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말이 전도된 타즈마니아 자연보호 [신현덕]


본말이 전도된 타즈마니아 자연보호 [신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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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말이 전도된 타즈마니아 자연보호

2019.01.31

호주 시드니에서 대륙 남쪽에 자리한 타즈마니아 섬(타즈마니아 주)까지는 비행기로 두 시간 반가량 걸립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타즈마니아의 조감(鳥瞰)은 호주 대륙과 비슷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탐지견이 승객을 맞았습니다. 기내 수하물, 이어 따로 부친 짐을 검색해 오다가 내 가방 앞에 뒷다리를 구부리고 앉았습니다. 관리는 수산물 중 날것을 찾아낸다며 가방을 열었습니다. 멸치조림을 밑반찬으로 가져갔는데 그걸 냄새 맡았습니다. 그는 청정한 타즈마니아의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합니다.
순간 ‘악어의 눈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 생태계 보호를 이야기하는 이들의 할아버지가 타즈마니아 원주민 약 1만 명을 깡그리 없애버렸다는 것과 도저히 연관 지을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타즈마니아 생태계를 완전하게 뒤바꿔 놓은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타즈마니아 원주민은 유럽인이 오기 약 1만 년 전부터 이곳에 살았습니다. 평화로운 이 땅에 발을 디딘 유럽인들은 함께 살자면서 정착촌을 설치하고 나서는, 자기네 땅이라고 우겼습니다. 이들 중 처음 타즈마니아에 도착했다는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은 이곳에 자기 이름을 갖다 붙였습니다. 타즈마니아 주도(州都)인 호바트 항구도 그곳에 닻을 내린 영국인 호드 호바트의 이름입니다.

‘포트 아서’의 감옥을 보면서는 가슴이 싸했습니다. 항구는 영국 총통이던 조지 아서의 이름을 땄고, 감옥이 남아 있습니다. 주로 영국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사람들을 데려와 수용했습니다. 아서는 정착자 수를 늘리기 위해 어린 아이, 여자 등 가릴 것 없이 아주 가벼운 범죄에도 무거운 형량을 선고했습니다. 그들이 정착을 무리하게 서두르는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났고, 원주민들을 학살했습니다. 이를 두고 영국은 학살이 아니라, 유럽에서 전파된 질병 때문에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고 강변합니다. 학살을 감추고, 인도적이라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 질병으로 핑계를 삼았습니다. 뒤로는 원주민이 죽어 나가기를 바랐습니다. 바람대로 원주민은 사라져 갔습니다.
호주 멜버른 라트 로브 대학의 데이비드 데이 교수는 「정복의 법칙」에서 “영국이 처음에 이 섬(註 타즈마니아)에 발을 들여놓은 지 채 50년도 되지 않아서 섬에 살 던 원주민 인구는 거의 제로에 가깝게 줄어들었다”고 밝혔습니다.

타즈마니아에는 원주민의 한과 눈물과 아픔이 서리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신이 즐거워했다’는 크레들 산(山)은 세계유산입니다. 도브 호수에 비친 산세가 장관이며, 빙하에 깎인 바위에 서서 본 호수는 파랗다 못해 검게 보입니다. 부근에 타즈마니아에만 서식하는, 육식동물인 ‘타즈마니아 데빌’ 보호시설이 있습니다. 국제자연보존연맹에 따르면 타즈마니아 데빌은 현재 25,000마리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산되는 멸종 위기종입니다. 호주에 정착한 영국인들은 1830년대부터 타즈마니아 데빌이 닭장의 닭을 포함한 가축 등을 잡아먹는다고 현상금을 걸고 잡기 시작했습니다. 상금은 마리당 2실링 6펜스~3실링 6펜스. 덫과 총 등 모든 수단이 동원되었고, 상금을 더 받으려는 경쟁도 벌어졌습니다. 멸종으로 치달았습니다.
타즈마니아 호랑이는 아예 종(種)이 사라졌습니다. 이 호랑이는 캥거루처럼 새끼를 주머니에 넣어 기르는 특이한 동물이었습니다. 새로 정착한 유럽인들은 1888년 양을 해친다는 이유로 현상금을 내걸고, 타즈마니아 호랑이를 대대적으로 사냥했습니다. 1888년부터 20년간 2,000 마리가 죽어서 가죽으로 팔렸습니다. 1936년 멸종된 것으로 공식 선언되었습니다. 이 무렵 타즈마니아 늑대도 덩달아 사라졌습니다. 2017년 타즈마니아 호랑이가 호주의 퀸즐랜드에서 목격됐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아직까지 확인된 것이 없습니다.

호주는 1941년부터 타즈마니아 데빌을 겨우 보호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어렵게 증식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어딘가에 숨어 있을 수도 있는, 본인은 모르지만 타즈마니아인 유전자를 완전하게 가진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립니다. 뻔뻔한 정복자들 때문에 멸종된 타즈마니아 원주민, 멸종 위기 동물 보호에 나선 정복자 후손들, 본말이 전도된 일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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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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