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의 현실 [한만수]




www.freecolumn.co.kr

귀촌의 현실

2019.08.13

제가 사는 시골에서는 요즈음 포도 수확이 시작됐습니다. 예전에는 콩이나 옥수수 참깨 등을 재배하던 밭은 온통 포도밭입니다. 90년대만 해도 들판에 포도밭이 서너 군데였는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벼를 심어야 할 논에 포도가 자라고, 밭작물을 심어야 할 산비탈 땅은 복숭아나 포도에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으니 먹거리는 모두 사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읍내 마트에 가보면 농사를 짓는 분들이 카트에쌀이며 채소 등을 담고 있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밥상 위에 오르는 쌀이며 반찬거리만 시 먹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날 산을 오르다가 포도밭에서 생수를 마시고 있는 농부를 봤습니다. 포도 재배로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나서 귀향을 한 젊은 층들이 많습니다. 젊은 사람도 아니고 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분이 밭둑에 앉아서 생수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근처에는 오래전부터 옹달샘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산에서 전쟁놀이를 하다 목이 마르면 그 옹달샘에서 손으로 물을 퍼서 마시기도 했습니다. 일 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 옹달샘 물은 단맛이 났던 거로 기억됩니다. 비슷한 옹달샘이라도 물맛이 조금씩 다릅니다. 논 구석에 있는 샘물은 흙냄새가 살짝 섞인 맛이 납니다. 봄 소풍이나 가을 소풍을 가서 마시는 강물은 미지근하고 약간 비린내가 섞여 있습니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가서 점심을 먹고 마시는 계곡물은 차갑고 나뭇잎 냄새가 섞여 있습니다.

세월이 지났지만, 옹달샘 물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플라스틱병에 들어 있는 생수를 마시는 모습이 꽤 낯설어 보였습니다. 나중에야 우연한 기회에 이유를 알았습니다. 옹달샘 물은 사람이 먹는 것이 아니고 농약을 타서 포도에 뿌리는 용도였습니다.

고모님 댁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첩첩 산골이었습니다. 버스도 다니지 않아서 시오리 길을 걸어 들어가야 할 정도로 산동네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읍내 장을 보러 갈 때는 단체로 달구지를 타고 다녔습니다. 장에 갈 때는 찹쌀이며 콩에, 들깨나 참깨, 산나물을 뜯어말린 것들을 들고 갑니다. 장을 보고 집으로 갈 때는 빨랫비누며, 국수며 밀가루, 호미며 삽 같은 것을 들고 달구지에 탑니다.

고모님 댁 사랑채 뒤에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여름에 사랑방 뒷문을 열고 내려다보면 바닥까지 선명하게 보일 정도의 맑은 물이 시원하게 흐르는 광경이 어린 제 눈에도 아름다웠습니다.

그 시절은 어딜 가나 우물이 귀했습니다. 부잣집 마당에나 깊은 우물이 있고 다른 사람들은 공동우물을 많이 이용했습니다. 고모님 댁은 계곡에서 흘러오는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쌀을 씻고, 세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빨래도 하고 가끔 쓰레기도 버립니다.

물에 버린 쓰레기는 빠른 물살에 금방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물에서 썩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든지 비닐 종류가 흔하지 않을 때라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사랑방 문을 열고 바라보면 맑게 흐르는 계곡물을 볼 수 있습니다. 흙벽 집을 헐어 버리고 새로 지은 집이라서 창문이 넓어 계곡 위쪽 산등성까지 보입니다. 그러나 산기슭에 있는 밭에 뿌린 농약 성분이 계곡으로 흘러들어 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계곡물을 식수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물살은 여전히 빠르게 흐르지만, 쓰레기도 버리지 않고 빨래도 하지 않습니다. 물에 손을 담그면 손등에 물그림자가 어른거릴 정도로 맑지만, 왠지 조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냇가에 가면 장마로 황토물이 무서울 정도로 거세게 흐르는데도 물살이 약한 곳에서 족대로 고개를 잡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가끔은 어른들이 싸이나라 부르는 청산가리를 양말 안에 넣어서 냇물에 풀어 고기를 잡기도 했습니다. 싸이나를 풀면 냇물이 하류로 흘러가면서 풀숲에 숨어 있던 물고기들이 배를 허옇게 내보이며 떠다닙니다. 메기며 뱀장어도 술에 취한 것처럼 비실비실 헤엄을 치고 다녀 쉽게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싸이나가 청산가리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냥 사람도 먹으면 죽을 수 있는 독한 약이라는 것 정도밖에 몰랐습니다.

싸이나를 먹고 죽은 고기의 내장을 버리고 매운탕을 끓이거나 냄비에 조려서 온 가족이 맛있게 먹었습니다. 싸이나를 뿌리면 한동안은 냇물이 텅 비어 버린 것처럼 물고기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나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손바닥만 한 붕어며 피라미에 버들치가 한가롭게 노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겨울에는 소금에 절인 배추를 씻던 냇물에는 물고기들이 예전보다 더 많이 떼를 지어 다닙니다. 하지만 어종이 다양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모래무지며 뿌거리라 부르는 동사리나 기름쟁이라 부르는 기름종개 같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요즘에는 2급수에도 사는 붕어며 피라미만 깨진 플라스틱 그릇이며, 푸르스름한 이끼가 늘어 붙은 물통 사이를 헤엄쳐 다닙니다.

수면에 떠다니던 소금쟁이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어도 바위틈새에 끼어 있는 운동화나 비닐조각, 헌옷 가지 등은 쉽게 보입니다.

모 종편방송에서 방영하는 ‘자연인’이라는 프로를 가끔 봅니다. 산속에 홀로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프로인데 가끔 헛웃음이 나옵니다. 현실하고 동떨어진 설정도 어이가 없거니와 과연 요즘 말 그대로 자연인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반문도 생깁니다.

귀촌 프로는 한술 더 뜹니다. 마당 나무 그늘의 평상이나 원두막에서 유기농 반찬을 먹는 광경은 약방에 감초처럼 안 빠집니다. 하지만 농부들이 집 마당을 왜 시멘트로 덮었는지는 보여주지도 않고 설명을 해주지도 않습니다.

전원생활은 곧 잡초와의 전쟁을 뜻합니다. 첫새벽부터 일어나 마당의 잡초만 뽑아도 금방 하루해가 갑니다. 마트에 가면 일이천 원에 불과한 상추를 밥상에 올리려면 하루가 멀다고 땡볕에서 텃밭을 가꾸어야 합니다. 결국은 몇 해 지나지 않아서 마당에 시멘트를 깔고 마트를 향해 차를 몰고 가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