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건으로 경기부양" 지역사업 예타 면제..."MB때와 닮은꼴"

"토건으로 경기부양" 지역사업 예타 면제..."MB때와 닮은꼴"


야당 때 ‘토건 경제'로 비판하다 경기 하강하자 부양 나서

전국 17개 지자체 예타 면제 신청…"예산 나눠먹기" 지적


   "오늘 대전의 숙원 사업인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을 발표했습니다. 그 외 세종~청주간 고속도로, 충청남도의 ‘석문국가산단 인입철도 사업’, 충청북도의 ‘충북선 철도 고속화 사업’에 대한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모두 합하면 충청권에서 4조원 규모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대전 둔산동 대전시청에서 열린 대전 기업인들과의 오찬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국책 사업을 일부 공개했다. 예타는 대형 공공투자사업을 사전에 면밀하게 검토하는 제도로, 사업추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조사에서 탈락하면 사업 추진이 어렵다. 




YouTube/22일 국회에서 열린 새해 첫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이낙연 총리(왼쪽)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야기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국책 건설사업에 예타 면제 마구 인심 쓰는 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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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땐 그렇게 반대하더니…민주당 'SOC 내로남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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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발전인가, 예산낭비인가…수십조원 ‘예타 면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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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33개 예타 면제 SOC 사업 발표..."토목 건설사 수혜"/충남 예타면제 1순위 보령선 철도 건설 '적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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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부는 다음주초 전국 17개 지방자치단체가 신청한 예타 면제 사업 심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29일 국무회의 직후 발표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접수된 사업은 총 33건으로 사업 규모를 합치면 모두 61조 2500억원에 달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새해 기자회견에서 "광역지방정부별로 최소 1건씩 배정할 것"이라며 17대 시도별로 하나 이상 사업을 배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말 문 대통령의 발언은 그 가운데 충청권에서 선정될 사업을 공개한 것이다.


17개 사업 모두 최대 40조원…4대강 사업의 2배 

문재인 정부는 지역균형발전 측면에서 도움이 되는 국책사업에 예타를 면제하겠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순 발표한 2019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이같은 구상을 제시했다. 이 사업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보다 더 규모가 큰 SOC 사업이 전국 곳곳에서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SOC 사업에서 예타 면제를 실시하는 것은 이전 정부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문재인 정부가 토목건축(토건) 경제의 폐해로 비판하는 4대강 사업이 대표적인 예타 면제 사업이다. 


      


문재인 정부의 예타 면제 방안은 과거 사업에 비해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먼저 규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집계한 예타 면제 신청 사업과 문 대통령이 24일 발표한 충청권 4개 사업들을 기초로 계산한 총 사업규모는 최소 20조원에서 최대 40조4300억원에 달한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면서 총 사업비 22조2300억원 가운데 19조7600억원을 재해 예방 사업 명목으로 예타를 면제받은 것보다 규모가 더 크다. 


두 번째는 예타 면제 사업이 시도별로 하나씩 할당하는 갈라먹기식이라는 것이다. 사업성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사업이 ‘시도별 하나씩’이라는 이유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경실련은 "지자체별 나눠먹기식 선정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라며 "타당성이 없어도 대형 SOC 사업을 추진할 수 있으니 각 지자체는 당연히 자신들의 지역이 선정되길 바랄 것이고 몇 곳만 예타면제 사업으로 지정할 경우 그 반발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예타 면제 사업이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30대 선도 프로젝트’와 유사하다는 말이 나온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광역 단위 지역경제권을 창출하겠다며 시도별로 신청한 도로, 철도, 공항, 항만 기반시설 사업을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선도 프로젝트로 선정했다. 당시 21개 사업이 예타 면제 혜택을 받았는데 그 규모는 21조5000억원에 달했다.



