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억 들여 건진 바다쓰레기, 육지의 '쓰레기山' 됐다


500억 들여 건진 바다쓰레기, 육지의 '쓰레기山' 됐다


폐기물 처리업자들, 

용역비 챙긴 뒤 임야에 쌓아둔채 사라져 


전라도에만 쓰레기산 20여곳

"바다 오염 막으려다 토양 오염"


   지난 24일 전남 완도군 완도읍에 있는 농공단지 옆 공터. 3300㎡(약 1000평) 넓이 사유지에 10m 높이의 '쓰레기 산'이 솟아 있었다. 

 

3000t에 달하는 폐(廢)그물, 통발이다. 가까이 가자 악취가 코를 찔렀다. 공터와 맞닿은 농공단지에는 100여개 기업이 입주해있다. 한 주민은 "2010년부터 해양 쓰레기가 쌓였다"며 "비 올 때는 악취 때문에 공단 근로자들이 고역을 겪는다"고 했다.


이 해양 쓰레기는 정부가 세금을 들여 바다에서 건졌다. 해양수산부는 2008년부터 "선박 사고와 해양 자원 감소를 막는다"며 바닷속 폐어망, 폐어구, 생활쓰레기 77만t을 인양했다. 




매년 정부 예산 500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본지 취재 결과 이렇게 끌어올린 해양 쓰레기 가운데 일부가 전국의 임야에 무단으로 투기·매립되고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전남, 전북에서 확인한 해양 쓰레기 산만 20곳이 넘는다"고 했다.


한 폐기물 처리 업체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25일 전북 김제의 농가 근처를 찾았다. 1000t의 해양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1년 전 생겼다고 한다.


지난 24일 전남 완도군 완도읍의 한 공터에 바다에서 건져 올린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폐그물, 통발 등의 해양 폐기물과 생활 쓰레기가 쌓이다 못해 옆 컨테이너 창고보다 높아지고 있다. /김영근 기자


3m 높이 가림막을 둘러놨지만 바로 옆에는 염소 농장과 포도밭이 있었다. 주민 이성복(72)씨는 "지하수를 끌어와 밭농사를 하는데, (쓰레기 산) 밑바닥에 콘크리트 타설도 안 돼 있어 침출수로 인한 토양 오염이 우려된다"고 했다. 김제에만 폐그물로 된 이런 쓰레기 산이 6곳 있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 일대 야산과 고속도로 주변에 불법 매립된 해양 쓰레기가 2만t이 넘는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해수부가 해양 쓰레기를 건져내면 이후 처리는 지방자치단체가 맡는다. 시·군에서 입찰 공고를 내 폐기물 처리 업체를 선정한다. 폐기물 1t당 예산 30만원이 들어간다. 1000t이면 3억원인 셈이다.


쓰레기 산이 생기는 이유는 입찰을 따낸 업체들이 돈만 받고 불법 투기하기 때문이다. 해양 쓰레기는 세척, 열처리 등 생활 쓰레기보다 처리 작업이 까다롭다. 소각·처리 비용이 높다 보니 처리 업체들이 노지에 방치하거나 하도급업체에 떠넘기는 경우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업자들이 판단력이 부족한 노인을 골라 호감을 사고 땅을 빌린 후 쓰레기를 쌓아 놓고 도주하는 방식으로 돈을 번다"고 했다.


매년 수백억원의 정부 예산이 풀리면서 처리 업체도 늘어났다. 전라도에만 해양 폐기물 처리 업체가 20곳이 넘는다. 일부 영세 업체는 수리 비용 3000만원을 감당하지 못해 폐그물에서 불순물을 걸러내는 기계도 돌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폐기물관리법 등에 따르면 지자체 허가를 받지 않고 해양 폐기물을 야적(野積)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허가를 받아도 가림막 설치 등 환경오염 방지 조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해수부나 지자체 모두 바다에서 건진 쓰레기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처리되는지 관리·감독하지 않는다. 해수부 관계자는 "어민 피해를 막기 위해 해양 폐기물을 인양하고 있지만 폐기와 처분은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환경부나 지자체 소관"이라고 했다. 지자체 관계자들도 "관련 규정에 따라 처리하고 있다"고 했다.


적발되더라도 처벌이 가볍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남 무안에선 한 폐기물 중간처리업자가 25t 트럭 800대분(2만여t)의 해양 폐기물을 불법 매립했다가 적발됐다. 쓰레기 더미 위에 흙을 덮고 유채를 심었지만 주민이 신고했다. 이 처리업자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업체를 평가하거나 사후 감독하는 시스템이 허술한 탓에 전북 정읍에선 공무원이 퇴직 후 관련 업체를 차려 예산을 챙기고 600t의 폐그물을 무단 매립하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제주도에서도 바다에서 건진 폐그물이 해안가에 쌓이고 있어 도청이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바다를 깨끗하게 하겠다는 선의(善意)가 내륙을 오염시키는 역설을 낳고 있다"며 "정부가 해양 쓰레기 관리 주체·처리 방식을 명확히 하고, 민간에 떠넘기다시피 한 사후 관리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완도·김제=김은중 기자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28/20190328000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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