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닮은 꽃 [노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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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닮은 꽃

2019.05.31

“꽃을 피워 밥을 합니다/아궁이에 불 지피는 할머니/마른 나무 목단, 작약이 핍니다/부지깽이에 할머니 눈 속에 홍매화 복사꽃 피었다 집니다/어느 마른 몸들이 밀어내는 힘이 저리도 뜨거울까요/만개한 꽃잎에 밥이 끓습니다/밥물이 넘쳐 또 이팝꽃 핍니다/안개꽃 자욱한 세상, 밥이 꽃을 피웁니다” (엄재국 ‘꽃밥’) 

시인은 ‘꽃’과 ‘밥’이 모여 ‘꽃밥’이 되었다고 노래합니다. 환하고 따뜻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밥을 닮은 꽃들은, 자세히 보면 꽃잎마다 아련한 눈물이 묻어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 꽃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처량한 단소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선친께서 계신 충북 괴산군 청천면 낙영산에 갈 때마다 밥그릇이 놓인 무덤들을 봅니다. 하나같이 하얀 쌀밥이 넘칠 정도로 고봉(高捧)으로 담겨 있습니다. 저세상에서도 배불리 먹길 바라는 후손들(어쩌면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일 수도)의 마음이 읽혀 그런 무덤은 쉽게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꽃 한 송이 놓고 반절을 올립니다. 

아버지 기일(忌日)이 든 사오월이면 낙영산 하늘엔 튀밥이 넘실댑니다. 이팝나무, 때죽나무, 산사나무, 조팝나무 등이 갓 튀긴 쌀, 보리, 옥수수를 머리에 이고 나풀나풀 춤을 춥니다. 이 중 이팝나무는 이름도 ‘이밥(쌀밥)’에서 왔다지요. 꽃이 많이 피면 농사가 잘돼 쌀밥을 배불리 먹게 된다고, 먹을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이밥나무’라 불렀다고 합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고전소설 ‘흥부전’에도 이팝나무가 등장합니다. 흥부가 박을 타는 장면인데요, 첫 번째 박에서 나온 것이 바로 쌀밥입니다. 소설에선 이렇게 묘사합니다. “하얀 쌀밥이 이팝나무만큼이나 쏟아졌다. 스물세 놈 새끼들이 달려들어 퍼먹고 배가 남산만큼이나 커졌다.” 흥부네 최고의 바람이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 ‘며느리 이밥나무’는 몹시 짠한 내용입니다. 경상도의 한 시골 마을에 열여덟 살 착한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온갖 구박을 받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제삿날, 어린 며느리는 조상님께 올리는 귀한 쌀밥인지라 뜸이 잘 들었는지 확인하려 솥뚜껑을 열고 밥알 몇 개를 입안에 넣어봅니다. 이 모습을 본 시어머니는 제삿밥을 몰래 먹었다며 며느리를 맨몸으로 쫓아냅니다. 갈 곳이 없는 며느리는 날이 저물자 주린 배를 움켜잡고 뒷산에 올라 목매 죽습니다. 이듬해 그 자리엔 하얀 쌀밥 모양의 꽃을 피운 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며느리 이밥나무’라 불렀답니다. 살아서 먹지 못한 쌀밥을 죽어 눈으로라도 실컷 먹으라는 애달픈 마음을 담은 게지요.

예나 지금이나, 잘살거나 못살거나 밥은 곧 삶입니다. 누구나 살아 있는 동안엔 밥을 먹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요즘엔 때가 되어도 밥 끓는 냄새가 나는 집이 많지 않습니다. 라면, 햄버거, 피자 등 먹을거리가 풍부해서겠지요. 또 편의점에 가면 흰 쌀밥은 물론 오곡밥, 카레밥, 미역국밥, 전주비빔밥, 김치알밥 등 온갖 종류의 즉석 밥이 넘쳐나니 배고플 때 혼자 나가 입맛대로 골라 먹는 탓이 크겠지요.

“세상이 변했다고 밥까지 사서 먹느냐”라며 혀를 차던 50~70대 주부들마저도 즉석 밥에 환호하고 있답니다. 제각각 귀가하는 식구들을 위해 매번 밥을 새로 짓기도 귀찮고, 미리 해두면 맛이 없어지니 그럴 수밖에요. “보온밥솥에서 며칠 묵은 밥보다 즉석 밥이 훨씬 더 맛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여럿입니다.   

풍족하고 편리한 세상이지만 밥상의 온기를 잃은 듯해 아쉬움이 큽니다. 식구들의 도란거리는 말소리와 젓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사라졌습니다. “착하게 살아라, 베푸는 사람이 되어라…” 부모의 밥상머리 교육도 사라졌습니다. “어여 밥 먹으러 와~” 하고 부르던 다정한 할머니의 목소리도 사라졌습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집밥이 있는 삶’을 소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답니다. ‘집밥’ 하면 ‘엄마의 정성과 손맛’이 떠오르나요. 그렇다면 ‘함께 만드는 집밥’이라고 다시 말해야겠군요. 엄마가, 아내가 혼자서 하는 집밥이 아닌 가족이 같이 만드는 집밥입니다. 장보기부터 채소 다듬기, 요리하기, 상 차리기까지 각자 잘하는 일을 분담하는 것이죠. 집밥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맛’은 한층 좋아집니다. 꽃이 세상에 밝음을 보태듯 밥을 지으며 가족에게 사랑을 보탤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도 밥을 짓고 있군요. ‘치익~치익!’ 밥 끓는 구수한 소리와 냄새가 여기까지 납니다. 갓 지어 김 모락모락 나는 밥을 상상하니 제 마음도 달뜹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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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담당 연구원을 거쳐 현재 이투데이 부장대우 교열팀장. 우리 어문 칼럼인‘라온 우리말 터’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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