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업체들 줄도산… 내년이면 자력으로 원전 못짓는 나라 될 것"


탈원전 2년 악마의 숲

원전은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 한 군데 빠지면 전체가 무너져

20년간 4배 늘었던 원전산업 매출, 2년전부터 처음으로 감소
쌓은 기술도 날아가… "5년 정권이 에너지 백년대계 망가뜨려"

  "근대화 기수라고 치켜세우더니 헌신짝처럼 버리네요. 피땀 흘려 기술 개발한 대가가 회사 문 닫는 건가요…."

원전 부품업체 경성정기의 성남현 전무는 "신고리 원전 5·6호기 납품이 끝나면 일감이 없다"며 "외국 원전 업체가 같이 일하자고 할 때 진작에 손잡아야 했는데 정말 후회된다"고 했다. 부산시 강서구 녹산산업단지에 있는 경성정기는 원자로 핵심 부품 11개를 국산화해, 한때 원전 부문 매출이 연 100억원에 달했다. 직원도 100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4분의 1에 불과하다. 작년 매출은 반 토막 났고, 적자를 냈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인 지 2년도 안 돼 벌어진 일이다

텅 빈 원전부품 선반 -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 2년 만에 원전 산업 생태계가 붕괴하고 있다. 27일 경남 창원시 봉암공단에 있는 원전 부품업체 에스에이에스 공장이 멈춰 있다. 수주가 끊긴 이 회사는 최근 법원에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김동환 기자

창원의 원전 부품 업체 대표 B씨는 지난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잇따라 내놓자 은행 대출을 받아 설비를 늘렸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백지화되면서 도산 위기에 몰렸다. B씨는 "헐값에 기계를 내놔도 원전을 안 짓겠다는데 사 갈 사람이 있겠느냐"며 "비싼 은행 이자 물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고 했다.



"내년부터 원전 못 지을 것"
창원에 있는 C사는 3년 전 공장 증설을 위해 땅을 사들였다가 지금은 절반을 공터로 놀리고 있다. 잡초만 우거진 공터엔 벌겋게 녹슨 자재만 쌓여 있다. C사 대표는 "50년 기름밥 먹으며 회사 일구고, 기술 개발 자부심 하나로 살아왔는데 직원들 다 내보내고, 자식에게는 빚만 남겨 주게 생겼다"고 했다.

박상덕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박사는 "올해부터 원전 업체가 줄줄이 도산해 수십 년간 쌓아온 기술력과 노하우도 함께 무너져, 내년부터는 자력(自力)으로 원전을 짓지 못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며 "해외로 유출된 인력과 장비를 다시 찾아 원전 생태계를 회복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탈원전 선언 후 원전 산업 매출 첫 감
한국원자력산업회의에 따르면 우리나라 원전 산업 매출은 1997년 6조5235억원에서 20년 만인 2017년 4배로 성장했다. 하지만 탈원전이 시작된 2017년 23조8855억원으로 전년보다 13% 감소했다. 원전 산업 매출 감소는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97년 이후 20년 만에 처음이다.

문 정부가 탈원전 선언으로 건설 계획을 백지화한 원전은 6기. 원전 2기에 9조원 정도 드는데, 건설 비용으로만 27조원의 매출이 사라진 셈이다. 원전 업계 한 해 매출과 맞먹는 규모다. 40년 넘게 이어질 원전 운영·정비까지 포함하면 탈원전으로 인한 매출 감소는 더 커진다.



특히 원전 업체 90%가 중소기업이어서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정부는 업종 전환과 해외시장 진출을 돕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은행 대출까지 받아 업종 전환을 시도한 부산의 D사는 인건비 20억원만 날렸다. D사 대표는 "정부는 업종 전환이 칼국수 만들다가 수제비 만드는 것처럼 쉽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라며 "수십 년 쌓아온 기술력이 하루아침에 날아가게 생겼는데 너무 억울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원전 산업 생태계 붕괴=안전 붕괴"
원전 부품 제작과 정비를 하는 창원의 성일엔지니어링 사무실에는 지난 2014년 두산중공업이 수여한 우수 협력사 감사패가 놓여 있다. 감사패엔 '해외 수입에 의존해 오던 부품을 국산화해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했다'고 적혀 있다. 성일엔지니어링은 4억8000만원을 투자해 부품 국산화에 성공했다. 김충열 이사는 "원전은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여서 한 군데가 무너져 이가 빠지면 전체가 무너지고 결국 원천 기술을 가진 외국 기업에 의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원전 생태계 붕괴는 가동 중인 원전의 안전을 심각히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중소 원전 업체의 도산은 안전성, 경제성 측면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며 "더 심각한 문제는 가동 중인 원전의 안전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전수용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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