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들의 목소리] 네가 내 집값을 아느냐

네가 내 집값을 아느냐

최경선 논설위원


   프랑스의 필리프 4세는 영토 욕심이 많아 수많은 전쟁을 도발했다. 그러다가 전쟁비용이 부족해지자 성직자에게 세금을 거둬 교황과도 충돌했다. 교황을 유폐시키고 나중에는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겨버렸던 장본인이다. 그 필리프 4세가 전쟁비용을 긁어내려고 1303년 `창문세`라는 걸 고안했다.


창문 수가 많으면 집도 크고 돈도 많을 것이니 더 많은 세금을 거둘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교황을 굴복시킨 그였지만 이 엉성한 계산법으로는 주민들의 조세저항을 막을 수 없어 창문세는 곧 폐지됐다.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 때 재정이 거덜나자 창문세가 되살아났는데 프랑스대혁명 이후에는 귀족과 부자를 옥죄는 수단으로 맹위를 떨쳤다. 영국의 찰스 2세도 청교도와 전쟁으로 나라 곳간이 바닥을 보이자 1662년 `난로세`라는 세금을 고안했다. 벽난로가 많으면 집도 크고 부유할 것이니 난로 숫자에 따라 세금을 더 걷겠다는 것인데 이 세금엔 결정적 결함이 있었다. 벽난로 숫자를 확인하려면 세금 징수원들이 집 안을 살펴야 한다. 사생활 침해까지 빚어지니 조세저항이 더 증폭됐다. 난로 숫자를 확인하러 들어갔다가 맞아 죽는 세금 징수원까지 생겨나자 난로세는 결국 폐지되고 창문세로 대체되는 운명을 맞았다. 




한국과 중국의 과거 역사를 보더라도 국가는 생산능력을 가진 사람과 토지에 주로 과세했다. 토지는 생산수단이지만 주택은 국민의 안식처로 이해됐다. 1가구 1주택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주택에도 과세의 칼날을 겨누기 시작한 것은 전쟁으로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였다. 


한반도가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고 한다. 국가 재정도 넉넉하다고 한다. 이런 때에 정부는 공동·단독주택 공시가격을 대폭 끌어올렸다. 서울 지역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지난해 10% 올랐고 올해에도 14% 인상됐다. 서울 지역 단독주택 공시가격도 2년 동안 25% 이상 인상됐다. 정부는 집값이 많이 올랐으니 공시가격을 올렸을 뿐이라고 설명하지만 집을 가진 사람들의 불만은 폭발하고 있다. 아파트·다세대주택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놓고서 3월 15일부터 4월 4일까지 2만8000여 건의 불만이 접수됐다. 지난해보다 22배나 많아진 것이라고 한다. 아파트·다세대주택을 놓고도 이 정도라면 집의 위치·형태·마감재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단독주택을 놓고서는 얼마나 많은 불만이 쏟아질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주택 공시가격은 재산세, 건강보험료 등 60여 개 행정의 기초자료로 쓰인다. 이런 중요한 가격을 한꺼번에 왕창 올리는데 공정성, 투명성, 안정성은 뒷전이다. 여기저기서 자의적으로 계산한 흔적도 엿보인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집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서울 한남동 자택으로 공시가격이 지난해 261억원에서 올해 398억원으로 52.4% 올랐다. 이 회장의 서울 이태원동 주택은 지난해보다 43.8% 급등한 338억원으로 집값 2위다. 그다음 상위권에 포함된 주택들도 대부분 대기업 총수들 소유고 이들의 집값은 대개 40% 이상 급등했다. 보통 주택과 비교하면 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이 2~3배에 이른다. "저 사람이 가진 주택이라면 당연히 비쌀 것이고 저 사람이 가진 주택은 오르기도 많이 올랐을 거야"라는 이름값이 덧씌워진 느낌도 든다. 이런 논란의 와중에 집값 산정 기준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세금을 내야 할 국민도 자신의 집값이 무슨 기준과 어떤 계산 방식으로 산출됐는지 모른다. 여기에 표준 단독주택이냐 개별 단독주택이냐는 분류에 따라 공시가격 상승률이 차별화되기까지 하니 공정성에 대한 불만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을 한꺼번에 의욕적으로 인상했더니 여기저기에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집값 공시가격도 마찬가지다.


의욕만 앞세울 일이 아니다. 국민과 함께 가야지 국민을 상대로 전쟁 치르듯 할 일이 아니다. 이제 한 달간 공동·단독주택 공시가격에 대해 이의신청을 받게 된다. 아무쪼록 국민 목소리를 폭넓게 받아들이기 바란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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