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워츠먼이 가르치는 ‘돈 잘 쓰는 법’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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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워츠먼이 가르치는 ‘돈 잘 쓰는 법’

2019.07.03

돈은 버는 것 못지않게 쓰는 게 중요하다고들 말합니다. 누구나 다 알 만한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선대가 일구어 놓은 엄청난 부를 아무 의미 없이 흥청망청 날려 손가락질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거운 돈 자루를 붙들고 부들부들 떨다가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얼마 전 로또 1등에 당첨돼 한때 19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거머쥐었던 남자가 몇 개월 만에 그 돈을 탕진하고 좀도둑질로 감방에 드나들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큰 부자들에겐 푼돈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 돈만 제대로 관리했어도 큰 아쉬움 없이 살 수 있었을 테니 한심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난달 19일 미국의 억만장자 스티븐 슈워츠먼(Stephen Schwarzman, 72)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교에 1억5,000만 파운드(한화 약 2,208억 원)라는 거액을 기부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옥스퍼드는 물론 영국 내에서 이제껏 찾아볼 수 없던 최고액수의 기부라고 합니다. 한발 앞서 지난 2월 모교 케임브리지대학교에 1억 파운드(한화 약 1,472억 원)를 기부한 영국 자산운용 기업가 데이비드 하딩(David Winton Harding, 58)과 경쟁이라도 벌이는 듯합니다.

슈워츠먼과 옥스퍼드의 인연이라곤 십대 시절 한 번 대학교 캠퍼스를 찾아본 것밖에 없다고 합니다. 2년 전 부인 크리스틴과 함께 다시 방문하면서 학교에 대한 신뢰를 확인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의 기부 경쟁은 브렉시트의 혼란과 불안으로 교육․문화 사업에 대한 영국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벌어진 것이어서 특별히 주목받았습니다.

정말 눈길은 끄는 것은 대학 측에 대한 슈워츠먼의 주문입니다. "인공지능(AI)과 연결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문학 연구에 써 달라." 급속한 기술의 변화가 사회에 이로운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대학이 그 윤리적 구조를 세우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게 그의 기대요 믿음인 것입니다.

슈워츠먼은 “AI는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이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기술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부들이 이 분야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다. 기술이 단지 어떤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이유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그것이 인류 사회에 긍정적이고 생산적이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일부 경제학자들은 AI의 확장이 작업의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 등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제4차 산업혁명’의 격랑을 경고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옥스퍼드대학교는 슈워츠먼의 뜻에 따라 새로운 인문학센터를 건립하고, AI 윤리 연구에 언어에서 철학에 이르는 다양한 인문학자들을 참여시킬 계획입니다. 마침 지난 5월 옥스퍼드대학교는 지나치게 사립 명문교에 우호적이라는 비판을 받아들여 신입생 선발에 일대 변혁을 예고했었습니다. 대학의 문이 잠재력을 가진 모든 학생에게 공평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전제로 2023년까지 신입생의 4분의 1을 사회적 빈곤층에 할애한다는 계획입니다. 슈워츠먼 인문학센터는 이런 변화와 함께 옥스퍼드의 더 큰 발전과 사회에 대한 기여의 탄탄한 뒷받침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슈워츠먼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식품가게를 하던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나 예일대와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리먼 브라더스 등 투자금융사에서 잔뼈가 굵어 1985년 사모펀드 블랙스톤을 창업하고, 지금까지 CEO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7년 포브스가 세계 억만장자 가운데 117위로 꼽았으며, 2018년 말 재산이 124억 달러(한화 약 14조 3,244억 원)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지독한 일벌레에 강한 승부욕, 투명한 기업경영이 그의 성공 비결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산가답게 한때 요란한 크리스마스 파티 등 사치스러운 생활로 비판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을 이끌어가는 능력 외에 후세 교육을 위한 지속적인 기부 행적이 그의 남다른 인생철학을 보여줍니다.

슈워츠먼은 2004년 자신이 졸업한 필라델피아 아빙턴고교에 새 축구장을 지어주었습니다. 2008년에는 뉴욕 공공도서관의 확장을 위해 1억 달러(한화 약 1,158억 원)를 기부했습니다. 2013년에는 중국 칭화대학 장학프로그램에 1억 달러, 2015년 예일대학교에 1억5,000만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아빙턴고교에 2,500만 달러, 그리고 MIT의 컴퓨터와 AI 연구센터 건립에 무려 3억5,000만 달러(한화 약 4,041억 원)를 기부했습니다.

국내에서도 남다른 열정으로 후학 지원에 앞장섰던 고 김정식 회장(1929~2019, 대덕전자 창업자)의 선행이 여러 번 화제에 올랐었습니다. 6·25동란의 고통과 뼈저린 가난 속에 힘겹게 젊은 시절을 보냈던 그는 “가난 때문에 공부 못 하는 아이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30년 동안 전국 이공계 대학에 장학금과 연구비를 지원했습니다. 김 회장은 특히 지난해 10월 MIT의 AI 연구센터 건립을 위한 슈워츠먼의 거액 기부에 크게 감명, 올 2월 모교 서울대학교에 AI 연구비로 500억 원을 기탁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선행은 그렇게 또 다른 선행을 부르는가 봅니다. 슈워츠먼이 세상에 ‘돈 잘 쓰는 법’을 전파하고 있는 셈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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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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