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인권' 사라진 고시원…강남보다 비싼 월세의 역설/2평짜리 '외딴 삶'… 사각지대 몰리는 인권


'주거인권' 사라진 고시원…강남보다 비싼 월세의 역설


정부·지자체 무관심 속 최소 주거조건은 이미 상실 

3.3㎡방 월세 27만원…강남 오피스텔보다 평당가 비싼 꼴 

권리금 상승 등 세입자에 전가…치솟는 가격에 더 싼곳으로


청계천 판잣집이나 옥수동 달동네는 사라졌지만 도심 속 빈곤 공간은 여전하다. 근본적인 원인인 가난과 주거난을 해결한게 아니라 도시 공간에서 보이지 않도록 밀어난 탓이다. 이른바 '빈곤의 비가시성' 효과다. 이들이 밀려나 자리잡은 고시원은 주거 인권마저 떨어뜨리고 있다. 매년 화재 등의 사고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만 시설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최근 정부와 서울시가 전국 고시원을 대상으로 시설점검 및 리모델링에 나섰지만 이미 한계는 드러나고 있다. 아직도 확인되지 않은 고시원의 부실한 관리 실태와 개선 방향을 미리 짚어본다. <편집자주> 


서울 종로구 한 고시원의 방 내부 모습.


   지난해 화재 사고로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을 최근 다시 찾았다. 사고가 발생한지 약 넉 달만이다. 멍자국 같던 외벽 그을음은 지워져있었고 잿더미로 뒤덮였던 건물 내 복도 벽면도 페인트로 말끔히 덧칠돼 있었다. 


건물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새 단장을 하고 임차인을 맞고 있었다. 참혹한 희생이 계기가 돼서일까. 약 세시간 동안 종로구 일대 10여곳의 고시원을 방문해보니 대부분 화재예방 설비를 갖춘 것으로 확인됐다. 사용연한이 넘은 낡은 소화기는 새 것으로 교체됐고 스프링클러도 '스펙'처럼 설치돼 있었다. 종로3가 A고시원장은 "지난해 사고 이후 벌써 다섯번이나 소방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화재 예방 시스템이 한층 촘촘해진 것과 대조적으로 이보다 더 근본적인 주거 인권의 문제는 여전히 방치되거나 더 악화된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른 권리금 인상, 인건비 상승, 각종 안전설비 설치 비용은 세입자에 전가돼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주거요건은 더욱 위협받고 있었다. 


종로3가역 인근에 있는 B고시원. 이곳에서 만난 어학원 수강생 박모(27)씨는 "처음에 왔을 땐 무슨 관짝에 눕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의 방 크기는 약 3.3㎡로 침대와 책상, 냉장고가 전부였다. 외창 달린 방에 비해 5만원 더 싼 창문없는 방이었다. 월세는 27만원으로 이 일대에선 저렴한 편에 속했다. 그는 "취업을 일찍 하지 못한 죄책감에 일부러 가장 싼 고시원에 들어왔다"며 "이곳에 오래 머물면 왠지 우울증에 걸리는 것 같아 보통 학원에서 밤 늦게까지 공부한다"고 했다. 


사실 따져보면 박씨의 방이 절대 싼 게 아니다. 오히려 강남 초역세권의 유명 오피스텔보다 몇배 비싸다. 현재 청담역 인근에 위치한 A오피스텔은 전용면적 25.84㎡에 보증금 1000만원, 월세 100만원이다. 만약 1000만원을 빌려(금리 4%로 가정) 월세와 대출이자를 포함해 한달에 약 103만원씩 방값으로 낸다고 가정하면 3.3㎡당 가격은 약 13만1500원이다. 박씨가 내는 돈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고급 오피스텔은 화장실과 세면대, 냉ㆍ난방기기, 각종 화재ㆍ도난 방지서비스, 주차장, 생활편의시설 등의 혜택도 누릴 수 있다.


서울 종로구 한 고시원의 내부 복도.


