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한국 기술 연구소'

[사설] 세계는 기술 전쟁, 日은 기술 보복, 한국은 '불 꺼진 연구소'


      일본이 무역 보복 조치를 발표한 다음 날 본지에 '불 꺼진 연구소들' 사진이 실렸다. 


지난 1일부터 국책 연구기관이 주 의 예외 업종에서 제외되면서 과거 같으면 밤늦게까지 일하던 연구자들이 오후 6시에 다 퇴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국책 연구소가 밀집한 대덕연구단지에선 오후 6시에 컴퓨터를 강제 종료시키고 더 일하려면 별도 결재를 받도록 했다고 한다. IT· 통신·우주항공 등 국가 차원의 전략 기술이나 군사·안보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들이 6시만 되면 강제로 문을 닫는 상황이 됐다. 일본이 우리의 기술 약점을 겨냥해 보복을 가하고 전 세계가 과학기술 개발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는 연구·개발자들이 일하고 싶어도 못 하게 막는 기막힌 나라가 됐다.


반도체 소재 3종을 타깃 삼은 일본의 무역 보복은 한국 산업의 취약한 기술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세계시장의 60%를 차지하는 압도적 1등이지만 생산 장비와 소재는 국산화 비율이 각각 17%, 50%에 불과하다. 핵심 소재와 장비 시장을 일본이 석권하고 있다. 반도체 소재 중 가장 많이 필요한 실리콘 웨이퍼는 일본 기업이 세계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고, 감광재 점유율은 99%, 차단재는 78%에 달한다. 한국에도 소재·장비 업체가 있지만 품질에서 따라가지 못한다. 반도체는 우리 경제성장률의 절반을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지만 일본제 소재·장비 없이는 굴러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됐다.


반도체뿐 아니다. 스마트폰도 OLED 패널 증착 장비의 90% 이상이 일본제이고, 전자나침반이나 터치스크린 같은 원천 기술은 대부분 일본이 갖고 있다. 자동차는 반도체에 이어 우리의 둘째 큰 수출품이지만 일본 기술 없이는 전기차나 친환경차를 만들지 못한다. 자율 주행차 등에 삽입되는 초정밀 카메라의 광학렌즈 원천 기술도 일본이 가지고 있다. 세계 1위 조선산업은 고성능 친환경 도료의 90% 이상을 일본 제품을 쓰고 있으며, 건설 분야에선 미니 굴착기의 90%를 일본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일본이 몽니를 부리면 주력 산업 대부분이 타격을 입는 구조다. 지난해 한국은 일본과의 무역에서 241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는데, 그 대부분이 부품·소재 수입 때문이었다.


에포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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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기술의 대일(對日) 의존도를 줄이려면 자체 기술을 개발하고 기술력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이를 지원해야 할 정부가 도리어 기술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주 52시간제 때문에 불이 꺼진 것은 국책연구소만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보완 조치도 없이 무리하게 시행하는 바람에 민간 기업의 연구소나 개발 부서도 밤만 되면 텅 빈 사무실로 변해버렸다. 과제가 몰릴 때는 집중적으로 일해야 하는 연구개발 직종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52시간 근무를 강제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연구개발자들이 밤샘하고 휴일에도 일하며 기술 개발에 몰두하는데 한국 연구소에선 강제로 컴퓨터가 꺼진다. '저녁을 즐기다 저녁 끼니를 굶게 될 것'이란 경고를 흘려들어도 되나.




전방위 수사를 받고 있는 삼성전자는 주주 환심을 사기 위해 투자에 써야 할 사내 유보금 5조원을 주식 소각에 사용했다. 구글·애플 등 글로벌 기업이 적극적인 타 기업 인수로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전략을 펴고 있는데 삼성전자는 지난 2년간 이렇다 할 인수·합병 실적을 보이지 못했다. 경영권을 약하게 만드는 일련의 법안이 추진되면서 대기업들이 공격적 투자를 꺼리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과도한 규제는 신기술의 출현과 상용화를 가로막고 있다. 낡은 규제 때문에 바이오·인공지능·빅데이터 등 미래 기술 경쟁에서 갈수록 뒤처지고 있다. 기술력이 경제는 물론 군사 안보를 포함한 총체적 국력을 좌우하는 기술 전쟁의 시대다. 일본의 무역 보복은 한국의 급소를 정확히 찔러온 것이다. 강제로 연구소 컴퓨터를 끄는 나라는 앞으로도 당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02/20190702036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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