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UAE에 코 꿰인 외교, 또 사우디와 군사협정


[단독] UAE에 코 꿰인 외교, 또 사우디와 군사협정

정부, 사우디 원전 수주 위해
높은 수준 군사협정 추진

자칫 중동 분쟁 휘말릴 수 있어

    우리 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와 기밀공유·방산협력 등이 포함된 높은 수준의 군사협정(agreement) 체결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1일 알려졌다. 이는 방산 수출 확대와 함께 사우디가 발주한 원전 건설사업 수주를 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정부 내에선 원전 수주를 위해 군사협정 카드를 쓰는 방식이 이명박 정부의 협상법이라는 점 때문에 적정성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자칫 중동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은 미국·중국·프랑스 등과 함께 사우디 원전의 유력 수주 후보로 꼽히고 있다. 3월에 후보군이 좁혀지고 연말에 우선협상 대상자가 결정된다. 



이와 관련, 정부 소식통은 "우리 정부가 사우디의 '형제국'이자 이미 우리와 원전 건설 및 군사협정을 맺은 아랍에미리트(UAE)를 중개인으로 삼아 사우디와 군사협정을 추진하고 있다"며 "2013년 체결한 한·사우디 국방협력 협정보다 급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군사협정 패키지를 카드로 원전 강국 프랑스를 제치고 UAE 바라카 원전 사업을 따냈듯 이번에도 군사협정으로 사우디를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측에 사우디와의 군사협정을 적극 권유한 것은 UAE로 알려졌다. UAE의 최우방인 사우디의 국방력 증강에 한국군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정부 소식통은 "UAE가 사우디 원전 수주에 도움을 주는 건 좋지만, 군사협정을 추진하라고 권유한 것은 외교적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난처하더라도 UAE 말을 무시할 수는 없는 입장"이라고 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이명박 정부 시절 체결한 UAE와의 군사협정에 대해 '절차적 정당성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파기를 시도하다가 갈등을 빚었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전임 정부가 맺은 외교 협정을 존중하지 않고 '적폐'로 몰다가 터진 게 'UAE와 외교 갈등'"이라며 "이 사건으로 우리 정부는 UAE와의 관계에서 '을(乙)'의 처지가 됐다"고 했다.



UAE는 작년부터 우리 정부에 아랍에미레이트항공·에티하드항공 등 UAE 항공사의 한국 내 운항 횟수를 기존보다 2배 늘려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우디와의 군사협정 체결도 강하게 권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탈원전을 표방하면서 해외 원전 수주에 나서는 것도 그렇고, '적폐'로 규정한 군사협정을 추가로 추진하는 것도 정치적 부담이 된다"고 했다.

정부가 사우디와의 군사협정 체결을 고민하는 또 다른 이유는 중동 분쟁에 휩쓸릴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사우디는 '21세기 최악의 전쟁'이라 불리는 예멘 내전(內戰)에 깊이 개입했었다. 외교 소식통은 "사우디는 경제적으로 한국의 오랜 우방이었지만, 정치·군사적으로 너무 가까워지면 자칫 중동 국가 간 분쟁에 의도치 않게 끼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는 이슬람 양대 종파(宗派) 중 하나인 수니파의 종주국으로 이란·시리아 등 시아파 국가들과 극심한 갈등 관계에 있다. 세계적 난민 사태를 일으킨 시리아 내전이나 예멘 내전은 사우디·이란의 대리전으로 여겨졌다. 사우디는 중동의 주요 패권국인 만큼 각종 분쟁에 얽혀 있다. 한국이 사우디의 '전우(戰友)'라는 이미지가 짙어지면, 중동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테러 위험이 커지거나 우리의 주요 원유 수입국인 이란과의 관계가 경색될 수 있다. 사우디의 최우방국인 미국 내에서도 최근 예멘 내전 등을 문제 삼아 사우디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번 군사협정 논의를 위해 정경두 국방부 장관 등이 포함된 고위 군·외교 사절단을 꾸려 사우디·UAE를 방문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 사절단은 애초 2월 중순 순방길에 오를 예정이었지만,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아시아 순방 일정 조율이 늦어지면서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석조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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