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은 그 단맛 안에 지겨움이 있다” [이성낙]

“꿀은 그 단맛 안에 지겨움이 있다” [이성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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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은 그 단맛 안에 지겨움이 있다”

2019.02.15

1970년대 초 독일 교포 사회에서 모였다 하면 즐겨 열창하던 ‘서울의 찬가’(작사·작곡, 길옥윤)가 생각납니다. 곡(曲)도 경쾌한 데다 가사 역시 “그 얼굴 그리워라. 내 사랑아 내 곁을 떠나지 마오.”와 같은 내용에 ‘패티 김’이라는 최고 가수의 가창력을 더하였으니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음이 컸습니다. ‘서울의 찬가’는 실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당시 젊은 사람들은 너도나도 농촌을 떠나 서울로, 서울로 ‘민족 이동’을 감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시점에 “내 품에 돌아오라 그대여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사르렵니다” 하는 노래를 부를 때면, 서울로 몰려가는 ‘민족 이동’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던 것도 기억합니다. 그러면서 어쩔 수 없이 지방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서울의 찬가’가 어떻게 들릴까 봐 염려도 되었습니다.

그 무렵 유럽에서는 ‘마이 카(my car)’ 열풍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로 인한 부정적인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도로마다 차들이 ‘범람’하고, 주차 시설이 수요에 턱없이 부족해 사람들의 원성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이에 주요 언론 매체에서는 해결책 모색에 많은 시간과 공간을 배려하며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런 토론의 장을 지켜보던 필자 역시 비록 교통 문제 비전문가이긴 하지만 워낙 흥미로운 사회 쟁점이라 관심의 끈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 도시 건축 전문가의 단호한 의견이 퍽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무리 도로를 새로 조성하고, 기존 도로의 폭을 극대화하고, 교통의 흐름을 조정하더라도 차량 증가율에 따른 물리적 총량에 결코 못 미친다”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여태껏 그 말을 기억할 만큼 그의 주장은 지난 반세기 동안 그대로 적중했습니다. 전문가의 식견에 찬사를 보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1980년대에 뉴욕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시내가 차량으로 넘친다’라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게다가 주차비가 녹록지 않다는 목소리도 컸습니다. 급기야 2000년대에는 뉴욕 중심가에 차를 갖고 출퇴근하는 것은 주차비를 감당할 수 없어 엄두를 못 낸다는 얘기가 들려왔습니다. 오래전 대도시의 물리적 교통 대처법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던 한 도시 건축가의 지적이 다시 생각나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런데 근래 서울 도심의 광화문광장을 현대화 사업이라는 핑계로 대대적으로 고치겠다고 합니다. 그 핵심은 지하에 대형 교통망을 조성하겠다는 것입니다. 서울 외곽에서 GTX로 쉽고 편하게 도심 광화문에 조성할 지하 역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교통 문제와 관련해 지난 수십 년간 시정 책임자마다 내놓은 ‘새로운 정책’은 이처럼 ‘물리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도시 인구의 집중화는 세계 어느 곳이든 공통된 난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 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獨 Wien, 英 Vienna)을 다시 고풍스러운 도시로 되돌린 인물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토목기사(Civil engineer) 출신인 헤르만 크노플라허(Hermann Knoflacher, 1940~)가 ‘자동차는 바이러스(Auto-Virus)’라는 개념 아래 ‘자동차 바이러스’를 ‘박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주 간단한 처방을 내놓은 것입니다. “도로를 좁혀서 체계적으로 정체(停滯)를 유발하는(Der Spiegel, 2018.03.05.)” 것이 그 정책의 핵심이었습니다. 요컨대 자동차의 흐름을 조직적으로 방해해 차량 정체를 인위적으로 유발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동차를 집에 두고 공중 교통수단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물리적 접근이 아닌 화학적 접근의 훌륭한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고도(古都) 빈의 고풍스러운 정취를 되살려낸 전문가의 얘기를 실은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필자는 반세기 전 독일의 한 도시 교통 전문가가 했던 얘기--“아무리 도로를 새로 조성하고, 기존 도로의 폭을 극대화하고, 교통의 흐름을 조정해도 차량 증가율에 따른 물리적 총량에 결코 못 미친다.”--가 다시금 생각났습니다. 그의 혜안(慧眼)이 새삼 놀라웠습니다.

서울 도심에 넘치는 자동차를 보면서, 이젠 발상 전환 차원의 대책을 세울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분명 자동차가 가진 순기능도 있지만, 도심으로 몰리는 부정적 문제를 더 내버려 둘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세계적 문호 셰익스피어는 “꿀은 그 단맛 안에 지겨움이 있고, 달아서 입맛을 버려놓는다(The sweetest honey is loathsome in his own deliciousness. And in the taste confound the appetite)”라는 명구를 남겼습니다. 여기서 ‘단맛’은 ‘쉽고 편한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조용하고도 강한 메시지를 반추하고 또 반추하며, 편해서 달곰한 도심 정책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는 다른 차원의 포퓰리즘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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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전 한국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전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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