시도별로 1조원 이상 투입…경남은 5.3조

야당 시절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SOC 사업을 ‘토건 경제’라며 비판하고 SOC 예산 축소를 주장해온 청와대와 여당이 ‘이명박 따라하기’에 나선 것은 경기 부양 때문이다. 투자와 고용부진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가 급격하게 악화되면서 토건 SOC 사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고 한 이전 정부가 간 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타는 KDI 공공투자센터에서 심의하게 되는 데 최소 6개월이 걸린다. 투자와 고용 유발 효과가 큰 대규모 SOC 건설 사업을 재빠르게 착수하기 어려운 구조다. 정부 안팎에서는 지자체가 요청한 대규모 SOC 사업이 예타없이 올해 중 착공될 경우 하반기 쯤에는 건설투자가 상당부분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예타 면제 사업이 올 하반기 착공에 돌입할 경우 추경 예산을 편성하지 않더라도 경기 진작 효과를 충분히 거둘 수 있다"고 했다.


이번에 선정되는 예타 면제 사업 가운데 상당수가 민간투자 사업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사업 착공 시기와 연관돼 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정부 예산 투입 사업이면 타당성 평가, 재원 확보, 국채 발행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조속한 사업 추진이 어렵다"며 "결국 민자 사업 형태로 빠르게 예산을 투입하는 형태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새 사업을 만들지 않고 이전에 경제성이 부족하다며 예타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은 사업을 되살리는 것도 예산 투입 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2020년 4월 총선을 준비해야 한다는 ‘정치적 고려’도 예타 면제 사업 배경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 관계인 김경수 경상남도 도지사가 역점을 두고 있는 ‘김해~거제 남부내륙철도’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5조 3000억원을 투입해 경북 김천에서 경남 거제를 잇는 것으로 설계된 이 사업은 투입 예산 대비 경제성이 나오지 않는다는 게 건설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인천이 낸 GTX B노선(5조9000억원), 전남이 낸 경전선 복선 전철화 사업(2조300억원) 등도 사업성이 떨어져 지역 민심 등 정치적 고려 없이는 선정되기 어려운 사업으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가 이달 들어 울산, 경남, 대전 등을 방문하며 국책 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를 약속하는 것은 선거 때 지방 개발 공약을 제시하는 것을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도별로 1건씩 나눠주는 사업 형태에 지역민들이 집회를 여는 등 소지역주의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부 집권기에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비판하던 ‘선심성 토건 사업’ 행태가 재연된 셈이다.


현금 살포보다 효과 낮은 ‘삽질 경제’

정부가 예타 면제를 추진하는 사업들 중 상당수는 경제적 효과가 떨어진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충북의 충북선 고속화 사업은 2017년 예타에서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이 0.3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1만원을 투자하면, 3700원 정도의 경제적 효과만 거둔가는 얘기다. 경남이 신청한 남부내륙철도의 비용 대비 편익은 0.72에 그쳤다. 강원이 신청한 제2경춘국도도 0.76에 불과하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비용 대비 편익이 1을 밑도는 것은 차라리 현금을 뿌리는 게 더 경제적 효과가 높다는 의미"라며 "경제적 효과가 높은 사업에 예산을 투입하자는 예타의 취지를 고려한다면 대규모 예산 낭비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타 면제가 경기 부양용 돈 풀기 내지 지역별 예산 갈라먹기로 변질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가재정법은 예타 면제 대상으로 "지역 균형 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을 들고 있다. 긴급한 필요가 있거나 경제성 측면에서 미심쩍지만 장기 투자 성격의 사업을 선정하라는 취지다. 


경제성이 떨어지는 지역 숙원 사업들을 예타 면제 사업으로 지정하면서, 예타가 형해화(形骸化)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예산 배정은 여러 대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이라며 "정부가 여러 차례 재정 투입 대비 효과를 고려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주고 있는 상황이라 앞으로도 예타 면제나 그에 준하는 제도적 ‘꼼수’가 줄을 이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현재 예타 평가 가운데 25~35%를 차지하는 ‘지역균형발전’의 비중을 높이고 새로 ‘균형발전지수’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세종=정원석 기자 세종=조귀동 기자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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