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 가르는 韓·日 중소기업 M&A

[갈길 먼 소재부품 국산화] 日, M&A지렛대로 기술기업 키우는데…韓선 `승자의 저주` 나락

기술력 가르는 韓·日 중소기업 M&A

日기업 작년 M&A 3850건
기술력 강화 지속성장 성공

한국선 재무악화 기업 매각
인수기업마저 수익 나빠져

     1949년 창립된 '히가시야마 필름'은 일본에서도 오랜 역사를 가진 공업용 필름 제조업체다. 광학용 하드코팅 필름, 자동차용 기능성 필름 등을 제조하는 히가시야마 필름은 2007년 자스닥(JASDAQ)에 상장하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경영에 위기를 맞았다.

위기 속에서 히가시야마 필름이 택한 해법은 인수·합병(M&A)이다. 중국 시틱그룹의 사모펀드(PE) 시틱 캐피털 파트너스에 2010년 5월 합병된 히가시야마 필름은 시틱그룹의 아시아 네트워크를 통해 중국 등 아시아 각국에서 더 많은 판로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M&A를 통해 기술력 유지에 성공한 히가시야마 필름은 시틱그룹과 협력하면서 경쟁력을 인정받아 2014년 9월 일본 오쓰카화학에 재매각됐다.


한국M&A거래소(KMX) 관계자는 "히가시야마 필름은 시틱 캐피털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기존 DNA를 유지하는 동시에 일본 기업에 머무르지 않고 '아시아 기업'으로 성장했다"며 "M&A 이후에도 종전과 큰 변화 없이 고용 승계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1959년 설립된 일본의 '천룡정기(천룡정밀기계)' 역시 M&A를 통해 자신들이 개발한 고유 기술과 기업 수명을 이어간 사례다. 전기 커넥터 조립 장치를 대기업에 납품하는 형태로 출범한 천룡정기는 창업주가 세상을 떠나면서 승계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천룡정기 파트너로 나선 것은 일본 경영 컨설팅업체 '세렌딥 컨설팅'이다. '일본의 중소기업을 지키고 싶다'는 기치를 내건 세렌딥 컨설팅은 2014년 6월 천룡정기를 인수했고, 이후 천룡정기는 기업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고용 승계도 무난하게 마무리했다.

일본이 글로벌 무대에서 '기술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기업이 위기의 순간을 맞았을 때 M&A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일본 민간 시장조사업체 '제국데이터뱅크(TDB)'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일본 중소기업 가운데 후계자를 구하지 못한 기업의 비중은 66%에 달한다. 2025년에는 일본 전체 기업의 3분의 1에 달하는 127만개 기업이 이 같은 이유로 '폐업 리스크'에 직면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같은 기류 속에서 지난해 일본 기업과 관련된 M&A 건수는 3850건(약 322조원 규모)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투자금융(IB) 업계 관계자는 "경영 위기 속에서 일본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M&A를 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일본이 소재·부품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할 수 있는 것도 이처럼 M&A를 통해 기업이 연속성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은 M&A에 성공해도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지난 7월 발간한 '기업인수 재무적 성과 : 한국 사례'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M&A는 주로 재무적 부실을 이유로 발생하지만 부실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보고서는 2004~2017년 국내 상장 기업 M&A 가운데 경영권이 바뀌지 않은 사례를 제외한 1379건을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피인수기업 가운데 53%가 이미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피인수기업 가운데 자본 잠식 상태인 기업은 61%에 달했고,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은 71% 수준이다. 대다수 기업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M&A된 것이다.



재무 상황 악화를 극복하기 위해 M&A를 택했지만 합병 후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의 재무적 성과 역시 오히려 악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피인수기업은 M&A가 이뤄진 지 2년 후를 기준으로 총자산순이익률(ROA)이 4.9%가량 하락했다. 인수기업 역시 ROA가 4.8% 하락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조은아 부연구위원은 "재무적 부실을 이유로 M&A를 택했지만 이후 재무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며 "M&A가 기업의 존속을 위한 방법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조 부연구위원은 "미국 등에서 재무적으로 건전한 기업들이 M&A를 통해 시너지를 추구하거나 기업 효율성을 높이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라고 밝혔다.
[정석환 기자]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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