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싸는 글로벌 큰손들..."한국시장 먹을게 없네"


동북아 금융허브 꿈 가물가물

      요즘 홍콩에서 한국 주식 중개를 담당하는 브로커들은 언제 해고 통보를 받을지 몰라 전전긍긍이다. 미국계 금융회사인 A사는 한국 시장 담당 브로커들을 한때 7명까지 고용했지만, 야금야금 줄이더니 최근 2명으로 줄였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수년 전 글로벌 펀드들이 한국 시장에서 8~12종목을 골라 투자했지만 지금은 5종목이 안 될 때도 많다"면서 "한국 기업들의 실적 전망이 어둡다 보니 한국 증시에 대한 기대감도 낮고 관심도도 떨어졌다"고 말했다.

일러스트=박상훈

감원 위기에 처한 브로커들은 새 일자리를 찾으려 하지만,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헤드헌팅 업체 대표 김모씨는 "국내 금융회사들도 베트남 같은 고성장 시장으로 진출하려는 추세다 보니, 한국 주식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국 자본시장의 매력이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외국계 자산 운용사들이 한국에서 철수한 데 이어, 해외 지점의 한국 시장 담당자까지 줄이고 있다. 이찬우 전(前)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과거엔 외국계 금융사들이 한국 경제에 투자하면 먹을거리가 있다고 보고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돈 벌 기회가 줄어든다고 판단해 떠나고 있다"며 "한국 자본시장의 미래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국 시장은 돈 안 돼" 짐 싸는 외국계 운용사들
2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에서 영업 중인 외국계 자산 운용사들은 최근 5년간 사업을 축소하고 있다. 임직원이 크게 줄었고 펀드 수탁액은 대부분 반 토막 났다. 세계적 큰손으로 통하는 골드만삭스자산운용(2013년)과 JP모건자산운용(2018년)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게 대표적이며, 피델리티·맥쿼리 등 주요 외국계 자산 운용사들의 임직원은 최근 5년간 289명에서 148명으로 줄었다. 다섯 운용사의 펀드 수탁액도 2012년엔 14조원대였으나,지금은 4조원대로 65%나 감소했다.

한 외국계 운용사 대표는 "처음 한국에 진출할 때만 해도 한국 시장의 급팽창을 기대했는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엇비슷하다"면서 "남아 있는 운용사들도 펀드를 새로 내놓기보다는 기존 펀드 관리에만 관심 갖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금융사 판매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모 펀드 시장이 축소된데다, 외국사들의 비교 우위가 사라지는 것도 한국 시장 철수 배경으로 꼽힌다. 과거에는 외국계 운용사들이 해외 인기 펀드를 단독으로 들여와 판매해 인기를 끌었지만, 이제는 국내 금융사들도 똑같이 해외 펀드를 들여와 판매하고 있다. 은행 등 계열사가 있는 국내 금융 그룹들에 비해 판매망도 부족하다.

외국계 운용사 관계자는 “수익은 늘지 않는데 펀드 하나 판매하려고 ‘투자 안내서’를 만들어야 하는 등 비핵심 업무에 많은 인력과 비용이 들다 보니 차라리 한국 사업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시장 발전 걸림돌 제거해야
외국계 금융사의 한국 시장 탈출은 한국 금융시장의 발전 기회가 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박영석 자본시장연구원장은 “동북아 금융 허브가 되겠다는 목표와도 반대”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동북아 금융 허브를 추진했지만 금융 중심지로서 경쟁력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영국 컨설팅 그룹 지옌이 3월 공개한 세계 금융 중심지 순위에 따르면, 서울은 세계 112도시 중 36위를 차지해 2015년 9월(6위)과 비교해 30계단이나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홍콩·싱가포르는 금융 상품 투자 시 이익이 나거나 배당을 받아도 세금을 전혀 물지 않는 반면, 한국에선 해외 펀드에 가입해 수익이 나면 배당소득세(15.4%)는 물론, 종합과세·건보료 부담까지 생길 수 있어 해외 펀드를 많이 판매하는 외국계 금융회사에 크게 불리하다는 지적이다.

김영수 브룩필드 공모 펀드 부문 대표는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운용사들은 주식·채권 같은 전통 자산을 굴리고, 공모 펀드 위주의 사업을 펼쳐 왔는데 한국 시장 투자 트렌드가 사모 펀드와 실물 자산 중심의 대체 투자로 바뀌면서 고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경은 기자 김민정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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