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TV 뉴스를 믿습니까?” [방석순]


“아직도 TV 뉴스를 믿습니까?”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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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TV 뉴스를 믿습니까?”

2019.01.25

어떤 사람이 그렇게 물었습니다.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이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보는 게 TV 뉴스인데 ‘그럼 뭘 믿으라는 거야?’ 우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따금 ‘정말인가?’ 싶은 것도 있고, ‘저게 뉴스야, 논설이야?’ 싶은 것도 많았습니다. 사실 자체는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해명, 변명, 주의 주장부터 듣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좌우로 갈라진 두 신문을 함께 펼쳐 놓고 보아도 세상을 바로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역사, 환경, 고용, 노동, 복지 등 같은 사안에 대한 해석도 판이합니다. 사건에 접근하는 자세나 방식부터 다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점점 신문, 방송을 떠난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유튜브, SNS에 매달리는 숫자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짓뉴스, 가짜뉴스에 빠질 위험이 높다고 경고합니다. 엄청난 시설과 인력, 운영비를 투입한 방송이나 신문 등 기존 언론매체, 매스미디어가 시청자,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건 매체 자체로도 불행한 일이지만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낭비일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이 사회의 목탁이라고 불리던 적이 있었습니다. 시민사회에 공론의 장을 만들어주는 공기(公器)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언론에 대한 신뢰가 땅바닥에 떨어졌다고 말합니다. 뉴스를 추적하는 기자들이 ‘기레기’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같은 불신이 과연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일차적으로는 언론 자체의 사실 외면에 있다고 봅니다. 언제부턴가 언론이 가장 중요한 사명인 사실 보도, 진실 추구의 노력보다는 이미 알려진 사건, 사태에 대한 주관적 해석과 해명, 시시비비에만 치중, 여론을 어느 일방으로 몰아가려는 자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자연히 보도의 편향성과 진실 왜곡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방송 뉴스 시간에 채널을 돌리고,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이 거세어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김태우 청와대 감찰반원의 폭로 사태 보도가 좋은 예입니다. 야당이 내세우듯 그가 공익을 위해 내부 고발을 결심한 의인인지, 정부 여당이 비난하듯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김태우 사건의 초기 보도 행태는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뉴스 보도에서 사태의 발단이 된 폭로 사실이나 폭로 내용은 오간 데 없고, 청와대 해명과 비판이 선행되었습니다. 이후로도 계속 청와대 발표가 보도의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거개의 언론이 청와대의 입만 쳐다보고 발표 내용으로 도배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시청자, 독자들은 그러한 보도 행간에서 겨우 폭로 사실과 내용을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요즈음엔 청와대 대변인이 입을 열지 않으면 언론이 어떻게 정치 관련 뉴스를 작성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청와대만 바라보고, 대변인 입만 바라보는 간편한 취재 관행이 생긴 것 같습니다.

기존 언론매체에 실망한 사람들은 알고 싶은 사실, 진실이라 여겨지는 뉴스를 찾아 유튜브를 뒤지고, SNS를 통해 개인이 전달하는 근거 박약한 소문에 눈과 귀를 빼앗기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 언론매체의 책임이지 떠나는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시대의 변화입니다. 인터넷이 개인(일인) 미디어의 시대를 열어 준 것입니다. 이젠 엄청난 규모의 자본 투자 없이도 개인이 소소한 장비로 직접 매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튜브 채널을 통한 개인방송이 가능해졌습니다.

혹시 기존 언론 매체들만이 이러한 시대의 변화, 기술의 변화, 사회적 변화에 무관심했거나 안이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언제까지나 뉴스 취재와 보도 기능을 독점하고,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자만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개인 미디어의 위험성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꼭 가짜뉴스가 아니라 할지라도 취재 능력의 한계, 뉴스 근거의 불확실성, 경쟁심리로 인한 자극적 보도, 과장된 표현으로 자칫 수용자들을 오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이 이들 대안 매체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간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한때 잘나가던 공중파 방송사들이 최근 적자에 허덕인다고 합니다. 기업이 위축되어 광고를 꺼리고, 시청자들이 믿지 않고 눈길을 돌리는데 인건비는 하늘처럼 높아가고 시설, 장비 투자에는 끝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기존 언론매체가 되살아나는 길은 일방의 주의 주장을 대변할 것이 아니라 우월한 자원과 능력을 정확한 사실 취재와 보도, 진실 추구에 집중, 시청자와 독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뿐입니다.

최근 언론진흥재단이 언론 산업의 역량을 강화하고 뉴스 품질을 높이기 위해 수백 억 원을 지원하는 사업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주된 목표가 언론의 신뢰도 회복, 뉴스 콘텐츠의 새로운 가치 창출이라고 합니다. 언론재단의 지원으로 뉴스 품질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시청자, 독자들에게 정말 아쉬운 건 멋있게 포장된 뉴스가 아니라 사실의 정확한 전달입니다. 언론진흥재단 사업의 수혜자 선택이 오히려 기존 언론의 길들이기로 이어진다면 더욱 비극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 개인 미디어의 불확실한 뉴스 양산, 그래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모든 사실이 의혹 속에 파묻히고 모든 사람이 의심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언론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성할 때입니다. 정말 ‘기레기’가 될 것인지, 올바른 언론인으로 거듭날 것인지.

구 소련의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Pravda)’는 ‘진리’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프라우다는 당의 입장만 대변했을 뿐 사실 보도나 진실 추구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오로지 당의 주장만이 진리라고 강조했습니다. 권력에 아부하고 소련 사회에 닥쳐오는 위험은 외면했습니다. 결과는 소련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는 사회, 언론이 사실과 진실을 외면하는 사회, 언론이 신뢰를 잃은 사회는 붕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무섭고 두려운 일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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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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