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버리고 떠나는 국민 급증..."금융위기 후 최다"


작년 2200명, 2년새 5배로 늘어.. 해외 부동산 투자도 2배로
100억 맨해튼 아파트 분양 설명회, 앉을 자리 없이 꽉 차

    여의도 자산가 A씨(50대)는 최근 해외 부동산을 알아보고 있다. 아들에게는 가까운 일본 도쿄 아파트를, 딸에게는 미국 뉴욕 아파트를 사주려 한다. 그는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나라에 살게 될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며 "경제가 회복될 것 같지 않고, 가진 사람을 적대시하는 현 정권이 교체될 것 같지도 않다"고 했다.

대기업 부장 강모(40대)씨는 지난해 아내와 다섯 살 된 딸을 미국 괌으로 보내고 서울에서 혼자 산다. 미국 연수 기간에 낳은 딸은 미국 시민권이 있다. 강씨는 월급 700만원 중에 400만원을 매달 송금한다. 그 돈으로 아내와 딸은 침실 2개를 갖춘 괌 내륙 지역 단독주택 월세와 중형 자동차 리스료 등을 내며 산다. 강씨는 "딸이 미세 먼지와 가혹한 학교 경쟁 속에서 살아가도록 할 수 없었다"며 "나 역시 퇴직하면 미련 없이 한국을 뜰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 적대시 현 정권에 암담
대통령 자녀들도 가는데 우리라고
(에스엔에스 편집자주)

한국을 떠나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작년 해외 이주 신고자 수는 2200명. 2016년 455명에서 2년 만에 약 5배가 됐다. 2008년 이후 최대치이고, 네 자릿수 인원을 기록한 것도 9년 만에 처음이다. 자산가는 국내 정치·경제적 상황을, 중산층은 환경·교육 문제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국내 거주자가 해외 부동산을 사들이는 데 지출한 돈의 규모도 급증하고 있다. 5일 한국은행이 국회 추경호 의원(자유한국당)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국내에서 흘러나간 해외 부동산 매입 자금은 2016년 3억800만달러에서 작년엔 6억2500만달러까지 치솟았다. 대형 금융법인이 투자 목적 등으로 송금하는 돈과 일반 법인의 영업소·해외지사 설치를 위한 송금액은 제외한 수치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정치·경제적 불안이 자산가는 물론 중산층까지 해외로 내몰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해외 이주 신고자 수는 2014년부터 249명→273명→455명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2017년 825명이 됐고, 작년엔 2200명으로 뛰었다.

이민자 급증에 대해 정부는 지난 5월 "제도 변화에 따라 해외 이주자들이 국민연금을 일시불로 받기 위해 '해외이주신고서'를 집중적으로 제출한 게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런 이유만으로 최근 급증세를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실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민 증가를 알려주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일 ‘2019 해외부동산 쇼케이스’에 소개된 뉴욕 맨해튼 아파트의 조감도. 여의도 63빌딩(250m)과 비슷한 높이(245m)에 가구당 면적은 50~70평, 분양가는 68억~102억원이다. /로 코퍼레이션

#1. 이달 3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신라호텔 영빈관 2층에 마련된 좌석 100개가 부자(富者)들로 꽉 찼다. 우리금융그룹과 미국 부동산 개발 회사가 공동으로 뉴욕 맨해튼 중심부에 새로 짓는 높이 245m짜리 최고급 초고층 아파트 분양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가구당 면적이 50~70평, 분양 가격은 68억~102억원 수준이다. 참석자 박모씨는 상담에서 "맨해튼 중심부에 아들 내외와 함께 살 집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2. 최근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문을 연 고급 아파트 모델하우스에는 한국인 중산층 손님이 자주 찾아온다. 분양 가격은 5억~10억원 정도. 분양 관계자는 "중국·미국·한국 등에서 문의가 가장 많다"고 했다. 글로벌 부동산시장 분석업체 CBRE에 따르면, 작년 호찌민 시내 고급 주택 구매자 22%가 한국인이었다. 외국인으론 중국인(30%)에 이어 2위다.

자산가들 '코리아 엑소더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실제로 해외 부동산 매입 규모가 급증한 정확한 시점은 2017년 2분기였다. 문재인 정부는 그해 5월 들어섰다. 1분기(6880만달러)까지 송금액은 7분기 연속 1000만달러대였는데, 2분기에 1억3140만달러로 단위가 바뀌었고 올해 1분기까지 1억달러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 해외 부동산 취득을 위한 송금 건수 역시 2014년 1320건에서 2018년 4309건으로, 226% 증가했다.

한 대형 병원 원장은 "강남에 건물 두 채를 가지고 있지만, 정부가 부동산 관련 세금을 어디까지 올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더는 국내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산가 입장에서 해외 부동산 투자는 상속·증여세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미국은 지난해 상속세 면제 한도를 549만달러(약 63억원)에서 1120만달러(약 128억원)로 올렸다. 한국에서 230억원을 상속하면 120억원 이상 세금으로 내야 한다. 



중산층은 교육·환경 불만… 동남아로
중산층도 한국 탈출을 꿈꾸고, 여건이 갖춰진 일부는 실행에 옮긴다. 주요 목적지는 동남아권이다.


필리핀 세부에 사는 B씨 가족은 미세 먼지로부터 도망친 케이스다. 3년 전 6박 7일 가족여행을 세부로 갔다가 여행 기간 초등학생 두 딸의 만성 비염 증세가 거짓말처럼 사라진 게 계기가 됐다. LG 계열사에 근무하는 B씨는 이듬해 해외 주재원을 신청해서 나갔고, 그 아내는 현지에서 수학 과외 교습을 해서 돈을 번다. B씨는 현지에 집도 샀다. 



작년 부동산 매입을 위한 송금 건수가 가장 많았던 국가는 베트남이었다. 1347건이 송금됐다. 그 외에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가 상위권에 포진한다. 해외 부동산 투자회사 관계자는 "1억~3억원 정도면 동남아권 대도시에서 최고급은 아니어도 한국인 수준에 괜찮은 집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베트남의 경우 한국으로의 송금 수수료가 비싸기 때문에, 시세 차익을 노린 투자 수요보다는 일단 집을 세놓고 현지 계좌에 월세 수입을 모아놨다가 노후에 이민을 가서 현지 계좌에 쌓인 돈을 현지 생활비로 쓰려는 중산층 손님이 많다"고 말했다.
안영 기자 조선일보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