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환경에도 견디는 점포 [홍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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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환경에도 견디는 점포

2019.06.26

집에서 반경 300미터 이내에 다섯 개의 편의점이 있었습니다. 그중 두 곳이 지난봄에 문을 닫았습니다. 최근에 한 개의 편의점이 새로 생겼지만 이 간단한 통계에서는 제외하고 생각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아주 오래된 점포가 편의점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점주는 그대로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두 점포나 문을 닫은 원인은 짐작해 볼 뿐입니다. 아마도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휴수당의 추가 지급 등도 중요 이유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남아있는 한 편의점에서 점주로 보이는 이에게 물었습니다. “신문을 보면 최저임금과 주휴수당 문제로 아르바이트 직원을 변칙적으로 고용한다는데 실제 그런가요?” 웃으며 손님을 대하던 그가 낯빛을 바꾸며 말했습니다. “왜 그런 질문을 해요? 노동부 직원이세요?”

이런 궁금증을 지니던 차에 한 맥줏집에 관심이 갔습니다. 은평구 연신내 상권의 한가운데에 있지만 점포 면적은 작습니다. 지인과 함께 처음 가 본 지가 삼사 년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창업한 점포가 얼마 못 가서 문 닫는 사례가 많은 점을 감안하면 비교적 잘 운영해 온 곳입니다. 깔끔한 집이라는 첫인상을 가졌지만 별다른 특색은 못 느꼈습니다. 최근에 점장과 몇 차례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주휴수당 문제를 물었더니 답은 이랬습니다. “우리 가게는 사정이 좋은 편이어서 아르바이트 직원의 근무 형태는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변 다른 점포들은 대다수가 일을 쪼개서 이전보다 많은 사람을 쓰고 있습니다. 근무 시간을 서너 시간 단위로 나누는 것이 그 한 방법입니다.”

그의 답에 호기심이 더 발동되었습니다. 작은 점포인데 인건비가 상당히 올라도 유지에 어려움이 없다 하니 말입니다. 살펴보니 철저한 저가 전략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메뉴판은 종이 한 장입니다. 탁자 옆에 붙여 놓았습니다. 안주는 열 가지 남짓으로 웬만한 맥줏집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종류가 적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리나 가공이 단순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주방이랄 것도 따로 없습니다. 매장 한쪽에 작은 싱크대와 약간의 도구가 있을 뿐입니다. 그 장소는 일반 주택의 조리 공간보다 넓지 않아 보입니다.
탁자는 조밀하게 배치하여서 한 번에 예순 명 정도까지 수용이 가능합니다. 통로는 한 사람이 지나다닐 정도의 폭이지만 탁자 사이마다 나지막한 칸막이가 있어서(통로 쪽에는 칸막이가 없습니다) 앉았을 때 어느 정도 독립성이 느껴집니다.

가격도 이런 환경에 걸맞게 책정하였습니다. 낮은 가격입니다. 병맥주의 가격은 다른 곳보다 쌉니다. 안주는 종류가 적고 손질하기도 단순하니 가격을 낮출 수 있습니다. 메뉴나 가격은 누가 정했느냐고 물었더니 점장이 점주와 상의하면서 결정했답니다. 가장 비싼 닭날개 튀김을 보지요. “주변 다른 점포에서는 아홉 조각에 구천구백 원 받는 것을 보고 여덟 조각을 한 접시로 하고 팔천 원으로 정하였습니다.” 가장 낮은 가격의 하나인 쥐포구이는 작은 쥐포 두 쪽에 삼천 원입니다. 저가격 점포라는 일관성이 있으면서도 손님 입장에서 그다지 불만족스러운 점은 없습니다. 가격 대비 품질은 괜찮은 편이지요. 어떤 프랜차이즈 맥줏집처럼 극단적으로 낮은 가격을 유지하느라고 품질도 지나치게 낮춘다든가 한 품목은 없습니다.

손님이 붐비는 시간에도 직원 두 명이 모든 일을 감당하는 데에 무리가 없으니 인건비 부담도 적습니다. 두 사람이 상황에 따라 역할 분담을 자연스럽게 합니다. 주방 담당과 홀 담당의 분담이 따로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손님이 좀 적은 시간에는 한 사람이 근무하는데도 어려움이 없습니다. 두 사람이 일하다가 틈을 내어 빈 탁자에 앉아 저녁을 같이 먹는 걸 보았습니다. 그러다가도 손님 탁자의 벨이 울리면 한 사람이 이내 움직입니다. 이런 저가형 점포에서는 그렇게 해도 그다지 흠이 되지 않아 보입니다(우아한 식당에서와 같은 서비스를 기대할 손님은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입에 음식을 머금은 채로 손님을 응대하지는 않습니다.

점장에게 인테리어는 어떻게 설치했는지 물었습니다. “보다시피 인테리어랄 것도 없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목수 한 명이 저와 수시로 상의하면서 작업했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천장에도 나름대로의 손길이 닿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저가격 정책에 들어맞습니다. 전략의 실행이 훌륭합니다. 사업전략이란 어떤 전략인지도 중요하지만 이곳처럼 일관성을 유지하는 일이 더욱 중요합니다. 전략이 일관성을 갖지 못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규모가 큰 기업에서도 일관성 있는 실행을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예를 들면 저가전략인지 품질우위 전략인지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경우) 이 작은 점포에서는 잘 해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병맥주보다는 생맥주가 훨씬 많이 팔립니다. 그 가격이 재미있습니다. 표면 가격이 낮습니다. 보통의 점포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작은 잔을 사용한 결과입니다. 그러니까 단가로는 주변보다 결코 싸지 않습니다. 이 가격과 양이 이 점포에서 맥주 마시는 사람들의 행동 특성과 맞아떨어집니다. 손님들이 자주 들락날락합니다. 앉아서 긴 시간 마시는 사람들보다는 지나가다가 들러 잠시 대화하면서 마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작은 잔이 어울립니다. 표면 가격이 낮으니 손님에게서 심리적 저항을 받지 않습니다.

종업원들은 기본을 지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손님이 벨로 부르면 직원이 빨리 답을 하고 잰걸음으로 다가갑니다. 손님이 마시고 나간 탁자는 즉시 치웁니다. 다소 한가한 시간이 되면 화장실 청소도 합니다. 심야 시간에는 탁자마다 있는 종이 냅킨 통을 다시 채웁니다. 문 닫는 시간이 되면 바닥 청소도 합니다. 이런 일들을 직원이 한 명인 시간에 손님 응대도 하면서 해냅니다. 당연한 일이 아니냐구요? 당연한 일을 제대로 하기만 해도 잘 하는 축에 듭니다. 그러지 못하는 점포나 기업이 많으니까요.

불경기에 임금 제도의 급격한 변화까지 겹쳐 어렵다는 때에 안정적인 운영을 하는 작은 점포가 있다는 사실이 대견해 보였습니다. 어떤 점포는 다른 방법으로 비용을 줄입니다. 물론 불경기라 해서 저가격만이 해법은 아닙니다.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 남다른 품질이나 서비스로 손님을 끌어모으는 곳도 있습니다. 때로는 가격도 서비스도 아닌 나만의 고집스런 영업 방침으로 손님을 대하는 점포도 보았습니다. 어느 경우에나 그런 전략을 반기는 고객이 있어야 하고, 점포 운영의 세세한 부분까지 그 전략에 들어맞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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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홍승철

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화학에서 경영기획 및 혁신, 적자사업 회생활동 등을 함. 1인기업 다온컨설팅을 창립,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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