이 같은 역설이 생겨난 된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이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 관련 정책에만 관심을 쏟는 정부와 지자체의 무관심, 이로 인해 나타난 법과 제도의 허점, 이를 악용하는 건물주와 고시원업자의 편법, 고시원이라는 건물의 특수성 등이 결합된 복합적인 결과로 파악됐다. 


정부는 2011년 주택법 개정을 통해 1인가구의 최소주거조건을 14㎡ 이상 면적에 전용부엌과 화장실을 갖추도록 했지만 고시원은 '다중생활시설'로 분류돼 이를 적용받지 않는다. 기준을 강제하는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지자체에서 하는 건축물 승인도 주먹구구 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원룸의 방 쪼개기는 법적 처벌을 받지만 고시원은 이 마저도 비껴간다. 고시원 구조가 주로 방이 수십개로 잘개 쪼개진 '벌집형'을 띠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낙원상가 인근에 위치한 C고시원의 경우 성인 남성 두명이 지나가면 게걸음을 해야 할 정도로 복도 폭이 좁았다. 2009년 3월부터 고시원 복도의 가로 폭이 120cm로 의무화 됐지만 이 고시원은 100cm도 채 되지 않았다. 해당 규정이 만들어지기 전에 허가를 받았다는 이유로 제재 대상이 아닌 것이다. C고시원에 7년째 거주해왔다는 신모(61)씨는 "권리금, 리모델링비, 인건비, 식비 등이 올랐다는 이유로 5년전 월세 21만원 하던 방이 26만원까지 올랐다"면서 "월세가 부담스러워 더 작은 방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건물주와 고시원업자의 각종 편법이 수년째 이어지면서 세입자의 주거 인권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고시원 등 비주택은 임대료에 대한 규제가 없어 거주자의 부담 능력과 상관없이 임대료가 책정되기 때문에 최저소득계층의 부담 능력에 비해 임대료가 높다"며 "이를 감당할 수 없어 체납이 발생할 경우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서울 최저가 고시원…기자의 하루 체험기="하루에 1만2000원이고, 열쇠 필요하면 보증금 1만원이에요. 창 있는 방은 1000원 더 내야하고." 

서울 양천구의 한 고시원. 4층 계단을 올라 고시원 문을 열자마자 어두컴컴하고 조용한 복도가 눈에 들어온다. 방을 문의하자 고시원장 김모씨가 이른바 '먹방'이라 불리는 창문없는 방 하나를 보여준다. 하루 머무는 데 드는 비용은 1만2000원. 창문이 있는 방은 여기에 1000원이 더 추가 되지만, 대체로 가장 싼 먹방부터 사람이 찬다는 게 김 원장의 설명이다.


방은 예상대로 좁고 낡은 모습이다. 이제는 보기 힘든 13인치 배불뚝이 브라운관 TV와 47ℓ 소형 냉장고, 옷장을 겸한 서랍장과 책상, 그리고 침대가 세간의 전부. 벽에는 떨어지고 찢긴 흠을 덧댄 다양한 무늬의 벽지들이 군데군데 붙어있다. 원장은 TV를 틀어보더니 "분명 어제는 됐는데 오늘은 안 된다"며 "와이파이만 되면 괜찮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잠시 어색한 침묵 끝에 원장이 떠났고, 작은 방에 불을 켜고 침대 위에 몸을 뉘였다.


고시원 천장에는 연기 감지기뿐 스프링클러는 없었다. 열 감지기도 설치됐던 흔적만 남아있었다.


방은 적막했다. 하지만 이내 바깥의 소음들이 석고보드 벽을 타고 들려왔다. 식사를 준비하는 부엌의 덜그럭 소리, 샤워장에서 물 트는 소리, 옆 방 거주자가 뒤척이며 부스럭대는 소리. 서울의 대기질이 미세먼지 '나쁨' 수준이던 이 날, 바깥에서보다 더욱 목이 따갑게 느껴진다. 더 나아질 것 같진 않았지만, 환풍기를 켜 봤다. 작은 방은 '위이이잉'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로 가득찬다. 


