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무역전쟁] 한국 없인 IT생태계 타격"… 애플·대만기업도 큰 걱정


[일본의 경제보복]
日보복에 도미노 파장 우려

     일본이 이달 초 한국을 대상으로 단행한 반도체 핵심 소재의 수출 규제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세계 IT(정보기술) 산업계에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 조치가 세계 IT 생태계의 국제 분업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D램 시장의 70% 이상 차지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공급이 흔들리면, 반도체를 부품으로 쓰는 미국·대만·중국·일본 등 전 세계 IT기업도 제품 생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의 류더인(劉德音) 회장은 지난 18일 주주들에게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를 시작한 것이 올 하반기 최대 불확실성 요인"이라며 "IT 산업의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TSMC는 미국 애플·퀄컴·엔비디아 등의 비(非)메모리 반도체를 위탁 제조하는 기업이다. 올 1분기 시장 점유율은 48%다. TSMC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한 쌍' 기업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장기화될 경우, 한국산(産) 메모리 반도체의 공급이 줄어들고 이를 부품으로 쓰는 애플 아이폰·델 PC의 생산량도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TSMC가 받는 반도체 위탁 주문을 줄이는 핵심 원인이 될 수 있다.

일본發 수출 규제는 세계 IT산업의 분업 시스템 파괴
애플·아마존 등 미국 대표 IT기업들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영업·마케팅 담당 임직원들에게 "반도체 공급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냐"는 문의를 계속하고 있다. 애플은 오는 9월 아이폰 신제품을 공개·출시할 전망이고, 아마존 등은 하반기부터 클라우드(가상 저장공간) 사업 확대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 된다. 이런 계획들은 일본의 대한 경제 보복으로 차질을 빚을 수 있다. 2014년 소니에서 분사한 일본 PC업체 바이오(VAIO)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 감소에 대비하는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바이오 관계자는 "한국 외 다른 지역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조달받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중국 IT 업계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일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한 고순도 불화수소 중 4000t가량이 작년 한국을 경유해 중국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공장에 들어갔다"며 "일본의 규제로 인한 불똥이 중국에 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산 불화수소의 중국 수출까지 가로막히면서 현지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빚고, 화웨이·샤오미 등의 반도체 수급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소매 시장에서 거래되는 D램 현물가격은 폭등세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는 지난 19일 DDR4 8Gb(기가비트) D램의 1개당 현물가는 3.736달러라고 밝혔다. 지난 1일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가 공식 발표된 이후 19% 올랐다. 번스타인증권의 마크 뉴먼 애널리스트는 "만약 규제가 계속된다면, 세계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한 번도 본 적 없었을 정도로 급격히 치솟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D램 70% 한국産, 생산 차질 땐 대안 없다


세계 IT 산업에서 한국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데이터를 처리하는 D램과 저장하는 낸드플래시는 '산업의 쌀'이라고 불릴 정도로 필수 부품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작년 세계 D램 시장의 72.4%, 낸드플래시 시장의 49.5%를 차지했다. 미국 애플·델, 중국 화웨이 등은 매년 수조원어치의 반도체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구매한다. 일본의 규제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제조 라인이 멈춘다면 연간 22억원대의 IT 기기 생산도 중단될 수 있다는 의미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에도 직격탄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분석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D램과 대용량 낸드플래시가 필수다. 현재 두 분야에서 모두 세계 최첨단 기술을 갖춘 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뿐이다.

일부에서는 미국 마이크론, 일본 도시바 메모리 등이 한국 기업들을 대체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반도체 전문가들은 "지금 당장 대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 마이크론은 D램 미세 공정 기술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1년가량 뒤처진 상태다. 도시바는 심각한 재정난을 겪어오다 작년에야 새로운 주인을 맞이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사태가 장기화되면 앞으로 수년간 메모리 반도체 기근 현상과 IT 산업의 분업 구조 붕괴에 따른 피해를 전 세계가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동철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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