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노후 걱정해주는 한국, 개인이 노후 준비하는 북한… 北이 더 자본주의식 같네


국가가 노후 걱정해주는 한국, 개인이 노후 준비하는 북한… 北이 더 자본주의식 같네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정부가 지난달 국민연금 개편안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이 TV에 나와 개편안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데 북한과 제도가 너무 달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러스트=안병현


북한에도 연금제도가 있지만 관심 가지는 사람은 없다. 한국의 '노령연금'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북한에선 '양로연금'이 있다. 근속연수가 20년 이상인 남자(60세 이상), 여자(55세 이상)에게 1일 식량으로 쌀 300g(식량 부족으로 유명무실해졌다)과 매월 현금 몇백원 정도를 사회보장비로 준다. 거주지 동사무소에 '사회보장수첩'을 가지고 가서 동 지도원에게 서명을 받은 후 현금과 식량 배급표를 지급받는 방식이다. 그런데 1990년대 말 배급제가 허물어지고 물가가 폭등하면서 양로연금을 타러 가는 사람이 없다. 몇백원 받아 봤자 담배 한두 개비 살 돈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내가 외무성에 들어간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 신세 안 지고 살 거라고 하셨다. 근속연수가 20년 넘었고 훈장도 많아서 든든하다고 하셨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서면서 사회보장제도가 허물어져 부모님의 소망은 물거품이 됐다. 다행히 나는 외교관이어서 특혜를 받다 보니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꽤 넉넉하게 모실 수 있었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되는 집에선 노부모가 배고픔에 시달려 돌아가신 경우도 많았다.


어디서 식량을 좀 구해 달라고 하는 부모를 향해 자식들은 "키울 때는 '국정(국가가 정한 가격)'으로 키워놓고 모시는 것은 '야매(암시장 가격)'로 모시라 한다"며 하소연했다. 부모 세대에서는 국가가 정한 가격이 제대로 작동해 월급으로 살아갈 수 있었지만, 경제 상황이 나빠지고 암시장이 생기면서 국가가 정한 가격은 의미가 없어졌다. 예컨대 2013년 외무성 부국장 때 월급이 2900원이었는데 당시 쌀 1㎏ 야매 가격이 3000원이었다. 외무성 부국장 월급으로 쌀 1㎏도 못 산다는 얘기다. 이러니 자식들이 노부모를 모시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연금제도가 허물어지면서 부패도 심해졌다. 간부들은 힘들게 벌어들인 외화로 주택 건설을 하기 시작했다. 북에서는 국가가 주택을 건설해 주민에게 무상으로 준다. 이때 주택 소유권은 주지 않고 사용권만 준다. 그런데 장마당에서 돈을 번 사람들이 불법으로 돈을 주고 좋은 주택 사용권과 교환했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사용권 교환이 힘들었지만 2000년대 들어선 간부들이 슬며시 사용권 교환을 합법화했다.


간부들은 기관 자금으로 서너 칸짜리 좋은 주택을 건설한 뒤 그 주택을 분양받고 퇴직 후 그 집으로 들어가 자식과 함께 산다. 자식이 능력이 안되면 3칸 주택을 보유한 사람의 경우 본인용 1칸, 맏자식용 2칸짜리로 나눠 사용권을 교환한다. 4칸짜리 주택에 살았으면 한 칸은 돈을 받고 판다.


이렇게 주택 교환이 활발해지니 정식 부동산 거래소는 없지만 불법 브로커와 불법 주택 거래 장소가 생겼다. 평양시 대동교 주변 강변이 불법 주택 거래 시장인데 브로커들이 교환 가능한 모든 주택 목록을 가지고 있다. 브로커가 평양시 인민위원회 주택 배정처와 손잡고 주택입사증(사용증서)을 교환해 준다. 일반적으로 브로커와 주택 배정처의 관계자에게 각각 100달러씩 줘야 한다.


주택 거래가 활발해지니 함께 사는 부모들의 지위가 높아지게 됐다. 평양시에서 방 서너 칸짜리 주택은 주로 부모들이 배정받기 때문이다. 같이 사는 자식이 부모를 잘 모시지 않으면 부모가 돈을 받고 주택을 교환하자고 한다. 집을 받으려면 부모를 잘 모셔야 한다. 그런데도 분가하는 집이 많기는 하다.


최근 평양시 중심에 건설되는 주택 중 위치가 좋으면 10만달러까지 하는 주택들이 있다. 힘 있는 기관 책임자가 기관 자금으로 고급 주택을 건설한 뒤 자기가 그 집을 배정받으면 결국 노후 자금 10만달러가 생기는 셈이다. 국가가 책임지고 노후를 걱정해주는 한국과 자기가 알아서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북한. 어찌 보면 북한이 더 자본주의식 같다.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25/2019012502010.html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