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같은 사람 [노경아]


봄날 같은 사람 [노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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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같은 사람

2019.03.27

봄날, 잡념이 가득해 잠을 이룰 수 없을 때 어떻게 하시나요?  저는 주로 필라테스(Pilates) 스트레칭을 합니다. 무릎과 양손을 바닥에 대고 엎드려 고개를 숙이며 등을 동그랗게 위로 말았다, 천천히 등을 펴고 꼬리뼈를 위로 올리며 고개를 드는 고양이 자세를 대여섯 번 합니다. 등이 좀 풀렸다 싶으면 다리를 쭉 뻗고 엎드립니다. 편안한 호흡으로 어깨 아래에 손바닥을 대고 숨을 내뱉으며 상체만 일으켰다, 숨을 들이마시며 다시 내리는 코브라 자세를 열 번가량 합니다.

그런 다음엔 무릎을 꿇고 종아리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절대 떨어지지 않게!) 몸을 앞으로 굽혀 이마를 바닥에 대고 복식호흡을 합니다. 팔은 엉덩이 옆에 자연스럽게 내리고 손바닥은 하늘을 향하게 둡니다. 엄마의 자궁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태아의 모습을 본딴 아기 자세입니다. 아기 자세는 모든 잡념을 없애고 스르륵 잠에 빠지게 하는 효과가 큽니다.

필라테스는 독일인 의사 요제프 필라테스(Joseph Pilates)가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 랭커스터 포로수용소에 갇힌 포로들과 부상한 군인들을 위해 고안해낸 재활운동이라고 합니다. 좁은 장소라도 매트리스만 있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자세로 구성했다지요. 물론 또 다른 설(說)이 있긴 하지만 이 이야기가 제겐 가장 그럴싸하게 들립니다. 호흡·명상과 더불어 동작을 천천히 하는 필라테스는 대표적인 ‘슬로 엑서사이즈(Slow Exercise)’입니다. 말 그대로 ‘느린 운동’으로, 빠르고 격한 운동을 추구하는 ‘패스트(Fast) 엑서사이즈’와는 대칭되는 개념이죠.   

그래서일까. 제게 필라테스는 운동이라기보다는 생활방식입니다. 잡념으로 잠을 못 이룰 때뿐만 아니라 기분이 상했을 때도 필라테스 자세를 취하면 내면을 들여다보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특별한 효험이 있습니다. 뱃살이 빠지고 복근이 생기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보람이지요.

그런데 스트레칭으로도 잡념을 못 잡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날엔 복잡하게 얽힌 생각으로 뇌가 혹사당해 머리가 무겁고 힘이 듭니다. 몇 년 전 어느 날 감사하게도, 스티븐 런딘과 카 헤이저먼의 공저 ‘한 걸음만 더’를 읽다가 잡념을 완전히 떨쳐버릴 비법을 터득했습니다. 바로 이 문장입니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게 있죠. 최고가 되고 싶다면 에너지, 특히 신명 에너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들은 신명 에너지를 실천하기 위해 ‘에너지 언어’까지 만들어냈어요.”

비법이란 ‘에너지 언어’를 떠올리는 것입니다. 저는 ‘에너지 언어’를 삶에 힘을 주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힘들고 괴로울 때 가슴을 따뜻하게 해줄 긍정의 말, 행복의 말 말입니다. 이른 새벽 깨어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할 때 긍정의 단어를 떠올렸지요. 꽃, 함박웃음, 햇살, 순수, 감사…. 그랬더니 각각의 단어와 어울리는 사람들이 그려지더군요. 그러곤 어느 순간 곤히 잠들었습니다. 긍정의 단어와, 그 말을 실천하는 사람이 ‘주문’이 되어 제 머릿속을 가볍고 맑고 밝게 만들어준 겁니다. 그야말로 언어의 마법입니다.

꿈과 생각을 실현해주는 ‘마법의 말’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나요? 동화 ‘신데렐라’ 속 요술할머니의 “비비디 바비디 부”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또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말한 대로 이뤄지리라)”,“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걱정 마,다 잘될 거야)’ 등도 있지요.  

그렇다면 머릿속이 복잡할 때 스르륵 잠이 들게 해줄 사람으론 누가 떠오르나요? 저는 맛있는 밥 한 끼 사주는 사람, ‘빨간 모자 쓴’ 소주 한잔 사주는 사람, 매사에 고마워하며 사는 사람, 매 주말 요양원에 가서 할아버지·할머니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로 웃음을 주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석·박사들보다 훨씬 더 귀하고 아름다운 ‘밥사, 술사, 감사, 봉사’의 주인공들입니다. 시인인 이해인 수녀가 시 ‘봄날 같은 사람’에서 그린 이들과 비슷하지 싶습니다. 고백하자면 따뜻하고 다정한 말로 자연과 삶을 노래하는 이해인 수녀는 제겐 늘 봄날 같은 사람입니다.

봄밤, 오색찬란한 빛깔에 설레서, 혹은 걱정과 근심으로 잠들기 힘들다면 ‘봄날 같은 사람’을  생각하세요. “그는 아마도 늘 희망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따뜻한 사람, 친절한 사람, 명랑한 사람, 온유한 사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 창조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일 게다.”(이해인, 봄날 같은 사람 중)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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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담당 연구원을 거쳐 현재 이투데이 부장대우 교열팀장. 우리 어문 칼럼인‘라온 우리말 터’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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