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경제전쟁과 무모한 국산화 정책


[부품소재 독립 허와 실] "재탕, 삼탕 정책에 '눈 먼 돈' 전락 우려"

1991년부터 지원해 왔지만… 현실은 '지지부진'
사업 규모 및 시장 작아 무조건 지원 부정적
'중소기업 보호' 정책→'기업복지' 변질 가능성
"반일감정 앞세운 정부 지원, 혈세만 낭비할 수 있어"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로 양국간 무역 분야에 균열이 심화되고 있다. 일본이 국내 산업에서 의존도가 높은 부품소재를 볼모로 압박에 나서자 한국 정부도 맞대응하며 사실상 경제전쟁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이에 정부는 부품소재 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 대책을 속속 발표하고 범정부 차원의 경쟁력 강화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특히 '제2의 독립운동'으로까지 비유하며 국산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부 정책을 두고 회의론도 적지 않다. 과거에 발표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다 부품소재의 100% 국산화는 현실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기업의 발목을 잡는 각종 규제도 여전히 존재해 향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국내 부품소재 산업을 둘러싼 주요 현안과 문제점들을 짚어봤다.[편집자주]



국산화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는 것

연합뉴스 [김토일 제작]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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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부품소재 산업 육성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다. 일본이 부품소재를 볼모로 경제 보복에 나서자 이참에 관련 산업을 육성시켜 기술 독립을 이뤄내겠다는 의지다. 일본의 경제 압박이 관련 산업 성장을 위한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앞서 일본은 지난 7일 수출우대명단인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며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특히 국내 산업을 지탱하는 반도체 분야를 타깃으로 삼으면서 양국간 무역분쟁의 시작을 알렸다. 



이에 한국 정부는 기존의 '신중모드'에서 '강공모드'로 전환하며 맞불을 놨다. 한국의 백색국가(수출절차 우대국) 명단에서 일본을 제외한 것. 이와 함께 정부는 지난 5일 소재부품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한 지원 대책을 내놨다. 이를 통해 일본에 종속된 경제구조를 바꾸겠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당장 수급에 차질이 예상되는 100개 핵심 품목의 경우 인수합병(M&A) 및 기술확보에 모든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1~5년 내에 자체 공급 안정화를 꾀하기로 했다. 20대 품목은 1년 내에 80대 품목은 5년 내에 자립화를 이뤄내겠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R&D)에는 매년 1조원 이상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면서 7년간 '7조8000억원+α'를 투입키로 했다. 기술확보가 어려운 분야는 인수합병(M&A) 인수자금(2조5000억원 이상) 및 세제지원과 함께 금융지원 35조 등 총 45조원을 쏟아붓는다.



이와 함께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을 개정해 신규개발 수출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고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에도 예산 및 세제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한국 산업의 '고질병'으로 지적됐던 부품소재 산업의 경쟁력 제고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반도체, 석유화학 등 국내 대표 제조업과 밀접한 부품소재 산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 대책을 두고 임시방편에 그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사실 정부 차원의 부품소재 경쟁력 강화는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이미 1991년부터 다양한 정책을 펼치며 28년간 예산 투입이 이뤄지고 있다. 물론 과거에는 제조업과 밀접한 대형 기계 및 부품에서 최근 정밀화학으로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긴 하지만 부품소재산업 경쟁력은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실제로 지난 2013년 산업통산자원부는 소재부품산업 정책 간담회에서 2020년까지 소재부품 분야에서 일본을 제치고 미국 독일 중국과 함께 세계 소재부품 4강 지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한 바 있다.

이어 중소·중견 전문기업 수도 지난해 2770개에서 2020년까지 6000개로 늘리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그러나 정부의 공언과는 달리 일본에 대한 의존도는 여전히 높은 실정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교수는 "소재부품 산업 육성은 과거에도 지속했던 부분이고 현 정부에서 발표한 정책도 새로울 게 없다"며 "어느 누구도 성과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때문에 내수를 넘어 해외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소재 개발에 대한 현명한 투자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는 분석이다. 소재 산업의 경우 다품종 소량샌산에 그치는 데다 종류는 수천에서 수만 종류에 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존의 제조업과 달리 설비 규모 및 시장도 작아 운영 수익 및 국가 기여도도 상대적으로 작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반일감정을 앞세운 정부 지원은 혈세만 낭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부폼소재는 개별적으로 지원을 해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키기 어려운 산업"이라며 "필요한 소재만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운데 국산화를 모두 이루겠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에 대한 근본적인 정책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렇지 않고서는 위기요인이 사라지면 다시 흐지부지 되며 과거의 실패사례를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중소기업 정책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인 '중소기업 보호' 정책이 오히려 '기업복지' 정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며 "중소기업들의 정책자금 나눠먹기 식으로 변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R&D 지원사업의 개발성공률은 하고 95%인데 비해 사업화율은 20~40% 중반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의 R&D 성공이 사업화와 연결되지 못하고 지원금만 낭비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태규 연구위원은 "성공하지 못한 과거의 패러다임을 유지한 채로 소재·부품산업 육성에 자금을 쏟아 부어도 수년 뒤 기대한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오랜 기간 누적된 기술격차를 따라 잡으려면 단순히 투자확대로만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는 패러다임 전환이 있어야 그나마 그 격차를 좁힐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한 인식의 전환 없이 소재·부품산업의 취약성을 대기업의 책임으로만 돌리려고 한다면 소재·부품의 높은 대일 의존도는 한국경제의 상수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재범 기자 뉴데일리
에스앤애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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