바깥 공기가 들어오자 이내 서늘해진다. 원장이 추울 때 사용하라고 안내해 준 침대 위 전기장판을 켰다. 고시원 같은 다중이용시설에서 전열기구 사용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일선 소방서에서는 고시원 내 사용을 금지하는 등 전열기구를 고시원 화재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7명의 사망자를 낳은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사고도 실내 전열기구 사용이 발단이 됐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봐도 스프링클러는 보이지 않는다. 2009년 개정된 '다중이용시설의 안전관리에 대한 특별법'은 고시원 등의 다중이용업소에 화재 초기 진압을 위한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보설비 역시 연기감지기만 있을 뿐 열 감지기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설치했던 흔적만 남아있다. 책상 아래에는 1.5kg짜리 분말 소화기가 놓여있다. 이 소화기의 생일은 2006년 10월. 소방청이 권장하는 사용기한 10년을 한참 넘겼다. 소화기의 성능을 표시하는 지시압력계의 노란 바늘도 사용권장범위인 녹색구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고시원 방에서 비치된 소화기. 권장사용기간인 10년이 훌쩍 넘어있다.


준비해온 줄자를 꺼내 방을 실측했다. 가로 1.6m, 세로 2m. 곱하면 3.2㎡. 국토교통부에서 정한 1인가구 최소 주거면적 14㎡는 물론 사람 1명이 대(大)자로 누울 수 있는 면적인 '1평'(약 3.3㎡)에도 미치지 못하는 크기다.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다 저녁 7시가 되자 다닥다닥 붙은 40여개의 방에는 하나 둘 불이 들어왔다. 복도와 맞닿은 작은 창에 신문지를 덧댄 문도 있다. 부엌에서 식사가 가능했지만, 함께 모여 밥을 먹는 모습은 볼 수 없다. 누군가 기척이 있으면 조용히 방으로 돌아가, 다른 사람의 식사가 끝나길 기다렸다. 그렇게 배턴을 넘기듯 한 사람씩만 식탁에 앉았다.


하루 간의 고시원 생활 도중 기자는 6명의 투숙객과 마주쳤다. 50대 내외로 보이는 이들은 모두들 갑작스레 나타난 젊은 남성을 신기한 눈길로 잠시 쳐다본다. 인사를 건네며 "얼마나 계셨느냐"고 말을 붙였지만, 모두 "알아서 뭐하게요"라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서로에게 거는 기대도, 관심도 없이 외딴 섬에서 다들 입을 닫았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이춘희 수습기자 spring@asiae.co.kr [아시아경제] 




2평짜리 '외딴 삶'… 사각지대 몰리는 인권


    지난해 5월 한국을 공식 방문한 유엔(UN) 주거권 특보 레일라니 파르하는 문재인 정부에 "고시원 등 비공식 주거시설에 대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불안정한 주거 상황에 놓인 주민들에게 적절한 장기 주택을 제공해야한다"고 권고했다. 화장실, 샤워시설도 없는 6.6㎡ 이하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주거 인권이 침해받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고시원'이라는 형태로 단기 숙박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국내 주거 시스템에 대한 국제적 지적을 받은 셈이다.


하지만 불과 반년도 지나지 않은 그해 11월, 서울 종로 한복판의 한 고시원에서 초대형 화재가 발생, 사망자 7명을 포함해 총 18명의 인명피해가 일어났다. 청와대와 서울시가 전국 단위 고시원에 대한 안전점검과 실태조사에 나섰지만 단기간 내 해결책을 마련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서울 고시원 6000여개·7만2500가구, 동 떨어진 삶

12일 아시아경제가 입수한 서울시의 고시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에는 현재 총 5840개의 고시원이 등록돼 있다. 전국 고시원 수가 1만1892개인 점을 감안하면 절반에 달하는 49.1%가 서울에 집중된 셈이다.


