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지가, 공정하게 계산한 것 맞나요


공시지가, 공정하게 계산한 것 맞나요


5m 사이에 두고

저기는 100% 오르고, 여기는 30% 오르고

같은 블록 안에서도 들쭉날쭉


   서울 중구 명동2가 50-9번지 토지의 1㎡당 공시지가는 작년 8120만원에서 올해 1억6450만원으로 두 배로 뛰었다. 그동안 시세에 비해 낮은 공시지가를 '현실화'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그런데 이 건물과 5m 간격으로 붙어 있는 50-10번지의 공시지가는 같은 기간 4260만원에서 5540만원으로 30% 오르는 데 그쳤다. 100% 오른 건물은 보행 전용 큰길가에 있고, 30% 오른 건물은 골목길에 있다. 하지만 노태욱 한국감정평가학회장은 "가까이 있어도 가치가 차이 날 수 있긴 한데, 지가 인상률이 3배나 차이 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명동2가는 2015년 10월 이후 토지 거래가 단 한 건도 신고되지 않은 지역이다. 주변 공인중개사는 "실거래가 없기 때문에 매물로 나온 땅이 아니라면 시세를 알기 어려우니 이런 고무줄 공시지가 인상이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본지가 12일 저녁 공개된 전국 표준지 공시지가를 분석한 결과, 명동 2가 사례처럼 인근 토지 간에 공시지가 인상률이 큰 차이를 보인 사례가 여러 건 발견됐다. 땅값이 비싼 지역에서 특히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인근 지역 고가 토지 간에도 인상률이 많게는 몇 배까지 차이가 났다.


"공시지가 2배 인상, 정부가 지침 내렸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04/2019010400238.html


작년 지가 상승률 9.53%로 전국 1위를 차지했던 파주의 공시지가 인상률은 4.45%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공시지가 현실화 기준이 없고, 근거로 삼는 '시세'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일부에만 급격한 인상률을 적용해 올렸다"고 지적한다.




공시지가 정리 그래픽


같은 동네라도 공시지가 인상률 제각각

인접 지역 토지 공시지가 인상률이 제각각인 사례는 정부가 공시지가를 집중적으로 올리겠다고 밝힌 '㎡당 시세 2000만원 이상' 지역에서 주로 발견됐다. 서울 자치구 중 공시지가 인상률 1~3위인 강남구, 중구, 영등포구였다.




여의도 신한금융투자 본사가 있는 땅의 올해 공시지가는 1750만원으로 작년(1130만원) 대비 55% 올랐다. 하지만 같은 블록에서 이 건물과 등을 맞대고 있는 유안타증권 빌딩의 공시지가 인상률은 32%에 그쳤다. 두 건물 직선거리는 75m 정도다. 강남구 역삼동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됐다. 9호선 언주역에서 경복아파트 사거리로 연결되는 대로변에 위치한 651-3번지 공시지가는 1670만원에서 2310만원으로 32.3% 급등한 반면, 동쪽으로 200m가량 떨어진 653-1번지의 공시지가는 1600만원에서 1820만원으로 13.7% 올랐다. 강남역 주변 상권도 마찬가지다. 역삼동 A필지(827-24번지)와 B필지(831-27)는 같은 대로 선상에 있고, 둘 다 골목으로 이어지는 '코너' 상가 건물이다. 둘 간 거리는 68m. 하지만 A필지 공시지가는 올해 9.1% 올라 1200만원이 됐고, B필지는 18.5% 올라 2240만원이 됐다. 한 감정평가사는 "정부가 모든 필지별 상황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고 특정 기준에 맞춰 무조건 공시지가를 올리려다 보니 생긴 현상일 것"이라고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개별 사례에 대해 정부가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다"며 "오랜 기간 누적된 시세의 차이가 공시지가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핵심은 시세인데, 산정 기준 '깜깜이'

정부는 "형평성 원칙에 따라 시세를 반영했고, 시세 대비 공시지가의 비율(시세 반영률)이 작년 62.6%에서 64.8%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말하는 ‘시세’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거래가 많고 규격화된 아파트와 달리 토지는 거래량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실거래에 기반한 시세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감정평가사들은 본인이 평가한 표준지 공시지가를 국토부에 제출할 때 참고용으로 예상한 시세를 함께 내놓는다. 이 시세가 ‘세평 가격’이다. 국토부가 올해 시세 반영률을 계산하는 근거로 활용한 추정 시세도 세평 가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감정평가사는 “정부 요구에 따라 세평 가격을 계산하긴 하지만 한 사람이 표준지 수십 필지를 두세 달 만에 평가하는 상황에서 정식 감정평가처럼 엄격한 평가가 이뤄지기는 어렵다”고 했다. 정수연 제주대 교수는 “실거래가 없는 상황에서 단기간 누구나 공감할 만한 시세를 조사하기는 불가능하다”며 “정부도 이런 한계를 알기 때문에 시세나 산정 방식을 철저히 비공개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과거에도 평가사들이 시세를 조사하긴 했지만 자료로 남아있지는 않다”며 “올해는 시세 분석을 좀 더 엄격하게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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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난 땅 주인들… 이의 신청 2.3배로

일부 가격대 토지의 공시지가만 급등하면서 땅 주인들의 불만도 폭주하고 있다.


민경욱 의원실이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서울의 표준지 공시지가 의견 청취 신청은 408건으로 작년(182건)의 2.3배로 늘었다. 역대 최다다. 의견 청취란 공시지가 잠정치 공개 후 토지주들로부터 이의 신청을 받는 절차다. 하지만 토지주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비율은 낮다. 서울은 408건 중 76건(18.6%)만 반영됐다. 민경욱 의원은 “제대로 된 시세도 없는 상황에서 주먹구구식으로 비싼 토지의 공시지가만 대폭 올린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고 국민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정”이라고 했다. 공시가격이 확정됐지만 이의 신청 기회는 한 차례 더 남아있다. 내달 14일까지 국토부 홈페이지와 시·군·구청 민원실을 통해 이의 신청이 가능하다.



정순우 기자 임경업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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