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는다는 것... 전문가의 조언

김집<건축가·‘내집 100배 잘 짓는 법’ 저자>

 

집, 비용·시간 들여 설계하고 시공 땐 세곳 이상 견적 비교를


설계하는 데 6개월, 집 짓는 데 2개월

예비 건축주, 비용 아끼려다 본인이 원하는 집 못 지어

수개월간 도면 검토·수정 후 시공회사에 견적 의뢰해야

 

    음악에는 악보가 있고 집에는 설계도가 있다. 악보 없는 연주는 상상할 수 없다. 솔로 연주라면 악보 없이 영감이 떠올라 즉흥적인 연주가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오케스트라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더욱이 지휘자까지 없다면 그 공연은 최악이 될 것이다. 또 같은 오케스트라라 할지라도 지휘자의 역량과 능력 그리고 열정에 따라서 연주의 질이 달라진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다. 건축(Architecture)이라는 말은 서양에서는 ‘큰, 으뜸, 우두머리’라는 의미의 접두어 ‘Archi’와 ‘기술’을 뜻하는 ‘Tecture’의 합성어로서 ‘모든 기술의 으뜸’ 또는 ‘큰 기술’이라는 뜻이다. 동양에서는 ‘세울 건(建)’자와 ‘쌓을 축(築)’자를 합해 ‘건축(建築)’이라 한다. 따라서 건축가(建築家)는 건축 계획을 세우고 설계를 하며 공사를 감독하는 사람으로,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고 설계도는 악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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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이야기다. 건축가와 예비 건축주의 첫 만남은 예비 건축주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가 꿈꿔왔던 집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건축가가 백지 위에 선을 하나씩 그려가는 과정이 바로 설계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설계를 완성하기까지 최소한 반년은 잡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데 예비 건축주는 집 지을 첫 준비로 시공업체부터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것은 시공이 주(主)고, 설계는 부(附)라는 인식의 반영이다. 건축주가 시공업체를 먼저 찾는 이유 중에는 어차피 시공을 맡길 것이므로 설계는 서비스로 받겠다는 속셈이 있다. 맞다. 실제 서비스로 해주는 곳이 많다. 건축비에 비하면 설계비는 그야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설계 완성 이후 시공업체가 제시한 시공 견적이 생각보다 높았을 때 말이다. 설계를 하며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한 데다 설계가 완성된 마당에 없었던 일로 할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설계와 시공을 분리하라고 조언한다. 설계는 설계사무소에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맡겨야 한다. 그래야 마음에 들 때까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검토하고 수정하기를 반복할 수 있다.


건축에 문외한(門外漢)이라 설계도를 봐도 모른다고?그렇기 때문에 설계에 최소한 6개월이 필요하다고 필자는 주장하는 것이다. 설계도를 처음 봤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한달이 지난 후 다시 보면 보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들여 그리고 고치기를 반복하고 보고 또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설계도가 완성되면 그때 시공회사로부터 견적을 받아도 늦지 않다. 그리고 적어도 세곳 이상의 시공회사로부터 견적을 받아 비교·검토한 뒤 시공회사를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 필자가 왜 ‘설계하는 데 6개월’이 걸려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은 그 일에 필요한 만큼 시간을 들여야 한다. 집을 짓는 일은 평생에 한번일 경우가 많다. 그것도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선택받은 사람만이 자신의 집을 짓는다. 그렇게 지은 집은 대(代)를 물려 살게 될 수도 있다. ‘집은 설계로 시작해서 설계로 끝난다.’

농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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