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서 썩은 내가]'태양광 돈봉투'에 두쪽 난 창녕 600년 집성촌


'태양광 돈봉투'에 두쪽 난 창녕 600년 집성촌


시공업체, 마을회관에 수천만원 들고 와 설득해도 주민들 반대 

집집마다 각개격파식으로 돈봉투 돌리자, 이웃끼리 서로 의심 


지난달 21일 경남 창녕군 이방면 동산리 산자락에 공사 중인 태양광 시설 일부가 붕괴했다. 제5호 태풍 다나스가 몰고 온 집중호우 탓이었다. 석축 일부와 토사 등 150~200㎡가 무너져 내렸다. 지름 30㎝가 넘는 돌덩이와 토사가 인근 감나무 밭까지 밀려 내려왔다.


"아이고, 저게 다 뭐꼬. 600년간 조용했던 마을을 저게 다 베려놓더니 이제는 무너져뿟다." 지난달 30일 공사 현장에서 불과 100여m 떨어져 있는 동산마을의 주민 노모(70)씨가 탄식했다. 무너진 석축은 긴급 복구공사를 마치고 비닐에 덮여 있었다. 이 마을은 광주 노(盧)씨 집성촌이다. 대대로 40여 가구 60여 명이 모여 산다. 태양광 설비 공사 중인 산은 주민들이 구름달산이라고 부르며 영험하게 여기는 곳이다. 노씨는 "비가 많이 온 것도 아닌데 벌써 두 차례나 석축이 무너졌다"며 "코앞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불안해서 어떻게 살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31일 오후 경남 창녕군 이방면 동산마을 주민 노모(73)씨가 공사가 중단된 태양광 패널 설치 현장에 서서 광주 노씨 집성촌 쪽을 가리키고 있다. 오른쪽은 창녕 태양광 설비 업체가 주민에게 피해가 없도록 공사를 진행하겠다며 돌린 이행각서와 돈 봉투. /김동환 기자·주민 제공


주민들은 "태양광 공사 때문에 마을 민심이 흉흉해졌다"고 했다. 지난 4월 마을 인근 2만여㎡ 부지에서 한 업체가 7800Kw급 태양광발전 시설 설치 공사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태양광 시설 설치 허가에 주민 동의는 필수 요건이 아니다. 업체는 일일이 주민들의 동의를 얻지 않고 착공에 들어갔다. 


그러나 구름달산에 거대한 굴착기가 오가는 장면을 목격한 주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5월은 농번기라 다들 일하기에 바빴다. 6월에 접어들면서 너도나도 "공사를 중지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업체가 나섰다. 그들의 손에는 현금 봉투가 들려 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업체 측이 마을회관을 찾아온 건 6월 말이었다. 지난 6월 24일 주민 56명이 공사 중지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창녕군에 낸 직후였다. 주민들은 "업체 관계자들이 마을발전기금으로 쓰라며 수천만원 뭉칫돈을 들고 왔다"고 했다. 당시 회관에 모여 있던 주민들은 돈을 거부했다.


며칠 후 업체 측은 일대일로 주민 공략에 나섰다. 가가호호 방문하며 각서와 봉투를 건넸다. "누구네가 돈을 받았고 누구네는 안 받았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다른 주민 노모(73)씨는 "업체에서 주로 나이 많은 사람이나 혼자 사는 할머니를 찾아가 봉투를 받으라고 졸랐다"고 말했다.


이후 마을은 봉투를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으로 갈라졌다. 황모(66)씨는 "42년 전 이곳으로 시집온 후 처음으로 주민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을 보게 됐다"며 "태양광이 마을을 다 버려놨다"고 했다. 주민 노모(69)씨는 "할머니 2명은 마을이 시끄러워지자 받았던 돈을 다시 돌려주겠다고 했다"며 "업체에 주려고 마을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마을 주민들은 불화의 뿌리를 뽑기 위해 단속에 나섰다. 지난달 22일 태양광 허가를 취소하고, 주민 매수를 막아달라는 내용으로 군청에 2차 진정서를 낸 것이다.


업체 관계자는 돈 봉투를 돌린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시골 산지에 태양광을 설치하는 업체들 사이에서는 돈 봉투가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구름달산 태양광 설비 업체 대표 A씨는 "어떤 곳에선 아예 이장이 나서서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며 "국가가 태양광발전을 장려해서 합법적으로 허가받고 하는 공사인데 왜 돈을 줘야 하는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창녕군은 주민들의 진정이 접수된 직후 구름달산 태양광 공사를 일단 중지시켰다. 업체에서 설계를 임의로 변경한 부분이 발견됐다는 이유다. 추후 재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주민 노씨는 "조상 대대로 지켜온 마을을 각종 폐기물, 지하수 오염, 산림 훼손 등으로부터 지켜내는 건 후손의 책임"이라며 "공사가 재개되지 못하도록 마을 주민들의 뜻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창녕=김주영 기자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02/20190802002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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