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여파] 100억 원전 장비 놀고 있는 창원 공장

[탈원전 여파] 100억 원전 장비 놀고 있는 창원 공장


원전정책 손바닥 뒤집듯…100억 장비 놀고있어 죽을 지경"


"원전 주요부품 국산화 위해

수년간 투자했는데 도루묵

일감 없는데 대출상환 독촉

장비 헐값에라도 팔아야"


   한국 경제에 연초부터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반도체 착시`가 사라지면서 새해 벽두부터 수출이 27%(1월 1~10일 기준, 전년 동기 대비)나 급락했다. 경제전문가들은 "(혁신도 중요하지만) 활력을 잃어가는 경제에 새바람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막대한 기회비용을 발생시키며 길을 잃고 표류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본궤도에 올려놓는 것이 가장 확실한 대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원자력발전소와 공항 등 이해관계자들의 갈등과 정책적 판단에 멈춰 선 국가적 대형 프로젝트를 재개하면 투자·일자리를 단숨에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매일경제는 멈춰 선 대형 프로젝트 첫 사례로 탈(脫)원전으로 인해 공사가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재개 문제를 짚어 본다. "최소한 업종을 전환할 시간은 줘야 할 것 아닙니까. 하루아침에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꿔 놓고 죽어 가는 원전 업체들을 나 몰라라 하는 게 정부입니까." 




창원 산단 공장 가동률

2년새 90% → 79%로 `뚝`


멈춰선 국가프로젝트 


지난 18일 경남 김해시 본산준공업단지 원전 업체인 세라정공 공장. 200t 규모 원전 부품을 가공해 오던 플라노밀러(왼쪽)가 5t 규모밖에 되지 않는 부품을 가공하고 있다. 이 업체는 심각한 일감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창원 = 최승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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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후 2시 경남 김해시 본산준공업단지 내 원전 업체인 세라정공 공장. 공장 내부에는 초대형 문형 금속 절삭기인 `플라노밀러(Planomiller)`가 3대 놓여 있었다. 이 중 2대는 멈춰 있고, 1대에서만 직원 2명이 작업하고 있었다. 높이 6.2m에 200t 이상의 금속을 깎아내는 초대형 장비이지만 길이 2m에 5t도 안되는 원전 부품을 올린 채 작업 중이었다. 마치 대형 골리앗 기계에 수박을 덩그러니 얹어 놓은 것처럼 초라했다. 


김곤재 세라정공 대표는 "100억원이나 들인 장비들이 한 달 넘게 놀고 있다. 이번 작업 부품을 다음주에 납품하면 다음달까지 물량이 하나도 없다"며 "신고리 5·6호기에 들어가는 물량이 띄엄띄엄 들어오지만 많지 않다"고 씁쓸해 했다. 


세라정공은 원전에 들어가는 대형 부품을 임가공하는 업체로 매출 중 70% 이상이 원전 부품 가공에서 나온다. 2009년 본격적으로 원전 부품 임가공에 뛰어들면서 매출이 늘어났다. 그러나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발표되기 전인 2016년 35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반 토막 났다. 25명이던 직원도 17명으로 줄었다. 주야간으로 돌리던 장비는 2017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야간 잔업을 멈췄다. 지금은 오후 5시가 되면 직원들이 전부 퇴근한다. 




김 대표는 "대통령과 경제인 간 간담회에서 한철수 창원상공회의소 회장이 한울 원전 재개를 건의했는데 곧바로 대통령이 정책에 대한 수정이 없다고 답변한 걸 보고 속이 뒤집혔다"며 "사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원전 업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남 창원 북면에 있는 영진테크윈에서는 원전 부품 가공 기계 9대 중 절반이 넘는 5대가 두 달 넘게 놀고 있다. 


이 회사는 2016년부터 16억여 원을 투입해 새 장비를 4대나 들였지만, 지난해부터 가동을 멈췄다. 매출 역시 2016년 20억원에서 지난해 11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1억8000만원을 주고 산 새 장비를 헐값인 5500만원에 넘겼다. 


강성현 영진테크윈 대표는 "일감은 없고 직원 월급은 줘야 하고 은행에서는 대출금 상환 독촉이 오는데 장비라도 팔아야 되지 않겠느냐"며 "아침마다 한 달 넘게 놀고 있는 기계들이 상하지 않게 시운전하는데 그럴 때마다 서글픈 생각이 든다. 신한울 3·4호기만이라도 재개해 업종을 전환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을 중심으로 원전 업체 300여 곳이 몰려 있는 창원과 김해 지역 중소 원전 업체들의 위기는 이처럼 심각했다. 불과 2년 사이에 대부분 업체가 `결딴날` 지경에 처한 것이다. 


특히 당초 계획된 신한울 3·4호기 건설마저 갑자기 중단이 되면서 사실상 부품 납품이 마무리되는 올해 하반기부터는 당장 생존까지 위협받게 됐다. 업종 전환에 필요한 기간인 2~3년을 버티지 못하는 업체가 속출하는 것이다. 



대부분 중소 원전 업체의 매출이 반 토막 났고, 4~5년씩 키운 숙련공들을 회사에서 내보냈다. 특히 2015년 원전 수주가 많았던 해부터 대대적으로 투자해 설비를 늘린 업체 대표들은 `애물단지`가 된 장비를 보며 탈원전 정책에 대해 요지부동인 정부를 원망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최형오 삼부정밀 대표는 "원전에 들어가는 주요 부품 국산화를 위해 수년간 투자한 게 말짱 도루묵이 됐다"며 "업종을 전환할 시간이라도 달라는데 이마저도 안 된다고 하니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원전 위기는 조선과 자동차 산업 불황과 겹치면서 창원 지역 경제에도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창원상의가 발표한 39곳 상장사의 전체 평균 경영 실적을 보면 코스피 상장사는 2017년 3분기에 1093억원의 영업이익 흑자를 냈으나 작년 3분기 308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코스닥 상장사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204억원에서 111억원으로 줄었다. 창원산단의 공장 가동률도 2016년 말 90.1%에서 지난해 10월 기준 79.2%로 크게 낮아졌다.




특히 50인 미만 사업장은 가동률이 68.3%에 불과하다. 


지자체 세수도 영향을 받고 있다. 지난해 6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가 결정된 경주시는 앞으로 세수 432억원이 감소하고, 일자리가 500개 이상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또 월성 2~4호기 가동률과 발전량이 감소하면 지방세수가 300억원 정도 추가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창원 = 최승균 기자 / 경주 = 서대현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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