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호텔의 굴욕… 임대주택·기숙사로 급선회


중국인 관광객 반토막 났는데 관광호텔은 6년새 2배로 급증

공유숙박까지 가세해 더 못버텨… 오피스텔·빌라로 리모델링도


      서울 종로구 베니키아 호텔은 지난달 건물용도를 임대주택으로 바꿨다. 2015년 12월 개장해 2년 넘게 호텔 영업을 했지만 예상보다 장사가 안 되자 사업주가 작년 12월 서울시에 용도 변경을 요청했다. 이 호텔은 리모델링을 거쳐 내년부터 238가구 규모 공공 임대주택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베니키아 호텔은 이용객이 급감하자 리모델링을 거쳐 내년부터 공공 임대주택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베니키아 호텔은 이용객이 급감하자 리모델링을 거쳐 내년부터 공공 임대주택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서울 지역 관광호텔 상당수가 중국 관광객 감소, 신축 호텔과 공유 숙박 등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업종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 /주완중 기자


서울 시내 관광호텔과 호텔 예정지가 최근 오피스텔, 임대주택 등으로 잇따라 바뀌고 있다. 중국 정부의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 여파로 관광객이 급감한 뒤 회복이 더디자 업주들이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심 곳곳에 신축 호텔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경쟁이 심해진 영향도 있다. 전문가들은 "입지 좋은 도심 호텔을 소형 주택으로 바꾸면 사업자는 물론 도심에 거처를 구하기 어려운 청년층에도 도움이 된다"며 "시 차원에서 용도 전환을 좀 더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 관광호텔 줄줄이 용도 변경

서울 성북구 '홀리데이인 성북'은 현재 동덕여대 기숙사로 쓰이고 있다. 20년 넘게 운영한 지역 대표 호텔이었지만 투숙객이 급감해 2017년 문을 닫았다. 강남구 신논현역 인근 다이너스티 관광호텔은 299가구 규모 임대주택으로, 청담동 엘루이호텔은 최고급 빌라로 재건축 중이다.


마포구 합정역 근처 호텔 예정지에는 19층짜리 오피스텔이 들어설 전망이다. 주민 공청회가 지난 3월 열렸고, 토지 이용 계획 변경안이 서울시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종로5가 청계천변 토지(1318.9㎡·약 400평)는 2016년 관광숙박시설 부지로 지정됐지만 3년 넘게 사업 시행 인가를 신청하지 않아 곧 지정이 취소된다. 중국 관광객을 타깃으로 관광호텔을 지으려 했지만 사업 전망을 안 좋게 본 일부 토지주가 반대하며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드 충격에 공급 과잉 겹쳐

호텔들이 용도를 바꾸는 가장 큰 이유는 사드 사태 이후 중국 관광객이 줄었기 때문이다. 2016년 806만명에 달했던 중국 관광객은 이듬해 416만명으로 반 토막 났다. 작년에 478만명으로 늘었지만 회복됐다고 판단할 정도는 아니다.


공급 과잉도 호텔업 매력을 떨어뜨린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의 관광호텔은 2010년 이후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급증한 중국 단체 관광객을 수용할 서울 도심 호텔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나오자 정부는 2012년 '관광숙박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 2016년까지 한시적으로 용적률(토지면적 대비 층별 건축면적 총합의 비율) 완화, 의무 주차공간 축소, 공유지 장기 대여 등 혜택을 줬다. 그 결과 서울의 관광호텔은 2012년 161개(2만7156실)에서 지난해 440개(5만8248실)로 급증했다.




부동산 개발업계 관계자는 "특별법 시행 후 관광호텔을 하겠다고 나선 사업자 상당수는 호텔업을 잘 모르면서 돈벌이가 된다니 뛰어든 이들로, 최근 경쟁이 심해지자 용도 전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용도 변경 절차 간소화해야"

관광호텔 산업을 위협하는 요소는 또 있다. 최근 에어비앤비 등 공유 숙박과 소규모 게스트하우스(도시 민박업소)가 생겨나며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최근 늘어나는 개별 관광객은 규모가 작더라도 가격이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나 공유 숙박을 선호한다. 작년 11월 기준 서울시에 등록된 게스트하우스는 1041곳에 달한다.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는 '호캉스족'이 늘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수영장과 고급 레스토랑을 갖춘 특급 호텔을 이용하기 때문에 관광호텔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업계 관계자는 "특례법 기간 중 관광호텔부지로 지정된 땅 중 3분의 1 정도는 토지주가 호텔 사업을 할 생각이 없다"며 "이들은 호텔 대신 주택을 짓고 싶어하지만 복잡하고 까다로운 행정 절차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호텔을 주택으로 바꿀 수 있도록 시 차원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심 복판 관광호텔을 빈 채로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일 뿐만 아니라, 서울에는 1·2인 가구를 위한 역세권 소형 주택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원철 한양대 교수는 "남아도는 관광호텔을 임대주택이나 셰어하우스로 바꿀 수 있도록 서울시가 용도 변경 등 행정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순우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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