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버린 정권, 왕따 당하는 대한민국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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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버린 정권, 왕따 당하는 대한민국

2019.09.02

‘옛말에 틀린 것 없다.’ 예전 어른들은 흔히 그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이 케케묵은 옛말이 자꾸만 생각나는 시절입니다.

공자(孔子)는 “말을 교묘히 둘러대고 얼굴빛을 좋게 꾸미는 사람 중에 어진 사람이 드물다.”고 했습니다. 교언영색선의인(巧言令色鮮矣仁)-진심이 없으면서 말만 번지르르하게 잘하고 약삭빠른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논어(論語) 학이(學而)편에 있는 말입니다.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어느 날 스승에게 정치의 기본을 여쭈어보았습니다. 공자는 “식량을 충분하게 마련하고, 무기를 충분히 갖추고, 국민들이 위정자를 믿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공이 “세 가지 가운데서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보았습니다. 공자는 “우선 무기를 버려라.”고 말했습니다.
자공이 “남은 두 가지 가운데서 또 한 가지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보았습니다.
공자는 “식량을 버려라. 죽음이란 옛날부터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백성이 위정자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정치는 더 이상 설 데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역시 논어 안연(顔淵)편에 있는 구절입니다.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백성이 믿어 주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다.’ 위정자로서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이 바로 국민의 믿음, 신뢰임을 강조한 말입니다.

논어의 이 구절은 2천여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정치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라면 골백번도 더 뇌었을 법한 교훈입니다. 그러나 말재간을 가장 큰 무기로 삼는 정치꾼들에게는 고린내 나는 헛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가 봅니다.

지난 7월 23일 한국과 일본이 역사 분쟁에 이은 경제 분쟁으로 격해 있던 시기에 실시된 러·중 합동군사훈련 도중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우리 공군기의 즉각적인 경고 대응에 이어 청와대는 "러시아 측이 이번 사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습니다. 나라 안 모든 언론매체들이 앵무새처럼 청와대 발표를 그대로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러시아는 “한국 영공을 침범한 적이 없다”고 반박하며 “한국 측이 안전을 위협하는 비전문적인 비행을 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청와대는 뒤늦게 이 같은 러시아 측의 항의 내용을 밝히면서 전날 발표의 잘못을 시인했습니다.

지난달 23일에는 한미일 군사 협력을 강조해온 미국의 우려 표명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를 결정, 발표했습니다. 이번에도 청와대는 “미국도 우리의 그런 결정을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미 국무부는 즉각 “한국 정부에 그동안 한일 GSOMIA 유지를 지속적으로 촉구해왔으며 협정 종료 결정을 양해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또 “미국은 문재인 정부의 GSOMIA 종료 결정에 강한 우려와 실망을 표명한다”고 거듭 밝혔습니다. 청와대가 또 한 번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미국은 이후로도 계속해서 한미일 3국 공조, 나아가 우방인 한국의 방어 전략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며 번복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미국 대사를 불러들여 협정 종료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 달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한미 군사동맹은 더욱 굳건해질 것이라고 바람을 잡았습니다.

국가 안위에 직결된 긴박하고 중대한 상황을 반복적으로 호도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는 불순하고도 위험천만한 짓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오로지 정권 유지를 위해 과거사를 들추고, 일본 때리기로 국민 여론을 가르고, 기업이 감당키 어려운 경제 분쟁을 자초하고, 이제는 안보 위기까지 교묘한 말장난으로 가리려는 위태로운 짓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사드 보복, 북한의 매몰찬 냉대와 통미봉남(通美封南) 술책에 이어 이제 국가 안보의 핵심이던 한미 군사동맹까지 흔들리는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큰소리치는 것처럼 정말 우리에게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떤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을 실력이 있다면야 무얼 걱정하겠습니까. 우방을 찾고 매달리는 형편은 예전과 다름이 없는데 문재인 정부는 우왕좌왕 집단 왕따의 길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미 신뢰를 잃은 정부, 국민이 어디까지 언제까지 믿을 수 있을까요?

한반도 운전자, 북미 대화 중재자-촉진자, 적폐 청산, 묵시적 청탁,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 포용국가, 토착 왜구, 신친일파, 국민청문회… 옛말의 교훈과 함께 그동안 새 집권세력이 베풀어 온 전례 없는 신조어 성찬이 떠오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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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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