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 그대로인데...채무비율 `통계착시` 믿고 돈 더 푼다고?

재정지출 확대 논쟁 2라운드 돌입


GDP 기준연도 바꿔 국가채무비율 38%→36%


비록 채무비율 낮아졌지만

나랏빚 증가속도 감안해야


편성된 예산도 다 못썼는데

추가 재정확대는 설득력 없어


재정수지 사상 첫 적자 예고

채무비율 고삐 되레 조여야


    국가채무비율 40% 마지노선 논란과 함께 벌어진 재정지출 확대 논쟁이 2라운드에 돌입했다. 한국은행이 국민계정의 기준연도를 정기 조정하면서 국내총생산(GDP)이 큰 폭으로 늘자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30%대 중반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그동안 재정지출 확대를 주장해온 청와대와 여권은 국가채무비율에서 여유가 생긴 만큼 재정지출을 더 늘려야 한다고 기획재정부에 압박을 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동안 기재부가 강조해 온 40%라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부채비율 상승 속도를 제어하는 게 핵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제의 본질적 변화 없이 통계기준이 바뀌면서 숫자가 떨어졌을 뿐인데, 이를 근거로 재정지출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국가채무 규모의 증가세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에 통합재정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가채무비율 고삐를 더 조여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6일 한은에 따르면 국민계정 기준연도를 2010년에서 2015년으로 개편하면서 지난해 명목 GDP가 당초 1782조원에서 1893조원으로 111조원(6.2%) 늘었다. 한은은 경제구조 변화 등을 반영하기 위해 기준연도를 5년마다 변경하는데, 이 과정에서 명목 GDP가 증가한 것이다. 



명목 GDP가 늘었지만 국가채무는 680조7000억원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국가채무를 명목 GDP로 나눈 지난해 국가채무비율은 38.2%에서 35.9%로 2.3%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과거에도 국민계정 기준연도를 바꿀 때마다 발생했던 일이기도 하다. 


40%에 육박했던 국가채무비율이 30%대 중반으로 대폭 낮아지자 복지 지출 확대를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 여력이 더 커졌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가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0%,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은 3.0%를 재정준칙으로 삼았는데, 이 비율이 떨어졌으니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달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재정건전성) 마지노선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인 근거가 뭐냐"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에게 질책성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재정준칙을 정한 취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재정준칙은 채무비율 숫자 그 자체보다 채무가 증가하는 속도를 최대한 억제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태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한국의 재정준칙은 유럽의 재정준칙에서 유래한 것이다. 채무비율을 현재 수준에서 최대한 묶어두고 비율이 올라가는 속도를 늦추는 데 목적이 있다"며 "장기적으로 국가채무가 완만하게 늘어나는 건 타당성이 있을 수 있지만 급격하게 늘면 대외신인도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앞서 국가채무비율 40%를 정한 것도 그 당시 국가채무 증가 속도를 감안한 것이었던 만큼 통계적 이유로 채무비율이 낮아졌다면 채무증가 속도를 감안해 채무비율 마지노선도 함께 낮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우리나라가 애초 40% 기준을 설립한 것은 유럽연합(EU) 영향이 컸다. EU 구성의 토대가 된 마스트리히트조약은 유럽공동체의 가입 조건으로 국가채무비율 60%를 명시했다. 당시 EU 가입국들의 채무비율이 60%를 약간 초과한 상태였는데 그 수준에서 묶어 놓기 위함이었다. 한국은 고령화, 통일 등 미래의 재정 수요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이 기준에서 20%포인트를 낮춰 40%를 재정건전성의 기준으로 삼았다. 


이태석 연구위원은 "유럽에서 준칙을 깨거나 용인했던 건 경제위기나 사회적 불안으로 급격한 지출이 필요한 때에 국한됐다"고 강조했다. 




한 예산 전문가도 "국가채무비율보다는 재정지출을 확대할 필요성이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가계가 여유가 있다고 불필요한 돈을 쓸 필요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지금 논의를 보면 채무비율 자체가 재정확장 여부를 결정하는 유일한 것처럼 비치고 있는데, 그야말로 `왝더독(Wag the dog)`, 즉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꼴"이라고 말했다. 


특히 편성된 예산도 다 못 쓰고 불용되는 예산이 있는 상황에서 채무비율을 높여도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 정부 들어 급속하게 증가한 일자리 예산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일자리안정자금을 도입해 30인 미만 고용 사업주를 대상으로 월급여 210만원 이하 근로자 1인당 월 13만원을 지원했다.


이를 위해 예산 2조9700억원을 투입했지만 실제 집행한 건 2조5136억원이었다. 


또 내년부터 재정적자가 우려되는 마당에 국가채무비율을 급격히 늘리는 건 무리라는 지적이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우리나라 통합재정수지는 2018년 30조8000억원, 2019년 7조6000억원을 거쳐 내년에 사상 처음 적자(-6조6000억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 통합재정수지는 정부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것으로, 대표적인 재정건전성 지표다. 

[김태준 기자]매일경제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