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본은 “차라리 한국은 없는 셈 치자”고 하는가/ 민주노총, 홍위병처럼 굴지 말라

왜 일본은 “차라리 한국은 없는 셈 치자”고 하는가

‘한국은 약속 안 지키는 나라’ 낙인
일본서 한국 얘기하면 ‘바보’ 취급
거대 중국 앞두고 한·일 손잡아야
한국 ‘징용판결’ 액션플랜 내놔야

    일본 열도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왜 한국은 국가 간 약속을 안 지키는가”라고 묻고 또 물었다. 분명히 우리가 위안부, 강제징용의 피해자인데 어느 순간 상종하지 못할 가해자로 전락했다. 맑은 정신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반전이다.

이하경 주필
 
지난주 윤상현 국회외교통일위원장을 비롯한 합계 20선(選)의 야당 중진의원 다섯 사람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만나준 유일한 의원은 자민당 참의원 비례대표 초선인 와타나베 미키 외교·방위위원장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7월 참의원 선거에 불출마하는 예외적 인물이었다. 최악의 ‘한국 기피’ 현상이다.
 
문제는 한국에서 촉발됐다. 지난해 10월 30일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배상은 끝났는데 무슨 소리냐”며 어이없어 했다. 올해 1월에는 양자협의, 5월에는 중재위 개최를 요구했지만 한국은 모두 거부했다. 


 
한국은 “사법절차에 행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3권분립에 어긋난다”며 어떤 액션플랜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일본은 이런 한국에 모욕감을 느끼고 있다. 이달 28일부터 오사카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리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희망하는 양국 정상회담에 대해 냉소적이다.
 
일본 지한파(知韓派) 원로와 지난주 도쿄에서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전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과 재계 중진 10명의 만찬 모임에 동석했다는 그는 “한국 얘기를 꺼내면 ‘당신 바보 아닌가’라고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국이 중요하다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중국에 기울고 있는데 수백 년간 그랬으니 다시 중국의 일부가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한국은 없는 셈 치고 가자는 분위기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3년이나 남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의 고민은 깊었다. 중국을 상대하려면 양국이 협력해야 하는데 따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10~20년 뒤 중국의 경제력은 일본의 5배로 벌어져서 일본 말을 안들을 것이고, 한국말은 더더욱 안 들을 것”이라며 “두 나라가 손잡고, 미국이 뒤에서 받쳐줘야 중국을 상대할 수 있다”고 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일본의 본심도 솔직하게 토로했다. “아베 총리가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조건없이 만나자고 했다. 납치문제를 전제하지 않는다는 것은 북한과의 관계를 재정립하자는 것이다. 트럼프가 ‘신조, 너 생각대로 해 봐’라고 한 것이다. 한·일 관계가 좋을 때는 한국을 통해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이런 공식(formular)을 바꾸려는 상황이다.”
 
그는 아베와 2013년 골프를 치면서 “한국을 중시하라”고 조언했다. 그러자  아베는 “나는 중국을 신뢰한다. 중국은 한번 정하면 확실히 지킨다”고 했다. 함께 골프를 친 사람들이 “요즘 한·일 관계를 보면 아베 얘기가 맞지 않느냐”고 면박을 준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은 한·일 관계의 악재다. 2005년 노무현 정부의 민관합동위원회 결론을 뒤집어버렸다. 위원회는 강제징용 피해배상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끝났다고 결론내렸다. 당시 총리였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동위원장이었고, 당시 민정 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은 정부 측 위원이었다. 이렇게 해서 과거사 문제만 나오면 가해자로 몰렸던 일본이 단숨에 피해자가 돼버렸고, 한국은 가해자의 난감한 처지로 내몰렸다.
  


이제 대법원 판결은 엎질러진 물이 됐고, 문 대통령은 난제를 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본통인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을 기용한 것은 좋은 신호다. 청와대에서 근무한 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을 주일대사로 임명한 것도 희망을 주고 있다. 남 대사는 “일본 인사들을 만나 ‘해결책을 찾고 있으니 지켜봐 달라’고 설득 중”이라고 했다.
 
늦기 전에 “방치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이낙연 총리가 맡기로 한 민관위원회를 실제로 구성하고 가동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여야 추천 민간 전문가들로 대통령위원회를 만들 수도 있다. 일본 측 인사들은 “작더라도 전향적 태도를 취하면 일본이 달라진다”고 한다.
 
일본도 한국 정부의 현실적 어려움을 이해해야 한다. 일본은 최고재판소 판사 15명 가운데 한 사람은 외무성 출신이다. 미국에도 외교 관련 사안은 연방대법원이 국무부의 의견을 듣는 ‘법정 조언자(Amicus Curiae)’제도가 있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단에 관여하지 못하게 돼 있다. 그래서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고, 일본도 협조해야 한다. 한국 정부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면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오해를 피할 수 없다.
 
