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의 착한 젊은이들 [임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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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의 착한 젊은이들

2019.06.07

세상이 온통 자동화, 디지털화하다 보니 노인들은 갈수록 살기가 불편해집니다. 음식점에서 뭘 사 먹으려도 이상하게 생긴 그놈의 기계에 돈을 넣고 주문을 해야 하니 난감합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누르는 데 서툴러 실수를 하거나 다시 시작하다 보면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종업원이나 줄 서서 기다리는 뒷 손님이 도와줘야 하니 늘 눈치가 보입니다.

밤중에 아무리 기다려도 택시를 탈 수 없습니다. 차는 오지만 손을 들어도 서지 않습니다. 다 예약이 돼 있는 차들입니다. 추운 겨울에 오래 기다리며 애태우는데 방금 어느 골목에서 왁자지껄 떠들며 나온 젊은이들은 잘도 택시를 타고 사라집니다. 커피 한잔 사 마시려 해도 뭐가 뭔지 알 수 없어 포기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런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돕는 젊은이들은 참 보기에 좋고 대견합니다. 옛날엔 부모를 위해 저녁에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아침에 문안하는 혼정신성(昏定晨省)이 효도였지만, 지금은 내 부모든 남의 할아버지 할머니든 ‘디지털 효도’가 중요한 세상입니다. 불지옥이 어디냐고 묻는 할머니를 푸르지오 아파트로 모셔다 드린 젊은이 이야기를 읽고 참 기특하고 상상력도 좋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그 할머니는 왜 불지옥이라고 했을까? 며느리가 싫어서? 아니면 아파트에 사는 게 지옥 같아서?)

다음은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젊은이들과 손님이 쓴 글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내가 현장에 있는 것처럼 노인들의 모습과 커피숍의 풍경이 한눈에 잘 보입니다.

#82세쯤 돼 보이는 할아버지가 “커피 한 잔 줘,” 그래서 “무슨 커피 드릴까요?” 했더니 곰곰 생각하더니 “그냥 밀크커피.” 그래서 나뭇잎 같은 걸 그려서 카페 라떼를 드림. 그러자 커피 마실 생각은 하지 않고 사진 찍으심.

##예전에 커피숍 할 때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셔서 달달한 커피 달라 그래서 카라멜 마끼아또 드림. 며칠 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모시고 오심. 여기가 그 커피 맛있는 집이라고 함. 집이 방배동인데 커피 드시러 서너 정거장 떨어진 곳까지 오심. 그때 그거 달라고. 그래서 종이에 써 드림. 집 근처 아무 커피숍이나 가셔서 이 쪽지 주시면 이 커피 나오니까 근처에서 사 드시라고. ㅋㅋ. 할아버지 생각 많이 나더라. 이런 건 노인들 안 좋아해서 안 드시는 줄 알았는데 몰라서 못 드시고 있을 수도 있음. 나중에 캔 커피나 믹스 좋아하시는 어르신들 주변에 계시면 한번 사 드려봐. 엄청 좋아하실 수 있음.

###스타벅스에서 기다리는데 직원이 어느 할머니의 주문을 받으면서 다방 커피같이 달달하며 프림 넣은 게 좋으신지, 탄 밥 누룽지처럼 구수한 게 좋으신지 묻는 거 보고 배려와 맞춤형 서비스에 감탄한 기억이 난다.

사실 아직 덜 늙은 나도 실수할 때가 많습니다. 커피를 자주 마시지도 않지만 카페 라떼를 생각하면서 엉뚱하게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마끼아또가 뭔지도 잘 모릅니다. 노인들이 알기 좋게 커피 이름을 ‘달달한 놈, 고소한 놈, 독한 놈’ 이렇게 써 붙인 커피숍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커피의 맛을 한마디로 알려주니 주문하기 편리합니다.                 

다른 젊은이의 글을 더 인용합니다.
####카페에 종종 오시는 할아버지가 계신다. 늘 알은체를 하시는데, 나도 그게 싫지 않아 인사드리고 몇 마디 나누곤 한다. 보통 느긋하게 커피 한 잔 하고 가시는데, 오늘은 카페가 너무 바빠서 쫓기듯 마시고 나가셨다. 그게 마음에 걸려 따라 나가 안녕히 가시라고 크게 인사드렸다. 그렇게 보내 드리고 몇 분 뒤, 할아버지가 다시 들어오셔서 뭔가를 건네셨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숯불갈비였다. “내가 먹으려고 산 건데, 자네가 잘 가라고 인사해서 주는 거야.”
외로움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나는 문득 생각했다. 그리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할아버지의 가족에 대해 생각했다. 훗날 나의 모습에 대해서도. 갈비는 그야말로 1인분이었다. 아주 아주 맛있었다. 내 인사가 이만큼 대단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가족과 자신의 미래 모습에 대해 생각해봤다는 대목이 참 장하고 고맙습니다. 블로그에 이런 글을 쓴 청년은 오마르 워싱턴(Omer B Washington)의 ‘나는 배웠다’라는 시도 따로 올려놓았더군요. 오마르 워싱턴은 1921년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출생의 시인이라고만 알려져 있습니다. 정확한 정보인지는 불분명합니다. 그런데 이걸 쓴 사람은 그가 아니라 ‘사하라 사막의 성자’라는 프랑스 복자(福者) 샤를 드 푸코(Charles de Foucauld, 1858~1916)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느 말이 맞는지 최종 확인은 하지 못했지만, 이 젊은이의 인용을 골라서 재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칩니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이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따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은 내 슬픔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글을 쓰는 일이 대화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마음의 아픔을 덜어준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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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한국기자상, 위암 장지연상, 삼성언론상 등 수상. 저서‘노래도 늙는구나’,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1개월 인턴기자와 40년 저널리스트가 만나다(전자책)’,‘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마르지 않는 붓'(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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