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 관계, 정부와 국민이 엇박자로 간다 [신현덕]


대일 관계, 정부와 국민이 엇박자로 간다 [신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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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 관계, 정부와 국민이 엇박자로 간다

2019.03.06

3・1절 다음날. 한 달 전쯤 초대받아 갔던, 시청 앞 한 일본 음식점을 일부러, 다시 찾아갔습니다. 처음 갔을 때 가졌던 의문, 일본어만을 사용하는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번에도 여기저기서
“이라샤이마세!”(오서 오십시오)
“도오조!”(이리로)
“아리가도우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 등
종업원들이 손님을 응대하는 생생한 일본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이어졌습니다. 많은 일식집은 주방에서 일하던 요리사가 “어서 옵쇼!”하는 우리말 인사말로 손님을 맞았습니다만, 이 집은 모든 종업원이 일본말을 사용했습니다.

입구에 세워진 간판에는 뜻 모를 일본어가 한글로 쓰여 있습니다. 일본에는 이러저러한 일로 몇 차례 갔었고, 가끔 일본 음식점을 드나들었습니다만, 이 집은 이름조차 생소했습니다.
우리 술의 종류는 한두 가지였고, 우리 맥주는 아예 없었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을 요량이기는 했어도, 우리 맥주가 없어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중국 맥주는 있다면서 우리 맥주가 없다는 말에는 공연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서울에서도 한복판, 시청이 지척입니다. 직선거리로는 100m도 채 되지 않을 겁니다. 이곳에서 일본말로 응대하는 음식점이 성행하는 것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는지요. 더욱 놀란 것은 손님 중의 많은 이들이 20대가 주축인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종업원의 말에 따르면 주인의 영업방침이라고 합니다. 이래야 고객-대부분이 한국인-이 몰려 오나봅니다. 혹시 주인이 일본인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주인은 한국인이고 주방장만 일본인이랍니다. 영업허가 조건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되겠지만, 내심으로는 자체의 개점 원칙만이라도 있었으면 했습니다.

대한문 앞에서는 이날도 우리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데모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 왜 또 갔느냐면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남들은 맛있어 하는 음식을 앞에 두고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나이든 이의 너그럽지 못한 행동이기는 했어도, 끝내 청진동에 가서 낙지볶음에 소주를 마셨습니다. 나만 유독 별난 것인지 3・1절 연휴라서 그런 것인지. 처음 갔을 때 느낀 스멀거리던 기분은 지금까지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일본 관광청 발표에 따르면, 2019년 1월 일본을 방문한 외국 관광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0% 증가한 250만 1,500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국적별로는 한국인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5%가 더 많은 80만 800명입니다. 2위인 중국인은 지난해 비해 0.3% 늘었고, 3위 대만인은 0.1% 증가했습니다. 2위인 중국인 관광객 수와 비교해 보면 우리 관광객이 17만 명 정도가 더 많습니다. 총인구를 고려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을 찾은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일본 관광청은 9% 증가한 이 수치를 놓고도 불만입니다. 중국과 대만 홍콩의 관광객 수가 지난해보다 크게 증가하지 않은 것은 중국의 춘절(구정) 연휴가 2월에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2월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몇 %나 증가했을지 자못 궁금합니다.

우리 언론은 얼마 전 국사편찬위원회가 발표한 3・1운동의 첫 공식집계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국내외에서 103만 명이 참가했고, 이중 934명이 숨졌습니다. 시위 규모는 경기도(참가 20만 9,189명, 사망 138명), 평안북도(참가 13만 6,555명, 사망 228명), 경상남도(참가 12만2,350명, 사망 69명), 서울 8만 5,306명(사망 3명) 순서입니다. 나라의 주권을 찾고자 목숨을 내놓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일본은 이 수치를 놓고도 자기네 통계보다 더 많다고 강한 불만을 나타냅니다.

지난 3・1절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일제 잔재를 없애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심지어는 빨갱이라는 말도 쓰지 말자고 했습니다. 일본군에 끌려가 인권을 말살당한 채 성노예 생활을 한 우리 할머니들의 문제도 아직 미해결입니다. 강제 징용되어 희생되었거나, 노동을 강요당한 청년들의 아픔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정치인들과 달리 많은 국민들은 일본을 마냥 멀리할 수 없는 이웃으로 받아들이나 봅니다. 정부와 국민들이 서로 엇박자로 가고 있으니 이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얼마 전 ‘마지막 광복군’ 고(故) 김우전 전 광복회장 빈소에서 본 그분의 영정 사진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그분이 저승에서라도 눈을 크게 뜨며 “우리 광복군의 힘으로 일본군을 물리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해방을 맞게 되어 독립군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게 된 것”이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고 다시 말씀하실 것만 같습니다. 현재는 너무 멀리 와 있습니다. 해결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차근차근 풀려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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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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