정부는 사법부 판결을 존중하고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하는 묘수를 짜내야 한다. 일본의 가나스기 겐지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아베 총리를 일주일에 두세 차례씩 만난다”고 했다. 우리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안보와 경제의 리스크를 제거하기 위해 대통령부터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하경 주필
중앙일보



민주노총, 홍위병처럼 굴지 말라

‘현대중 주총’에 불법무도한 폭행
폭력 면허 받은 홍위병 연상케 해
한국은 선거와 법치가 살아있나

    공포와 광기의 시대였던 중국 문화대혁명(1966~76)의 초기 공안부장은 셰푸즈(謝富治)라는 사람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경찰청장에 해당한다.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친애하는 홍위병들이 온 세상을 헤집으며 폭력을 일삼고 다닐 때 셰푸즈는 다음과 같이 경찰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홍위병이 사람을 죽이면 처벌해야 하는가? 내 견해로는 만일 사람들이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그들의 일이다. 우리 일이 아니다. 만일 대중이 나쁜 사람을 극도로 증오하면 우리는 그들을 막을 수 없다(필립 쇼트가 쓴 『마오쩌둥』 제2권, 356쪽).”

전영기 중앙일보칼럼니스트
 
아무리 공산주의라 해도 사람에게 폭력을 허용하고 그러다 죽어도 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을 형사사법 책임자가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셰푸즈의 발언은 전체주의 독재자 마오쩌둥의 ‘학생들의 운동을 억압하는 데 경찰이 나서지 말라’는 지시에 따른 것이다. 공안부장에게 애초부터 경찰의 수장으로서 직업관이나 소명의식 따위는 없었다. 이 모습은 선거나 의회,법치, 3권분립 같은 것이 작동하지 않았던 문화혁명의 시대적 특성이다.
 
지난 주 울산에서 민주노총(위원장 김명환) 소속원들이 보여준 공공연한 불법과 무도한 폭력을 보면서 이 집단이 문재인 정부의 탄생에 조금 공이 있다 해서 무슨 문화혁명 때 홍위병 행세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노총 노조원 수천명은 5월 31일 현대중공업의 주주총회가 열린 울산대 체육관을 공격했다.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이 아닌 경영상의 문제에 노조가 개입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그들은 합법적인 주총을 보호하기 위해 체육관을 지키던 경찰 1명을 잡아 “개 패듯 두들겨 온 몸에 성한 곳이 없게” 만들어 놨다고 한다. 민주노총 노동자 3명이 집단 폭행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경찰이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팰 수 있느냐’고 항의하자 “회사가 고용한 용역인줄 알았다”고 능글맞게 답변하더라는 것이다. 집단 폭행자들은 헬멧에 마스크를 써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어렵게 꾸몄는데 폭력 면허라도 받은 사람처럼 유유히 현장을 빠져 나갔다는 게 경찰의 증언이다. 


 
노조원의 동생이나 아들뻘 되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캠퍼스는 욕설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폭력자들은 체육관의 대형 유리창들을 박살내고 무대의 외벽 일부를 부숴 버렸다. 대물 피해액은 수천만원에 이른다고하는데 울산대측은 따로 손해 배상을 청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회사측이 궁여지책으로 울산대로 주총장을 옮기기 전 원래 회의 장소로 정했던 곳은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이라는 민간 건물이었다. 5월 27일 법원이 주총방해 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리자 민주노총은 이를 비웃듯 소속원들을 동원해 회관을 점거하고 생업에 종사하던 개인들을 쫓아 냈다. 원천적으로 주총을 방해하겠다는 불법 선언이었다. 조폭과 다를 게 없다. 뒤늦게 경찰 병력이 도착했지만 물리력을 완비한 ‘노동자 해방구’에 법치는 통하지 않았다. 그에 앞서 현대중 노조원들은 서울 상경 투쟁도 했는데 이 때도 공권력 집행자인 경찰 1명의 치아를 두 개 부러뜨렸다. 법원은 무슨 이유에선지 폭력 행사 노조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민주노총의 폭력성과 무도함은 도를 넘었다. 그들의 행태에서 민주적인 준법성과 노조다운 진취성을 못 본지는 한참됐다. 눈치보기가 체질화된 경찰, 거리의 불법과 폭행에 관대해진 법원, 사업자에겐 저승사자처럼 매몰차고 노조엔 무슨 죄를 졌는지 꿀먹은 벙어리, 뒷북 치기로 일관하는 고용노동부, 민주노총이라면 일단 접어주고 들어가는 이 정권의 분위기가 저들의 불법 성향을 키우고 있다. 행여 민주노총이 홍위병처럼 굴지 않길 바란다. 당신들이 사는 이 나라는 문화혁명 시대의 중국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선거로 정권이 교체되고 의회와 헌법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의 나라다.
전영기 중앙일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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