대신 이 단지는 5층이어서 기존 용적률이 낮아 사업성이 좋다.
 
초과이익환수제에 이어 상한제마저 어른거리는 가운데 ‘5적’에 해당하는 단지들의 사업이 더욱 힘들 것 같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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