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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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 [박종문]

2019.08.10

며칠 전 메일 하나를 받았습니다.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퇴직동문 모임인 '연우회'가 오는 23일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단'을 발족하여 KIST 안의 600여 평 부지에 100평 규모의 기념관과 해외 석학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짓기 위하여 100억 원 규모의 건립기금 모금운동을 벌인다고 합니다.

과학기술 발전은 국가 지도자의 관심을 먹고 자란다고 합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설립된 KIST는 지난 50여 년 동안 20여 개에 달하는 연구소에서 4천여 명의 석·박사급 과학인재를 길러내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눈부신 공헌을 하였습니다. 박원훈 연우회장은 “기념관이 완공되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정확히 인식한 지도자가 국가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산 교육 현장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저도 KIST와 인연을 맺을 뻔하였습니다. 대학 4학년 1학기 말 시험을 본 후인 1970년 6월, 친구의 권유로 '연습 삼아' 대학원생 출신을 선발하는 KIST 연구원 선발시험에 응시하였습니다. 친구가 농산물 연구실에 응시하기에 저는 수산물 연구실을 택했습니다.

경쟁률이 무려 13대 1이었는데 덜컥 합격을 하였습니다. 한 명을 선발하였으니 당연히 KIST에 취직되는 줄 알고 기다렸는데 반년이 가깝도록 감감 무소식이었습니다. 알아보니 민간기업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따야 그 예산으로 연구원을 채용하는데 연구프로젝트를 따지 못해 연구원을 채용하지 않기로 하였답니다.

그 당시에는 기업 공채는 없고 기업에서 학교로 졸업 예정 학생을 보내 달라고 하여 신입사원을 채용하던 때라서 12월이 되었으니 입사시즌은 다 지나갔고, 저는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습니다. 대학 선발 경쟁률 9대 1, KIST 연구생 채용 경쟁률 13대 1을 다 뚫었는데 취직 문을 뚫지 못하다니!

12월 초, 대학 친구가 '동신제약 창업사원 모집'이라는 조그마한 신문 광고 하나를 오려 왔습니다. '에라, 찬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다, 우선 취직부터 하고 보자'라며 듣도 보도 못한 그 회사에 입사원서를 냈습니다. '창업 멤버'라는데 호기심이 발동했고, 이과 출신이니 생산부에 지원하였습니다.

그런데 면접시험 때 영업부 상무님이 “어이 박 형, 제약회사는 영업부가 꽃이라네. 제품을 아무리 잘 만들면 뭘 해, 팔아야 꽃이지!” “뭐, 꽃이라고요? 그럼 꽃을 따야지요.”
그래서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한 제가 졸지에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바로 서울 회현동 엉성한 동신제약 사무실에서 신입사원 7명이 '세일즈맨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3주의 세일즈맨 교육이 제 평생의 밑천이 될 줄이야! 

8개월의 동신제약 영업사원 시절 동안 영업만큼은 펄펄 날았습니다. 6명의 서울 근무 동료들이 10병의 알부민을 팔 동안 저는 부산에서 그 비싼 알부민 50병을 판매하였고, 첫 생산제품인 일본뇌염 예방 접종약을 동아제약과 경쟁하여 압도했습니다. 영등포 소재 34개교 초등학교 중 30개 교를 석권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습니다.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은 병원, 약국 영업. 하도 돌아다니다 보니 '다리가 아파서' 그만두고, 수출드라이브 정책이 한창인 때라 ‘무역’이라는 말에 혹하여 직장을 옮겼습니다. 조그마한 오퍼상이었는데 그래도 내가 선택한 곳은 운 좋게도 세계 최대 곡물 메이저인 카길(Cargill) 한국 대리점이었습니다.

그 회사에서 무역상(merchant)으로 30년을 근무하고 한국 지점장을 끝으로 은퇴하였는데, merchant라는 게 결국은 세일즈맨입니다. 약품이나, 곡물이나, 소금이나, 석유나, 선박용선(chartering)이나, 자금조달(financing)이나 상품만 달랐지 ‘판매'라는 근본은 동일합니다. 

단순히 물건을 팔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모든 구매자는 일단 사지 않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쇼핑을 하러 왔는데도 사라고 권하면 도망갈 생각부터 합니다. 판매를 성공적으로 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팔아서 고객의 마음을 사야 합니다. 물건에 대한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왜 그 상품이 고객에게 유용하고 유익한지, 왜 그 상품을 ‘지금 나로부터 사야’ 하는지를 합리적으로 고객에게 설명하면 사지 말래도 삽니다.

물건을 너무 싸게 팔면 회사에 대한 '죄악'입니다. 지나치게 비싸게 팔면 고객에 대한 '죄악'입니다. 합당한 가격에 팔아서 회사로부터는 '잘 팔았다', 고객으로부터는 '잘 샀다'라는 말을 들어야 진정한 세일즈맨입니다.
인생 최대의 세일즈는 '합당한 가격'으로 자기 자신을 배우자에게 파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한 배우자가 지금의 아내! 

대학생이던 딸들에게도 그렇게 교육시켰습니다.
-성적은 떨어져도 인기는 떨어지지 마라.
-적어도 3명 정도는 동시에 사귀어서 사람 보는 눈을 키워라.
-여자라도 밥은 얻어먹되 차는 네가 사라.
-함부로 너무 쉽게 마음을 주지 마라. 조금 거리를 띄우고 걸어라. 그러나 따라오지 않는다고 홱 돌아서서 가지 말고 잠깐 기다려 주어라.
-너 자신을 너무 비싸게 팔려 하지 마라. 네 눈에 85점이면 백점짜리이고, 네 눈에 95점이면 백점이 넘는 위험한 수치라서 자칫 반품당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위험이 있다. 과유불급이니라.

그래서 구한 것이 지금의 사위와 며느리. 3명의 자녀가 각각 둘씩 낳아서 지금까지 별 말썽 없이 잘 살고, 아이들도 잘 키우고 있으니 저의 교육이 잘못된 건 아닌 모양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듯하지만 가성비 높은 개똥철학과 '성실, 정직, 근면'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가슴에 새기고 지금도 보무당당히 한세상을 거침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메일을 받은 날, 카길 대리점 사장님께 점심을 대접하는 날이었습니다. 카길을 그만둔 지 33년이 되었지만 제게 많은 것을 베푸신 그분의 고마움을 잊으면 안 되기에 가끔씩 전화도 드리고 식사 대접도 합니다. 그날도 성심성의를 다하여 사장님을 대접하였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세 영어 단어는 Mother, Love, Appreciation(감사)입니다. 그런데 감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수두룩합니다. 6·25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상자를 낸 북한과 중국에는 한없이 관대하고, 수만 명 희생자를 내며 대한민국을 백척간두의 위험에서 구하고 원조를 한 미국, 많은 기술을 전수하여 이 나라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일본을 배척하여 오늘의 환란을 자초한 인사들에게 ‘감사’라는 단어를 누가 가르칠 수 있을까요? 나라의 앞날이 심히 걱정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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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종문

Cargill 한국 지점장 역임, 현 (주)지미앤초이스푸드 대표
여행작가, TOURPEN CLUB(여행작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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