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 망하는 건 옛말, 한번에 우르르 무너질 것"


생존 기로에 선 지방 사립대

총장 등 대학관계자 '하소연'


    최근 서울의 한 대학에 다른 지방 사립대 관계자들이 잇따라 찾아왔다. 재정난 때문에 학교 운영이 힘드니 자기 대학을 인수해 달라고 제안하러 온 것이다. 이 대학 관계자는 "최근 들어 매물로 나온 대학들이 쏟아진다"면서 "다들 어려운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대학을 인수하겠느냐"고 했다.


지방의 일부 사립대가 "재정난이 너무 심각해 학교 운영을 못 하겠다"고 아우성이다. 겉으론 번듯한 대학들도 매물 시장에 나온다. 최근엔 명지대, 명지전문대를 운영하는 명지학원이 빚 192억원을 갚지 못해 채권자로부터 파산 신청을 당했다. 학교 법인이 파산해 새 인수자를 못 찾으면 대학도 폐교 수순을 밟아야 한다.


대학들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10년 넘게 등록금이 동결됐고, 저출산으로 학생 수가 줄어 등록금 수입도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신입생 충원율이 낮고 평가 점수가 낮은 대학에 대해 '부실대학 판정'을 내리고 재정 지원을 끊는다.


앞으로 상황은 점점 더 최악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2021년에 전체 4년제 대학 191곳, 전문대 137곳 중 38곳이 신입생을 단 한 명도 못 뽑고 문을 닫을 것으로 예측한다. 당장 2년 뒤 얘기다. 지난해 전국 대학 모집 정원(48만3000명)이 그대로 유지되면 2021학년도엔 고교 졸업생보다 대학 정원이 5만6000명 많아지기 때문이다. 수십 개 대학이 도산 직전에 있다. '생존의 기로'에 선 사립대에선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총장, 법인 관계자, 처장급 교수들에게 들은 지방 사립대 실태를 육성으로 전한다.


영남 A대 법인 관계자

―재단에 비리 문제가 있어 정부 관선 이사가 파견됐다가 몇 년 전 겨우 정상화됐다. 관선 이사 파견 시절에 새 과(科)가 10개 넘게 생겼다. 주인이 없으니 교수들이 마음대로 학교를 좌지우지한 거다.


―새 재단이 인수한 후 학과도 줄이고 겨우 안정됐다 싶었는데, 이젠 학생 모집이 안 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입생 충원율이 90%였는데, 이제 70% 이하로 떨어졌다. 10년 만에 이 지역 고교생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어렵게 신입생을 뽑아놔도 1년에 수백 명씩 다른 대학으로 간다. 군대 가면 애들이 안 돌아온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들이 망한다'는 건 옛말이다. 한꺼번에 우르르 쓰러질 거다.


작년 8월 강원 동해시 한중대 도서관 앞에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한중대는 교비 횡령, 채무 급증, 부실대 지정 등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다 결국 작년 2월 정부로부터 강제 폐쇄됐다(왼쪽). 지난달 8일 대학 직원들로 구성된 전국대학노조가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고등교육 정책을 등한시한다. 고등교육 예산을 늘려 달라”고 요구했다(오른쪽). /뉴시스


―가장 힘든 건 재정난이다. 정부가 등록금을 10년 넘게 동결하니 매년 적자다. 적립금 없고 등록금 수입이 전부라 직원 연봉 깎아 적자를 메워 왔다. 사실 정부가 '등록금 올리라'고 해도 이제 못 올린다. 지방대가 등록금까지 비싸면 누가 오겠나.


―자구책으로 학과 구조조정을 해도 문제다. 얼마 전 과(科)를 하나 없앴는데, 다니던 학생들 졸업할 때까지 수업을 보장해 줘야 한다. 학생은 2~3명인데 교수 월급은 그대로 나간다. 상황이 이러한데 교수, 직원들은 자기 밥그릇 다툼만 하지, 대학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 안 한다. 답답하다.




호남 B대 총장

―등록금 수입이 100이면, 지출이 115다. 학생들 교육에 새로 투자하는 건 꿈도 못 꾸고 현상 유지도 겨우겨우 한다. 상황이 너무 어려워 직원 급여를 일주일, 한 달씩 늦게 줄 때도 있다. 사업하는 사람들이 급한 불 끄는 식이다. 우리뿐 아니라 이런 대학들이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정부 평가에서 하위 40%로 분류돼 참담했다. 그런데 얼마 전엔 하위권 대학들을 다시 평가해 일부만 평균 23억원씩 줬는데, 열심히 준비했는데도 또 떨어졌다. 대학을 두 번 죽인 셈이다.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인근 고교에 가 보니 매년 한 학급씩 학생들이 줄어들더라. 위기감이 엄청나다. 대학에 입학하는 아이들도 그만큼 줄어든다는 얘기니까. 그런데 지금은 대학 경영진이 학교를 정리하고 나가려고 해도 퇴로(退路)가 없다. 설립자가 재산을 다 가져가게 해 달라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학교 부지나 시설을 현금화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그래야 직원들 밀린 월급이라도 줄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지자체가 학교 부지 용도 변경을 안 해주니 팔리질 않고, 현금화가 안 되니 부지는 방치되고, 구성원들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 이러니 학교 문 닫는 걸 구성원 누구도 찬성하지 않는다.