서울 내 고시원 거주민은 7만명을 넘어섰다. 서울 5840개의 고시원에 거주 중인 가구수는 총 7만2542가구로, 서울시 전체 가구수(378만4490)의 2% 수준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이들 고시원이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는 점이다. 2010년을 전후로 1인 가구의 대표적인 저렴 거처가 된 고시원은 2009년 6597개에서 2011년 1만191개로 1만개를 넘어선 후 2017년 말 1만1892개까지 증가했다. 이 추세라면 지난해 말 1만2000개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 3922개였던 서울의 고시원 수도 2017년 말 5820개로, 50% 가까이 급증했다.


서울 곳곳에 고시원이 생겨나고 있는 점도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현재 서울 자치구별 고시원 수는 관악구가 839개로 가장 많고 이후 ▲동작구(501개) ▲강남구( 426개) ▲동대문구(359개) ▲영등포구(329개) 등이 뒤를 잇고 있다. 관악구 신림동이나 동작구 노량진과 같은 학원 밀집가나 대학교 인근에서 각종 시험을 준비하던 고시생의 전용 공간인 고시원이 강남구ㆍ동대문구ㆍ영등포구 등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고시원이 재건축ㆍ재개발로 인한 저렴 주거지의 멸실과 빠른 주택가격 상승을 부담하기 힘든 저소득 가구의 주거지가 됐다는 의미다. 


반면 관리는 부실해졌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진행한 '비주택 주거실태' 조사를 입수한 결과 서울 소재 고시원 중에는 영업 증명서 발급일자나 사업장 등록지 주소가 누락돼 통계에서 빠진 곳도 80여곳이나 확인됐다. 


고시원 거주자 평균 34.6세, 남성이 68%… 주거 인권 관리 시급

한국도시연구소가 비주택 표본조사 가구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고시원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34.6세이며 67.6%가 남성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청년(20~34세) 비율은 59.1%에 달한다. 쉽게 말해 현재 고시원에 사는 사람 10명 중 6명은 20~30대 남성이라는 얘기다. 이들의 평균 거주 기간은 2.7년이었다. 주택 외 거처로 분류되는 판잣집ㆍ비닐하우스에 사는 거주민의 평균 거주 기간이 22년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소득이 발생하는 곳(직장 등)의 위치에 따라 거주지를 이동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것으로 분석된다.



고시원 거주자 중 26.3%는 무직자였다. 고시원 거주민 4명 중 1명은 현재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고 나머지는 상용근로직(42.9%), 임시ㆍ일용 근로자(25.4%), 자영업자(5.2%) 순으로 확인됐다. 


학력은 절반에 가까운 46.3%가 대학교 졸업자로 분석됐다. '대학교 재학' 비율도 16.2%로 비교적 높았다. 학업을 목적으로 수도권에 거주하게 된 대학생들이 고시원ㆍ고시텔에 거주하는 경우가 대거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고 대답한 사람들 중 70%는 '학업ㆍ취업준비'를 이유로 꼽았다. 


       


이들이 고시원에 머무는 시간은 하루 평균 10시간이 조금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6시간 미만'으로 잠만 자는 가구는 1% 수준으로 적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하루 평균 10.5시간으로 12시간인 비수도권에 비해 짧았고 '12시간 이상 머문다'는 비율도 수도권(27.6%)과 비수도권(43.1%)이 큰 차이를 보였다. 주거면적별로는 6.5㎡ 미만 가구에서 하루 평균 머무는 시간이 11.9시간으로 가장 길었다. 특히 가구소득이 낮을수록, 가구주 연령대가 높을수록 머무는 시간이 길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과거 판잣집과 같은 가시적인 빈곤 공간이 이제는 도심 속에서 비가시화된 공간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비주택 거주인들에 대한 사회적 문제까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이제는 이들에 대한 주거 안정과 주거권 실현을 위한 다양한 논의가 조속히 시작돼야 한다"고 밝혔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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