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험 5년 뒤 고갈, 사회보험을 쌈짓돈처럼 쓴 결과다/ 국민연금은 요술 모자가 아니다

고용보험 5년 뒤 고갈, 사회보험을 쌈짓돈처럼 쓴 결과다


[사설]

   실업급여의 재원이 되는 고용보험기금 실업계정이 현행 보험료와 지급액을 유지한다면 2024년 고갈될 것으로 국회예산정책처가 추계했다. 근로자와 사업주가 절반씩 부담하는 고용보험료를 쌓아둔 고용보험기금 실업계정은 지난해 적자로 돌아섰다. 올해부터는 매년 1조 원 이상 적자를 내다가 5년 뒤면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실업급여 지급액은 6816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20.8% 증가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이와 연동된 실업급여 수급액이 오른 데다 고용 참사까지 겹치면서 지출이 급격히 늘어난 원인이 크다. 하지만 정부가 주52시간 시행 기업을 지원하는 일자리함께하기사업에도 투입하는 등 고용보험의 적자 폭을 이중 삼중으로 키운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가 통상임금의 80%까지 확대한 육아휴직 급여 등 모성보호·육아지원사업 역시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출된다.


동아일보

edited by kcontents




실직자가 다시 일자리를 찾는 동안 생계 지원과 만성적 실업에 대비한 사회안전망 구축은 반드시 필요한 과제다. 그러려면 고용보험기금이 충분해야 한다. 일자리를 최대한 만들고 유지해 보험료 수입은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게 최선의 방책이다. 지금처럼 일단 지출부터 늘리고 보험료율을 높여 더 거두면 된다는 발상으로는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없다. 정부는 고용보험료율을 1.3%에서 1.6%로 인상할 계획이다.


고용보험뿐 아니라 국민연금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등 사회보험 재정에 모두 비상등이 켜졌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한 ‘문재인 케어’의 시행 이후 건강보험은 지난해 8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고, 2026년이면 모두 고갈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이보다 앞서 2022년 고갈된다. 국민연금은 2057년이면 적립금이 모두 소진되는데 연금개혁은 실종된 상태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저출산 고령화 변수까지 감안하면 사회보험을 아껴 써도 모자랄 판이다. 당장 돌아가는 혜택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이면의 부담 증가도 함께 설명하며 속도 조절을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달콤한 약속만 하고 사실상 증세와 다름없는 사회보험 청구서를 감춰서는 안 된다.

동아일보




국민연금은 요술 모자가 아니다


국민연금, 위기 앞에 변명은 필요 없다

국민연금 대체율 인상이 곤란한 이유

소득대체율 인상이 국민연금 살린다고?

폐지 줍는 할머니의 삶과 빈곤


     국민연금 개편 논의가 표류하고 있다. 


여야는 상대방 눈치만 보고 있는 듯하다. 섣불리 소신 발언이라도 꺼냈다간 여론의 집중포화로 만신창이가 될 테니까.


만약 ‘보험료는 낮추거나 유지하되 소득대체율은 더 올리고 적립금 고갈 시기까지 늦출 수 있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개편 방안이 이론적 차원에서라도 가능했다면 누군가 나섰을 것이다. 국민연금이란 저금통은 돈을 넣어놓기만 하면 액수가 무한정 불어나는 요술 모자가 아니다. 오로지 지금 더 넣을수록(보험료율이 높을수록), 이후에 더 많은 돈을(높은 소득대체율), 오랫동안(적립금 고갈 연장) 꺼낼 수 있을 뿐이다. 산수다.


역대 정부 때마다 나오는 개편 방안이 언제나 거센 반발을 일으키는 것은 정부나 국회, 관련 전문가 등이 착취자이거나 애먼 시민들에게 걷잡을 수 없는 악의를 가진 악당들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국민연금이 ‘현세대의 가입자’에게 지나치게 유리한 금융상품이기 때문이다. 대충 40년 동안 일정액의 보험료를 내면 노후에 그 두 배 이상을 연금급여로 받게 설계되어 있다. 저금통에 들어가는 돈보다 꺼낼 돈이 두 배 이상이니, 그 돈이 언젠가 고갈되는 것은 ‘변고’가 아니다. 당연한 일이다. 


ⓒ시사IN 양한모


지탄의 대상인 한국 국민연금은 ‘가입자에 대한 혜택’ 측면에서 어느 나라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2016년 캐나다 국민연금은 ‘9.9%(보험료율)-25%(소득대체율)’ 체제를 ‘11.9%-33%’로 바꿨다. 100만원 소득자가 매달 11만9000원씩 내고 은퇴 이후엔 월 35만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2019년 현재 한국 국민연금은 ‘9%(보험료율)-40%(소득대체율)’ 체제다. 9만원을 내면 40만원을 받는다. 




시민의 ‘대리인’들이 여론이 무서워 국가 차원에서 필요한 개혁에 손도 대지 못한다. 대리인만 탓할 수는 없다. 당사자들이 자신만 손해 보는 약자고 어떤 양보도 참을 수 없다는 상황이라면, 연금뿐 아니라 어떤 부문의 개혁도 불가능하다. 자유주의의 역사적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존 F. 케네디 미국 35대 대통령의 취임 연설 중 한 부분을 약간 바꿔 말씀드리고 싶다. “국가가 개인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개인이 국가 공동체의 유지·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합니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시사IN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