영남 C대 보직 교수


학령 인구 감소로 남아도는 대학 정원 그래프


―우리는 8년 전 정부 평가에서 하위권에 들어 정부 재정 지원이 끊기자 고통 분담 차원에서 교직원 월급도 동결했다. 그런데 최근 퇴직 교수들이 "임금 동결로 못 받은 월급 5억원을 한 번에 달라"고 소송을 냈다. 최근 대학이 2심까지 패소해 결국 교수들에게 3년치 밀린 임금을 지급했다. 교수들은 "왜 우리 임금은 동결하고, 총장은 업무 추진비를 올렸느냐"고 수사 의뢰까지 했다. 다른 대학들이 학생 줄고 재정난 때문에 위기라고 하는데, 우린 내부 싸움까지 벌어져 사면초가다.


―대학 운영이 정말 너무 어렵다. 등록금은 10년째 그대로인데 물가는 오르니 곳간 바닥을 박박 긁을 수밖에 없다. 대학이 수업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학생 해외 연수, 학술 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야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데, 그런 걸 줄일 수밖에 없다. 교수들도 출장을 제 돈 내고 다닌다. 구성원 모두 피로도가 높아 학문 정진은커녕 불만만 토로한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학생 수가 줄었지만, 앞으로 몇 년 줄어드는 속도가 엄청날 것이다. 금년부터 어느 대학이든 발 한번 잘못 디디면 벼랑 아래로 떨어진다. 한국 대학들이 지금까지 접하지 못한 상황을 맞게 된 거다. 우리도 이 지역에선 괜찮은 학교 소릴 들었는데, 등록금 동결 10년 만에 이렇게 추락할지는 정말 몰랐다.




학교 땅 내놔도 청산 절차 복잡한데다 특혜 시비… 부실 대학들 '진퇴양난'

부실대가 스스로 정리할 수 있게 설립자에게 출연금 일부 돌려줘야


교육부는 지난 2013년부터 학생 인구 감소에 대비해 '대학 구조조정'을 추진해왔지만, 실적은 지지부진하다. 지난 2000년 이후 지금까지 문을 닫은 대학은 16곳뿐이다. 정부가 강제로 부실 대학 문을 닫게 하거나, 부실 대학들이 스스로 문을 닫을 수 있게 유도하는 법안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엔 부실 대학들을 강제로 문 닫게 하는 '사립대학 구조조정법'과 '대학구조개혁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논의가 안 되고 자동 폐기됐다. 사학 법인이 해산할 때 설립자에게 출연금 일부를 돌려줄 수 있도록 퇴로(退路)를 열어준 조항이 '특혜'라는 논란이 일었다. 지난 2016년 20대 국회에 들어서도 비슷한 내용의 '대학 구조개혁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국회 계류 중이다.


폐교 대학 관리 대책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보통 폐교 대학들은 교직원 체불 임금 등 부채가 많다. 학교 부지 등 재산을 매각해야 부채를 해결할 수 있지만, 이런 대학들이 교외에 있는 경우가 많고 청산 절차도 복잡해 매각이 쉽지 않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 부지를 누군가 사서 개발하려면 지자체가 용도를 변경해줘야 하는데, 특혜 시비가 붙을 수 있어 꺼린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2000년 이후 문 닫은 16개 대학 중 재산 매각이 제대로 된 곳은 한 곳뿐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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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폐교 대학의 재산 매각 등을 관리하는 전담 기관을 설립하기로 하고 지난해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고 동시에 예산 1000억원을 신청했지만 기획재정부가 전액 삭감했다. 교육부는 폐교 대학의 교직원 체불 임금을 국고에서 먼저 지급하고 이후 재산을 매각해 회수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에 기재부가 부정적이었던 것이다. 교육부는 "앞으로 2~3년 학생 수가 크게 줄어 폐교 대학이 속출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올 하반기엔 근거 법을 만들고 예산을 확보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경회 성신여대 교수는 "부실대가 스스로 정리할 수 있게 하려면 설립자에게 출연금의 일부를 돌려주는 등 퇴로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했다. 과거 정부는 소규모 초·중·고교 통·폐합을 유도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법인 해산 시 설립자에게 출연금 일부를 장려금으로 돌려주고, 잔여 재산을 공익법인 설립에 출연할 수 있게 해줬다. 이런 사례를 한시적으로 대학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연주 사회정책부 교육팀장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23/20190523039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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