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 우윳가루 [한만수]

선생님과 우윳가루 [한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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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우윳가루

2019.02.07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교사라는 직업은 꿈의 직장입니다. 2017년 교육부 진로 교육 현황조사를 보면 고교생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 1위가 교사, 2위가 간호사, 경찰, 군인, 기계공학 기술자 및 연구원 순서입니다. 교사를 선호하는 이유는 적성이나 교육에 대한 철학보다는 단지 안정된 직업이라는 점 때문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는 가장 선호하는 직업 1위가 택시 운전사였습니다. 그다음으로 자동차엔지니어, 다방 DJ, 은행원, 교사는 5위였습니다. 교사에 대한 선호도가 낮은 만큼 학생들보다 교사의 숫자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초등학교의 경우는 2년제 교육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초등교원양성소에서 18주간 교육을 받으면 준교사 자격증이 주어졌습니다. 교육대학을 졸업해도 지금의 4년제보다 절반 수준의 교육을 받았지만, 교육자로서의 사명감이라든지 자긍심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사회에서도 교사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컸습니다.

여름날 교실 공사를 하느라 느티나무 밑에서 수업을 받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학생들은 모두 그늘 밑에 앉아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땡볕 아래서 말씀을 하시다가 그늘 밖에 홀로 앉아 있는 ‘창렬’이라는 학생을 칭찬하셨습니다.

“박창렬 좀 봐라. 친구들에게 그늘을 양보하고 혼자 양지쪽에 앉아 있지 않으냐. 저런 모습이 바로 희생정신이라고 하는 거다. 얼마나 장하고 착하냐?”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 무섭게 몇몇 학생들이 일어나서 양지쪽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그늘 밑에 앉아 있던 학생들은 졸지에 배려심이 없는 나쁜 학생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면서 슬금슬금 양지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습니다. 요즘에는 선생님이 땡볕에서 수업을 진행하시지도 않겠지만,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해서 양지쪽으로 가는 학생들도 드물 겁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담임선생님한테 과외공부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요즘에 만약 담임선생님이 자기 반 학생들을 과외지도한다면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법적으로 처벌을 받을 겁니다. 그 시절에는 산골에 있는 학교라 그런지 모르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근처에 사는 학생들 대여섯 명이 저녁을 먹은 후에 선생님 댁으로 책가방을 들고 갔습니다.
선생님 댁 저녁이 늦을 때는 우리끼리 숙제를 하기도 하고 장난을 치면서 선생님이 오시길 기다렸습니다. 어느 때는 선생님이 거나하게 취해 계실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학생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자습을 시키거나, 오늘 학교에서 배운 것 중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질문을 하라는 식으로 밤길을 걸어온 학생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숙직을 하시는 날은 학교 숙직실에서 과외공부를 했습니다. 하루는 과외공부를 시작할 때가 됐는데도 선생님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한 친구가 벽장에 우윳가루가 있으니 몰래 먹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때는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한 학생들에게 숙직실 부엌에서 끓인 옥수수죽을 나누어 줬습니다. 벽장에 보관하는 우윳가루는 옥수수죽에 타주는 것입니다. 다들 저녁은 먹었지만,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던 시절이라 반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종이로 수저를 만들어서 앞을 다투어 입안에 퍼 넣고 있을 때 선생님이 오시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서둘러 벽장문을 닦고 바닥에 흘린 우윳가루를 닦아 내고 얌전히 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입안에 가득 들어 있는 우윳가루를 삼킬 수가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고 선생님을 바라봤습니다.

“너희들 우유 먹었지?”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한 학생이 기침을 했습니다. 기침을 하니까 우윳가루가 입 밖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전체 학생이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르도록 기침을 했습니다. 순식간에 우리들과 선생님은 우윳가루를 뒤집어썼습니다.

“야, 이놈들아. 그러다 잘못해서 우윳가루에 목에 메면 죽는 수가 있어.”
선생님은 화를 내시지 않고 제자들의 등을 두들겨 주시거나, 손가락을 입안에 넣어서 침이 묻은 우유를 파내 주셨습니다. 모두 기침을 멈출 무렵에는 우유 범벅이 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배가 아프도록 웃어젖혔습니다.     

과외비도 매달 현금으로 내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동네 이장한테 수고비로 주는 수곡이 가을에 나락 한 말, 봄에 보리 한 말 정도였습니다. 담임선생님한테는 봄에 보리쌀 한 말 가을에 쌀 한 말 정도를 갖다 줬던 것 같습니다.

1960년대 중반만 해도 초등학교 선생님 월급이 1만 원 안팎이었습니다. 요즘의 9급 공무원에 속하는 5급 공무원 월급이 80킬로짜리 쌀 한 가마니 가격인 5천 원 정도였습니다. 라면 한 개에 10원 정도 하던 때였으니까 그나마 월급을 많이 받는 쪽에 속했습니다.

그런 형편에 학생 대여섯 명이 봄가을에 갖다 드리는 쌀 대여섯 말이 살림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밤마다 학생들을 가르치신 것은 한 명이라도 더 중학교에 진학시켜야 한다는 선생님으로서의 사명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겨울날 난롯불이 사위어 가는 컴컴한 교실에서 열심히 수업을 진행하시는 모습이며, 늦은 봄날 오후 식곤증에 눈꺼풀이 내려앉을 터인데도 칠판 앞에 서 계신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요즘도 인터넷기사를 보면 어느 초등학교 동창들이 30년 전, 혹은 40년 전 초등학교 은사님을 모시고 뜻 깊은 한 때를 보냈다는 내용이 간혹 나옵니다. 40년이 지나도록 담임선생님의 가르친 은혜를 잊지 못하는 이유도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그만큼 열과 성의를 다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교사들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先生)으로서의 사명감보다는 직업인으로서의 가치를 더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학교 선생이 어머니 청부 살해를 의뢰하기도 하고, 초등학교 여선생은 어린 제자를 상대로 몹쓸 짓을 하기도 하고, 일부 선생들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원에 못 가는 학생들에게 은근한 압력을 주기도 한다는 씁쓸한 신문기사를 읽은 적도 있습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우물을 흐리는 격이 되기는 하겠지만 작금의 교직관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학생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선생들이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배우는 학생들도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당(唐)나라 승려 도선(道宣)말은 전설이 되어버렸지만, 최소한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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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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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칼럼 /정일환

