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는 ‘콕콕’ 만성통증(chronic pain), 10년 연구 끝에 원인 규명" - 서울대

“이유 없는 ‘콕콕’ 만성통증(chronic pain), 10년 연구 끝에 원인 규명" - 서울대 

오석배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


   불교에 매료됐던 치의학도는 붓다가 강조한 네 가지 진리인 ‘사성제(고집멸도)’ 중 가장 앞에 나오는 고(고통)의 정체가 궁금했다. 진료보다 연구가 좋았던 그는 신경생리학으로 고통의 정체를 밝히기로 마음먹고 연구자의 길로 들어섰다. 치통에서 시작한 연구 주제는 우리 몸을 괴롭히는 통증 자체로 확대됐다. 그리고 최근 원인을 알 수 없는 만성통증의 유력한 원인을 밝히고 해결책까지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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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몇 안 되는 통증 연구자 중 한 명인 오석배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를 12일 만났다. 당뇨 합병증이나 물리적 압박, 항암제 사용 등으로 생긴 만성통증이 말초신경의 손상에서 오며, 면역세포를 이용해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동물실험으로 밝혀 국제학술지 ‘셀’ 1월 31일자에 발표했다. 그는 “동료인 앨릭스 데이비스 영국 옥스퍼드대 의대 연구원(당시 오 교수 연구실 박사후연구원)과 2008년부터 시작한 연구이니 10년이 넘었다”며 “결과가 좋아 다행이지만, 통증은 의학의 ‘주류’가 아니라 중간에 연구비가 끊기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며 웃었다.




아픔을 치유하는 의·치의학계에서 통증이 주류가 아니라니 의아했다. 그는 “암이나 치매 등 뚜렷하고 시급한 질환에 밀려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심지어 통증 자체는 질병으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당장 후속 임상연구를 함께할 면역학자나 임상의를 구하는 것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통증은 무시할 수 없는 주제다. 만성통증은 성인의 10%가 고통받을 정도로 흔하고,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진통제는 전 세계적으로 항암제 다음으로 시장이 큰 제약 분야다. 오 교수는 “이웃 대만만 해도 기초연구와 임상 직전의 중개연구가 활발하다”며 “국내도 관심을 좀 더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오석배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 통증의 정체가 궁금해 연구를 시작했지만, 아직 실체를 알지 못한다. 

윤신영 기자


“손상된 말초신경 찌꺼기 때문… 면역세포로 치료할 수 있어"

이번 연구는 독특하다. 만성통증이 신경 손상 자체가 아니라 그 ‘후처리’인 회복 과정에서 온다는 발상 때문이다. 원래 말초신경은 손상되면 복구될 수 있다. 그러려면 먼저 손상된 말초신경이 제거돼야 하는데, 제대로 제거되지 않고 애매하게 남을 수 있다. 그게 만성통증을 일으킨다. 특히 이렇게 남은 신경은 손상 직후가 아니라 한참 뒤에 통증을 일으킨다. 이유를 잘 모르는 만성통증이 많은 이유다.


오 교수 팀은 손상된 말초신경 조각을 면역세포로 제거해 신경을 재생시키는 데에도 성공했다. 손상된 말초신경 표면에서는 “내가 고장 났으니 없애 달라”는 일종의 신호가 나온다. 면역세포인 자연살해세포(NK세포)가 이 신호를 알아보고 바로 세포를 녹이거나 뚫어 파괴한다. 오 교수는 인위적으로 이 신호 단백질만 늘려도 면역세포가 신경 조각을 깨끗이 제거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동물에서 확인했다. 만성통증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방법을 찾은 것이다.


난치성 만성통증의 유력한 원인과 치료법을 제시했고 의·생명과학자의 평생 꿈 중 하나인 최고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했지만 오 교수는 들뜬 표정이 아니었다. 오래 연구해 왔지만, 그를 이 길로 이끈 ‘고’의 실체를 아직 몰라서다. “찔리면 아프죠. 그건 통각입니다. 통증은 통각과 다릅니다. 불쾌한 감각과 주관적 경험이 더해진 것입니다. 뇌 속 통증회로가 만든 뇌질환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일부의 의견입니다.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책에서 읽은 말이라며 덧붙였다. “시각 연구를 오래한 과학자도 아름다움의 실체는 모른다는 게 위안이랄까요.” 그래도 그 덕분에 하나는 확실히 알게 됐다. 통증은 줄일 방법이 있다는 것을.

윤신영 기자 ashilla@donga.com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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