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복지(福祉)와 대중영합주의(Populism) [이성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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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복지(福祉)와 대중영합주의(Populism)

2019.07.19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서로 뒤질세라 앞을 다투며 중·고교생 교복 무상 지급, 무상 급식, 청년 실업 수당 등등 ‘돈 선심 정책’을 발표, 이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는 이를 ‘포퓰리즘’이라며 걱정의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방자치정부든 중앙정부든 어려운 국민에게 베풀겠다고 하는데 왈가왈부할 사항은 아니라고 하지만, 필자가 지적하고픈 것은 행정의 맨 위에 있는 정치인들이 너무 표피(表皮)적으로 접근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 곳곳에 도움이 필요한 곳이 너무 많고, 정책 입안에서 우선순위 개념이 없어 즉흥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독일 유학 시절에 필자는 6년 전 과정 동안 등록금을 내본 적이 없습니다. 이른바 ‘무상교육’의 수혜자였습니다. 게다가 대학생으로 생활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평가 절차에 따라 장학금이란 명목으로 보조받았으며, 가끔은 공부에 필요한 서적을 사서 학업에 정진하라고 책 구입비도 받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생소할 정도로 ‘왕무상교육’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외국 국적자라고 해서 어떤 차별 대우를 받은 적도 없습니다. 이러한 장학제도는 프랑스,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삼국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교육정책의 바탕에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국가가 책임지고 투자하겠다는 기본 철학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치원과 초·중·고교가 다르지 않습니다. ‘선(善) 포퓰리즘’이라 하겠습니다. 국가 차원의 바람직한 교육 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중·고등학생 교복이나 점심을 무상으로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한계와 절제의 정신’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복지사회에서 혜택을 받을 때 유럽 매체에 실린 사진 한 장이 마음을 아프게 한 기억을 지울 수 없습니다. 서울 한복판 옛 미도파백화점 앞에 한 걸인(乞人)이 하지가 절단된 몸으로 보도에 엎드려 동냥하는데, 그 곁을 지나가는 수많은 행인은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모습이 사진 보도 자료에 크게 부각된 것입니다. 1960년대의 씁쓸했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50년,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는 현실이 웬일인지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바로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내몰리는 국민 계층이 국가의 복지 혜택을 우선으로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가 싶어서입니다. 초·중·고등생의 교복비 지급, 실업 수당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뒤밖뀐 우선순위, ‘악(惡) 포퓰리즘’의 본보기이기 때문입니다.

대한의사협회에서는 2011년부터 의사 회원이 중심이 되어 건강보험 가입자 중 차상위계층의 건강보험료를 대납해주기 위해 기금 조성을 위한 ‘한국의료지원재단(이사장 유승흠)’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차상위계층의 상황이 대단히 열악하기 때문입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우선으로 돌보아야 할 대상이라는 말입니다.

대학병원급 대형 병원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중소 병원의 응급실을 비롯한 제반 시설이 얼마나 열악한 상태인지를 책임 있는 자가 살펴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합니다. 국내 병원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싸구려 ‘비지떡’ 수준인지 국가 차원에서 챙겨야 합니다. 그 ‘싸구려 서비스’를 환자가 받지 않도록 정부는 어떻게 의료환경을 개선해야 하는지를 심도 있게 검토하여야 합니다. 최선의 의료를 받을 권리가 분명 국민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의료복지가 우선으로 챙겨야 하는 것은 그만큼 사회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 국가 살림살이의 지표인 GDP가 3만 달러를 넘었다고 구가(謳歌)하는 시점입니다. 자랑스러운 사실이기는 한데, 거리로 내몰리는 사회 계층이 적지 않다는 점을 국가가 직시하고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반세기 전 우리의 GDP가 100달러 수준을 맴돌던 상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당한 '참 복지권'은 국민이 누릴 기본권이며, 국가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덕목이기도 합니다. ‘선 복지’는 결코 대중영합주의가 아닙니다.

(독일과 관련한 위 내용은 1950~1970년대 환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의 상황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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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전 한국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전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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