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뚝, 권리금 '제로'"…무너진 경리단길 자화상


   "2년 전만 해도 이태원역 대로변 상권이면 비싼 보증금에다 권리금도 1억~2억원은 얹어야 들어올 수 있었는데, 요즘엔 권리금이 없어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네요."


언제적 이태원과 경리단길이던가. 맛집을 찾는 인파가 넘치고 목 좋은 가게를 얻으려면 웃돈을 들고 줄을 서야 했던 서울의 ‘핫 플레이스’ 이태원 일대 상권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태원 경리단길/MSN.com

edited by kcontents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근처 H공인 대표는 "상권이 뜰 때는 이태원역을 시작으로 경리단길, 해방촌 순으로 발달했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자 거꾸로 해방촌, 경리단길, 이태원역 순으로 폐업이 줄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잘 나갈 것만 같던 이태원 일대 상권이 가라앉게 된 이유는 뭘까. 여러 이유가 복잡하게 얽혀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임대료와 경쟁 상권에 뺏긴 유동인구에 있어 보인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이태원 거리를 찾는 유동인구는 1년새 12%나 줄어들었다. 반면, 이태원역 상권의 임대료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10.2% 올랐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시 평균(1.8%)보다 6배 높은 수준이다.


장사가 잘될 때는 목 좋은 상가에 보증금이나 임대료 외에 억소리 나는 권리금까지 내고 들어가겠다는 입점 경쟁도 치열했다. 권리금 1억~2억원은 기본이던 곳이 이젠 권리금 ‘제로’가 됐다. 그래도 들어가겠다는 자영업자는 없다. 일대 상권이 쇠락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태원 한남동 A공인 관계자는 "예전엔 임차인들이 수시로 부동산에 찾아와 이태원역 대로변 점포에 언제 자리가 나는지 물어왔다"며 "오늘 비면 내일 바로 새 임차인을 찾을 정도로 공실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권리금이 없어도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다"라고 푸념했다.


상권 쇠락을 떠나 자영업자수 자체가 줄어들다 보니 공실을 채울 새 임차인을 구하지 못한 건물주들도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의 자영업자수는 지난달 현재 549만6000명으로, 2016년 2월(535만5000명) 이후 3년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용산구 이태원1동 대로변에 위치한 점포가 공실로 비어있다. /김민정 기자


이태원동 상가 건물주 김모(51)씨는 "용산구 공시지가가 크게 올라 임대료를 올려서라도 세금 부담을 줄이고 싶지만, 임차인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 난감한 상황이 됐다"며 "상가 임대가 이렇게까지 힘든 적이 없는데, 지금은 매도하려 해도 세금 부담이 커서 고민이 많다"고 했다.


이태원 상권은 역세권 입지에서 떨어진 해방촌부터 시작해 경리단길, 이태원 일대로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이태원 상권이 형성될 땐 이태원역을 중심으로 시작해 경리단길, 해방촌 골목까지 상권이 확대됐지만, 지난해 용산에 있던 주한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고 이른바 ‘뜬다’ 하는 상권이 마포구 상수동과 종로구 익선동 등으로 넘어가면서 인기가 한풀 꺾였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상권이란게 보통은 입지적으로 힘이 없는 곳부터 무너지고 결국 접근성이 좋은 지하철역 근처 위주로 살아남는다"라며 "지금 이태원 일대를 보면 상권이 무너졌다고 보긴 어렵고, 골목마다 유행에 따라 상권이 조성되다 보니 적절한 위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김민정 기자 조선비즈 


이태원 21%, 동대문 14%… 핵심상권도 곳곳이 '빈 가게'


상가 공실률 역대 최고


#1. 30일 오후 전북 전주시내 최대 번화가인 서부신시가지. 홍산중앙로를 따라 일본식 주점, 아이스크림 가게, 카페 등의 간판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대부분 내부가 텅텅 비어 있었다. 건물마다 세입자를 찾는 현수막이 겨울바람에 나부꼈다. 지역 공인중개사는 한 1층 주점 자리를 가리키며 "여긴 5개월 넘게 공실"이라고 했다. 이 일대에 술을 납품하는 신일주류상사 직원 김모씨는 "여기는 2~3년 전만 해도 술이 하룻저녁에 두어 트럭씩 들어갔는데, 요즘은 한 트럭도 안 된다"고 말했다. A 간판 제작 업체 대표는 "간판 주문도 1년 새 반 토막 났다"고 했다.




