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 논리에 막힌 3300만 실손보험 가입자 편의

의료법 논리에 막힌 3300만 실손보험 가입자 편의


보험금청구 간소화 논의, 의료법에 막혀 지지부진 

의료업계도 자료 전산화에 반감…소비자만 불편


    손해보험업계가 실비보험 청구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의료법과 의료업계 논리에 막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실비보험 청구 간소화는 전국의 모든 병원과 보험사를 전산망으로 연결해 보험금을 청구하는 사람의 불편함을 덜어주자는 것이다. 지금은 병원에서 서류를 뗀 뒤 보험사에 청구해야 하는데, 보험사와 병원의 전산망이 연결되면 고객은 병원에서 결제만 하고 이후 절차는 보험사와 병원이 처리한다. 


현재 일부 대학병원과 일부 보험사는 전산망을 연결해 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대다수 병·의원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 실손보험은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치료비를 지급하는 보험으로 가입자 수는 3300만명에 이른다.


경기도 성남 분당서울대병원은 자동화기기를 설치해 실비 의료보험금을 간편하게 청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김연정 객원기자


24일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실손보험금 청구 불편 해소를 위한 실무협의체가 지난해 10월부터 구성돼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나 그 속도가 더딘 편이다. 총 세 차례 회의가 열렸지만, 청구 간소화가 실제로 필요한 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확인하는 데에 그쳤다.




보건복지부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지난해 12월 6일부터 일주일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병원에서 진료비 납부 후 병원에서 보험사로 바로 데이터가 전송되는 방식으로 실비보험을 청구했으면 좋겠다"는 응답이 70%인 것으로 집계됐다. 실손보험을 청구할 수 있었는데 포기한 이유로는 "금액이 적어서(73.3%)"라고 응답한 이들이 가장 많았다. 이어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귀찮고 시간이 없어서(44.0%)’, ‘증빙서류를 보내는 것이 귀찮아서(30.7%)’, ‘증빙서류 발급 비용이 부담스러워서(24.0%)’라는 응답(복수응답 허용)이 뒤따랐다.


이 설문조사 결과는 지난해 12월 21일 협의체에 공유됐다. 협의체 관계자는 "실손보험 간소화를 원하는 것으로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는데도, 논의가 질질 늘어지고 있다"고 했다.


협의체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의료법이다. 의료법 제21조 2항에 따르면 의료인 등은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진료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사본을 내주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청구 전산화를 위해선 의료기관이 보험회사로 진료기록을 직접 송부하게 되는데 이것이 의료법에 위반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보험업계에서는 의료법을 저촉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료비 청구를 전산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보험사와 의료업계가 서류를 만들고 소비자는 ‘전송’ 버튼을 누르기만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보험가입자가 직접 정보를 보내는 형식이 되기 때문에 의료법 위반을 피할 수 있다.


실손보험 가입자 10명 중 3명이 실손보험 청구 절차가 복잡해 청구를 포기하는 것으로 집계됐다./조선DB

하지만 이런 제안에 대해서도 의료업계는 부정적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모든 병·의원에까지 전산망을 깔자는 건 현업에 부담이 된다는 목소리가 있다"면서 "앞으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실비보험금을 청구하려면 소비자가 병원에 진료비를 지급한 후, 보험금 청구서류를 작성하고, 영수증·진료비 세부내역서·진단서 등 필요서류를 떼와야 한다. 이후 보험회사를 방문하거나, 팩스, 스마트폰 앱 등으로 청구해야 한다.



손해·생명보험협회에서는 이 과정이 보험사나 병원에게도 비효율적이라고 보고 있다. 보험사는 보험 가입자로부터 종이문서를 받아 전산으로 새로 입력하고 보관하는 업무가 늘면서 업무효율이 떨어지고 있다. 병원 입장에서도 원무과 업무부담이 발생한다. 실비보험 가입자들에게 서류를 떼 주는 업무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실비보험 가입자가 3300만명에 이르는 만큼 보험 가입자들이 편리하게 보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방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전자문서 형태 전송을 의료업계에서도 진취적으로 검토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연지연 기자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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