공적자금 은행의 몰염치


대기업 고위 임원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해외에공장을 짓거나 설비 투자를 할 때마다 고민에 빠집니다. 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해당 국가에는 국내 은행 지점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업무처리 수준이 너무 낮아 별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 때문에 글로벌 은행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이런 은행들은 상세한 사업계획서를 요구한다는 겁니다. 기밀이 유지되어야 하는 사업 내용을 경쟁국에 고스란히 공개하는 셈이죠. 물론 비밀유지 각서 등이 작성되지만, 불안한 건 사실입니다.”

국내 최대 은행인 KB국민은행 노동조합이 파업을 강행했다가 비웃음만 산 채 슬그머니 직장에 복귀했습니다. 파업의 명분이나 과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은행 문을 걸어 잠그는 아날로그 방식의 파업은 디지털금융 시대 고객들의 냉소를 불렀습니다. 어떤 고객들은 “파업하는 줄도 몰랐다”고 합니다. 모바일과 인터넷뱅킹으로 은행 일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은행원들의 업무 거부는 오히려 그들의 낮은 존재가치를 스스로 보여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은행의 수익구조를 보면 차가운 반응은 더욱 이해가 갑니다. 지난해 1년 동안 은행들이 고객들로부터 거둬들인 이자 이익은 40조 원에 육박합니다. 떼먹힌 돈과 비용 등을 빼고 순수하게 남는 이익만 40조 원입니다. 

12월 금융감독원이 밝힌 ‘국내 은행의 2018년 3분기 영업실적’에 따르면 국내 은행이 거둔 이자 이익은 3분기 동안에만 30조 원입니다. 아마 4분기 실적이 나오면 40조 원에 달할 겁니다. 그러나 단순히 액수 문제가 아닙니다. 글로벌 은행들의 이자수익 비중은 60%를 넘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국내 은행들은 전체 수익 중 83%가 이자 장사로 벌어들인 돈입니다. A고객에게서돈을 받아 B고객에게 빌려주고 이자 차액은 은행이 챙기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돈놀이가 우리나라 은행이 하는 일의 전부라 해도그리 틀린 말은 아닙니다. 

2015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 중 ‘금융시장 성숙도’에서 한국은 87위를 기록, 우간다(81위)보다 여섯 계단이나 뒤졌습니다. 이듬해 조사에서도 한국은 80위로 우간다(77위)에 밀렸습니다. 금융그룹 회장이 모인 만찬에서 최경환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건배사로 “우간다 이기자”를 외치는 수모도 당했습니다. 2017년이 되어서야 한국은 74위로 우간다(89위)를 간신히 제쳤습니다. 

WEF 조사는 신뢰성 논란을 낳기도 했지만, 경쟁력이 우간다에 뒤진다는 평가를 받은 이유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고개가 끄덕여집니다.WEF 조사는 자국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입니다. 세계를 무대로 뛰는 한국 기업인들이 기대하는 수준에 비해 은행들의 서비스는 한참 못 미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인 국내 은행들은 금융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실물경제 지원능력이 매우 낮습니다. 대기업에겐 약에 쓰려면 없는 존재이고, 중소기업에겐 비 올 때 우산 뺏는 밉상입니다. 늦게나마 국내 은행들은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홍보에 열을 올립니다. “○○은행, 베트남 현지 은행 인수”라거나 “○○은행, 인도네시아 ○위 은행 인수 협상” 등의 기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헛웃음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동남아 국가 교민 출신 지인은 “모 은행이 인수했다는 현지 은행은 우리나라로 치면 마을금고 동네 지점 수준도 안 되는규모”라면서 “그 나라는 은행만 2만 개가 넘어 순위가 의미가 없는 업종”이라고 혀를 찼습니다.

파업은 노동자의 권리 중 하나입니다. 연봉 많이 받는다고 파업하지 말라는 논리는 배 아픈 소리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따져보고 싶은 것은 파업의 염치입니다. IMF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으로 꺼진 생명을 연장해놓고 20년이 넘게 흐른 지금까지 오직 고객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다른 고객 주머니를 터는 이자놀이 외에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은행이 과연 영업점 문을 닫아걸어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겹겹이 둘러쳐진 규제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외 진출에는 왜 진즉 관심을 두지 않았는지 궁금해집니다. 똑같은 환경에서 영업하는 글로벌 은행 한국지점들은 매년 수천억 원의 이익을 자국 본사에 배당해 먹튀라는 비판을 받고는 합니다. 우리나라 은행들도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을 한국으로 송금했다가 해당 국가에서 비난받는 모습을 좀 봤으면 좋겠습니다. 

아! 은행이 열심인 일이 있긴 있네요. 국민은행 채널1·2·3, 신한은행 라응찬계와 신상훈계, KEB하나은행 김승유라인과 김정태라인. 우리은행 상업은행파와 한일은행파. 내부에서 파벌 만들어 아군끼리 싸우는 일입니다.

필자소개

정일환

경향신문, 뉴시스 등을 거쳐 현재 이투데이 사회경제부장. 
호연지기로 세상을 보자는 취지의 칼럼 ‘Aim High’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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