#2. 지난 29일 오후 서울 홍익대 앞 상권의 큰길 중 하나인 '어울마당로'를 따라 상수역 방면으로 내려가자 양쪽에서 1층 빈 상가들이 나타났다. M공인중개 관계자는 "최근 1년 새 공실이 생기기 시작했고, 20평 기준 300만원이던 월세가 200만원대 중반까지 내렸지만 계약이 잘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30일 서울 종로에 있는 한 상가에 임차인을 구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서울 도심 대로변도 - 30일 서울 종로에 있는 한 상가에 임차인을 구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경기 불황 탓에 최근 종로, 강남 등 서울 핵심 상권에서도 비어 있는 상가가 늘고 있다. /이태경 기자


충북 음성군의 한국가스안전공사 인근에 있는 건물 1·2층이 통째로 비어 있다.


지방은 건물이 통째로 - 충북 음성군의 한국가스안전공사 인근에 있는 건물 1·2층이 통째로 비어 있다. 정부가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시켰지만 상권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 /음성=신현종 기자


상가가 텅텅 비어가고 있다. 2017년 1분기 9.5%이던 공실률(이하 100평 이상 중·대형 상가 기준)이 작년 1분기엔 10.4%로 올랐고, 4분기엔 10.8%로 2013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이태원 21.6%, 청담동 11.2%, 도산대로 10%, 동대문 14.6% 등 불황을 모르던 핵심 상권에서조차 두 자릿수 공실률이 흔하게 나온다.


소비 심리 냉각에 따른 자영업 창업 기피, 인건비 급등, 지방 제조업 몰락, 소비 방식의 변화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한 상가주택 건물주는 "권리금이 없어지고 임대료를 아무리 낮춰도 장사를 하려는 사람이 아예 없다"고 말했다.


임대료 내리고 권리금 사라져도 공실


서울·지방 주요 상권 공실률


지방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경북은 18.8%로 전국 시·도 가운데 공실률이 가장 높다. 한때 '공장 생산직 근로자들도 양주를 먹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활황이던 구미산업단지 공실률은 개별 상권 가운데 최고치인 33.1%를 기록했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삼성·LG 등 대기업의 공장이 수도권으로 옮겨간 영향"이라고 했다. 전북 15.2%, 충북 14.8%, 충남 14.2% 등 다른 지방도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빈 상가가 늘면서 임대료는 내리고 있다. 전국 중·대형 상가 임대료는 1년 새 0.2% 내렸다. 지방에서는 충남(-2.6%), 경남(-1.8%), 경북·울산(-1.7%) 등 9개 시도가 내렸다. 서울도 강남권과 영등포권·신촌권 임대료는 하락했다.


장사를 하려는 사람이 없다 보니 상인들끼리 주고받는 '권리금'도 재작년 4777만원에서 작년 4535만원으로 줄었다. 권리금이 아예 없는 점포의 비율도 재작년 말 29%에서 작년 30.5%로 늘어났다.


불경기·높은 인건비, 온라인 쇼핑 등 복합 작용

상가 공실 급증의 배경에는 자영업의 몰락이 있다. 소상공인진흥공단이 집계하는 '소상공인 경기체감지수'는 작년 10월 72.7에서 12월 62.1로 급락했다. 경기전망지수 역시 93.7에서 86.8로 떨어졌다. 두 지수 모두 100보다 낮으면 긍정적인 응답보다 부정적 응답이 많다는 뜻이다. 국내 자영업자 수는 작년 말 기준으로 1년 사이 9만4000명 줄었다. 상가정보연구소에 따르면 전국 자영업자 폐업률은 2.5%로 창업률(2.1%)을 앞질렀다.


자영업 몰락의 원인은 다양하다. 우선 소비 심리 냉각이다. 통계청의 소비자심리지수는 작년 1월 110에서 이달 98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은 급등했다. 최저임금은 2년 새 29% 올랐다. 영세 자영업자는 일반 기업보다 최저임금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외식업체는 매출의 24.7%를 인건비로 지출한다는 정부 조사도 있다.


구조적 문제도 있다. 예컨대 동대문은 과거 전국 각지 의류, 잡화 소매업자들이 모여들던 '쇼핑의메카'였지만 최근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면서 오프라인 매장 수요가 급감했다. 그 여파로 2013년 1분기 5.8%였던 동대문 공실률이 작년 4분기에는 14.6%로 올랐다. 이상혁 상가정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금 자영업 경기는 바닥 밑으로 내려간 최악의 상황"이라며 "정부가 경기 활성화 정책을 펴고는 있지만 체감하기 어렵다는 게 현장 목소리"라고 말했다.

정순우 기자 전주=이송원 기자 오영은 인턴기자(한동대 언론정보학 4년) 조선일보 

케이콘텐츠

Posted by engi, conpaper Engi-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