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기업가도 있습니다 [김수종]

카테고리 없음|2019. 6. 18.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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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업가도 있습니다

2019.06.18

오늘은 자서전 한 권을 소개하렵니다. 책 제목은 ‘직원이 주인인 회사’이고, 저자는 기업가 박종규(84세) 회장입니다.
박종규 회장은 1970년 일본에서 빌려온 작고 낡은 화물선 한 척을 갖고 해운회사 (주)KSS를 창업하여 지금은 가스선, 화학제품 운반선, LNG선 등 도합 26척의 선박을 부리며 연간 매출 2,000억 원 이상 올리는 아주 탄탄한 강소기업으로 키웠습니다.
그는 2003년 은퇴하여 KSS 대주주이자 고문으로 제주도 한라산 기슭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에겐 또 하나의 회장 직책이 있습니다. 바른경제동인회 회장입니다. 25년 전 투명 경영 운동을 벌이기 위해   경제계 및 학계의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만든 일종의 경제NGO입니다.
박 회장은 1955년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재학 시절 경영권 세습을 하지 않고 자본과 경영을 분리하는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의 경영 방식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해운회사를 창업하게 되자 유일한 박사를 롤 모델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에겐 아들이 셋 있습니다. 그러나 회사경영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스스로 자기 일을 찾아가도록 했습니다. 회사는 전문경영인체제로 만들고, 그 제도가 뿌리내리도록 지금도 대주주로서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기업 대물림이 한국의 기업풍토를 망치고 국가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자서전에서 밝힌 그의 기업관입니다.

몇 년 전 정달호 전 이집트 대사(자유칼럼 컬럼니스트)와 함께 한라산 기슭에 있는 박 회장의 동네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박 회장과 정 대사는 대학 선후배 관계인 데다  이주(移住) 제주도 주민이어서 가근하게 만나는 사이였습니다.
처음 만난 나에게 박 회장은 해운회사 창업 후 밀수를 하지 않고 투명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 악전고투했던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1970년대 한국 해운업계는 밀수와 뇌물이 판치던 사회임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알 것입니다.
그때는 밀수로 돈 벌기 위해 선원이 되었다는 사람이 많았고, 밀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족이 동원되는 게 예사인 시대였습니다. 어떤 때는 선장 이하 선원 전체가 밀수조직이 되어 있을 때도 있었다는 겁니다.
박 회장은 그의 회사에서 선원 밀수를 근절하는 데 5년 이상 걸렸다고 합니다. 밀수는 국가를 좀먹는 범죄이기도 하지만 해운회사에도 큰 타격을 줬습니다. 일본에서 화물을 싣고 울산항이나 마산항에 도착하면 빨리 통관절차를 거치고 하역해서 화물을 화주에게 인도해야 하는데, 배가 항구에 도착할 때 쯤이면 선원들이 밀수품 챙겨 처리하느라고 회사의 화물엔 신경 쓸 틈이 없게 됩니다. 월급보다 몇 배 되는 밀수 이익이 선원들에겐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박 회장은 고심하다가 방법을 찾았습니다. 선원 중에서도 밀수는 범죄라고 생각하고 꺼리는 몇 명의 양심적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들을 설득해서 밀수를 싫어하는 선원을 데려오도록 했습니다. 끝내 밀수 없는 해운회사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통관이 지체되는 것입니다.  밀수를 해야 세관원들에게 뇌물를 줄 수 있는데 KSS선원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투명경영을 놓고 대학생들과 대화하는 박종규 회장

박 회장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선원들의 밀수를 근절했습니다. 어려웠지만 그 보상도 컸다고 말했습니다. 선원들이 밀수를 안 하니 화물 하역과 인도에 차질이 생기지 않고, 선박사고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회사의 신뢰가 쌓였던 것입니다. 
그날 대화에서 박 회장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회사를 정직하게 경영하려고 마음잡으면 그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서전의 중심 주제는 책 제목처럼 ‘직원이 주인인 회사’를 만들기 위해 기울인 그의 땀과 고뇌입니다. 그는 반세기 동안 키워온 KSS가 노사공동운명체로 번영하며 300년 장수하도록 토대를 마련하는 데 골몰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전문경영인체제로 잘 운영되는 주식회사 모델을 만드는 게 그에게 남겨진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경영인도 독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는 사장의 독선을 견제하기 위해서 사외이사의 역할을 강화하는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KSS에서 사외이사는 거수기가 아닙니다. 회사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쓴소리도 할 수 있는 존재가 사외이사라고 합니다. 
한 번은 박 회장이 NL계열 운동권 출신 인사를 사외이사로 추천했습니다. 그 인사는 소련이 붕괴된 후 생각을 많이 바꿨고 스페인협동조합을 다룬 책을 번역했는데, 이  책을 정독한 박 회장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사외이사 심사위원회가 박 회장이 추천한 인사를 부적합하다며 추천하지  않았습니다. 체면이 구겨진 박 회장은 속상했습니다. 하지만 대주주가 추천한 사외이사도 거부한 심사위원회의 태도에 뿌듯함도 느꼈다고 합니다.    
박 회장은 이듬해 그 운동권 인사가 어떤 생각의 변천을 거쳐 왔는지, 그가 번역한 스페인 협동조합 역사책이 KSS의 경영방침과 연관된 점을 자세히 설명하며 다시 사외이사로 추천했습니다. 심사위원회는 까다로운 면접절차를 거쳐서 그를 사외이사로 승인했다고 합니다.

그의 자서전을 뚫고 흐르는 생각은 투명한 회사, 자식에게 경영권을 대물림하지 않는 회사, 노사공동운명체의 회사, 회사이익만 아니라 사회의 공익도 생각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자서전에는 저자의 자랑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천민자본주의라는 냉소가 쏟아지던 한국의 기업 세계에서 이렇게 회사를 경영했던 기업인도 있었구나 하는 신선한 충격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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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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