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의 甲' 타워크레인 기사는 '월천기사'…"수백만원대 뒷돈…협박성 태업도"


"타워크레인 멈추면 수백명 일손 올스톱"…건설현장의 甲
담뱃값·간식비 주던 것이 수백만원 ‘월례비’ 관행
월수입 1000만원 ‘월천기사’로 불려… "적폐 관행 없애야"

     타워크레인 기사는 ‘건설현장의 갑(甲)이자 꽃’으로 불린다. 타워크레인은 아파트·빌딩 등 고층건축물의 골조(骨組)를 올리는 역할을 한다. 골조가 올라가야 내·외부 전기, 설비, 마감 등 다른 공사가 진행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타워크레인이 멈추면 거의 모든 공사는 ‘올스톱’된다. 실제 4일부터 시작된 타워크레인 노조의 파업으로 전국 건설 현장이 마비 상태에 빠졌다.

건설업계에선 현장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타워크레인 기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월 수백만원에 달하는 ‘뒷돈’을 줄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타워크레인 기사는 월급 외에 수백만원대 가욋돈까지 챙겨 월 수입이 1000만원에 달한다는 뜻으로 ‘월천(月千) 기사’라고도 불린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장에서 ‘왕(王)’처럼 행세하는 일부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뒷돈을 안 주면 일을 못하겠다고 버티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관행이 사실상 척결해야 할 적폐가 아니냐"고 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전국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이 동시 파업해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4일 오전 울산시 북구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멈춰선 타워크레인 아래 한 건설노조 조합원이 서 있다. /연합뉴스

8층 이상 올라가면 타워크레인은 ‘대체불가’…왜 건설현장의 甲인가
타워크레인은 철근이나 거푸집 등 자재를 상층부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 저층 건물을 신축할 땐 타워크레인이 아닌 이동식 크레인을 주로 쓴다. 트럭에 크레인을 탑재한 이동식 ‘크레인 차량’이다. 고층 건물 공사에선 타워크레인 설치가 필수다. 3톤(t)이 넘는 무거운 자재를 10층 이상 상공으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

아파트 등 고층빌딩 신축 공사는 통상 토목공사→기초공사→골조공사→설비공사→마감공사 순으로 진행된다. 타워크레인은 전체 공정에 핵심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기초공사 때부터 타워크레인을 설치할 자리가 정해진다. 건물 뼈대를 만드는 골조공사 공정에 돌입할 즈음 타워크레인도 현장에 설치되고, 건물 뼈대가 8층 이상 올라가면 타워크레인은 건설 현장에서 ‘대체 불가’가 된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타워 크레인이 무거운 건축 자재를 들어 올려주는 역할을 한다"며 "특히 2~3층 간격으로 골조공사와 설비, 전기 공사가 따라 올라가기 때문에 타워크레인이 없으면 공사가 거의 멈추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30년 경력의 지역 종합감리업체 A사 현장소장은 "아파트 등 고층건물 공사에서 공정률과 인력 투입 효율을 높이는 건 타워크레인 업무량에 결정된다"며 "타워크레인이 파업을 하면 기사 1명뿐만 아니라 전기, 설비, 미장 등 수백명의 근로자들이 일손을 놓게 된다"고 말했다.

타워크레인 기사는 ‘월천기사’ … "협박성 태업에 울며 겨자먹기 식 뒷돈 관행"
건설현장에선 타워 크레인 기사를 두고 ‘월천(月千) 기사’라고 부른다고 한다. 급여 외에도 한 달에 급행료와 초과근무수당(OT) 등으로 1000만원 이상의 고수익을 올린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아파트 현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타워 크레인은 12톤(t)이다. 월 임대료는 약 1200만원 수준이다. 익명을 요구한 타워크레인 업계 관계자는 "임대료의 약 40%~50%가 타워크레인 기사의 임금으로 책정된다"고 했다. 타워크레인 기사의 ‘공식 월급’은 약 480만~600만원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급행료와 초과근무수당(OT), 월례비 등 비공식적인 부수입을 합치면 실제 수입은 월 1000만원이 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업계 얘기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금액에 차이가 있을 뿐, 현장에서 크레인 기사를 상대로 ‘뽀찌(급행료)’가 오가는 건 관행이 됐다"며 "타워크레인 하나가 아파트 1동(棟)을 도맡지 않고 2~3개 동 건축을 맡는 경우, 개별 동을 담당하는 하청업체에서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서로 ‘우리 동 물량 먼저 올려달라’는 식으로 로비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이런 점을 악용, 하청업체에게 일명 ‘월례비’ 명목으로 매달 수백만원의 돈을 먼저 요구하는 관행도 고착화되고 있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사현장에서는 모든 일정이 타워크레인 기사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공사를 빨리 진행하려는 하청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월례비를 줄 수밖에 없다"며 "일부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협박성 태업’을 하며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하도급 건설사 회장은 "월례비는 처음엔 담뱃값이나 간식비 등 좋은 뜻으로 시작됐는데 몇 년 전부터 (타워크레인 기사들 사이에서) 상납을 받는 것으로 담합이 됐다"며 "예를 들어 광주·전남은 250만원, 서울·경기는 300만원, 부산·울산·경남은 500만원, 이런 식으로 담합이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는 타워크레인이 없으면 작업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때는 월례비가 1000만원까지 올라간 때도 있었다"며 "타워크레인을 쓸 수밖에 없는 하청업체가 사실상 볼모가 된 셈"이라고 했다.
고성민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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