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나라 만들기 [김영환]


명랑한 나라 만들기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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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나라 만들기

2019.01.03

누구나 희망을 품는 새해의 달력 장을 넘기며 나는 한참 가라앉은 우리나라와 눈부시게 발전하는 옆 나라들을 비교해봅니다. ‘하면 된다.’라는 강력한 지도력이 이룩한 ‘한강의 기적’은 과거로 흘러갔고 요즘 돌아가는 모양새는 경제건 안보건 나라의 목표가 뭔지 헷갈리게 합니다.

일본은 지난해 서일본 호우와 홋카이도 지진 등 큰 재난이 일어났지만 좋은 일이 많았습니다. 2025년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유치했죠. 탐사선 하야부사2는 3년 반 동안 32억 킬로미터를 날아가 작년 6월 지구와 화성 간의 지름 900미터인 소행성 류구(龍宮)의 궤도에 도달했습니다. 2월쯤엔 표면 1미터까지 근접해 소형 발사체로 일으킨 먼지를 채집해 내년 말께 돌아올 계획입니다. 교토대의 혼조 다스쿠(本庶佑·76) 명예교수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미국인과 공동 수상했죠. 매년 인류 수백만 명이 죽는 암 면역요법을 연구한 공로입니다. 일본인의 스물일곱 번째 노벨상이죠. 그는 상금을 기초연구에 지원할 예정입니다. 일본의 연구열은 어디서나 대단하지만 <변두리 로켓(下町ロケット)>이라는 드라마는 중소기업이 농촌 고령화의 해법으로 홋카이도에서 농업용 무인 트랙터를 개발하는 열정을 보여줍니다. ‘내가 꿈꾸던 것, 소니가 만들었어.’라는 옛 광고 문구가 떠오릅니다. 

노벨상이라면 정치색 짙은 평화상 하나뿐인 우리나라에서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영국 대학평가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가 기술/공학 분야의 세계 15위로 평가해 연구의 첨단에 있는 KAIST에 총장의 정직을 요청했죠. 물리학자인 신성철 총장이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총장 때 미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와 협약을 맺어 그곳의 첨단 연구 장비를 쓰고 비용을 지급한 걸 문제 삼은 겁니다. KAIST 이사회는 정직을 유보했습니다. 관치적 분위기의 과학 연구에서 노벨상이 나올까요. 

작년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000만 명을 넘어 우리의 2배 수준이었습니다. 2014년엔 1,342만 명으로 1,420만 명인 우리보다 적어 한국을 배우자고 했습니다. 일본은 2020년 동경 올림픽에 엑스포까지, 호재가 이어집니다. 관광객이 넘쳐 NHK 뉴스에 ‘관광 공해’라는 비명이 나옵니다. 교토에서 시내버스 타기도 힘들다는 겁니다. 외국 관광객이 작년 4조 엔(약 40조 원)을 떨구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자연재해를 누르는, 밝고 깨끗하고 명랑한 나라 이미지와 손님 환대라는 특유의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가 매력입니다. 

작년 말 달 탐사선 창어 4호를 달 착륙 궤도에 진입시킨 중국에서는 신기술의 경연이 펼쳐집니다. 최근 베이징에 ‘AI(인공지능) 공원’이 문을 열었죠. 생생한 체험기가 인터넷에 뜹니다. 공원 입구에서 구내로, 관람객을 싣고 시속 10킬로미터로 오가는 자동운전 차는 자동차의 미래입니다. 내방자의 얼굴을 인식해 그가 도착한 곳까지의 거리, 운동량도 계산해줘 화제죠. 중국은 전국에 1억 대의 CCTV를 설치해 이 가공할 기술로 3초 안에 신원을 판단한다고 합니다. 원격 진료도 급팽창해 최근 3년간 1억 명을 진료했습니다. 우리는 언제 따라갈까요. 지금 대부분 진료는 환자 말 몇 마디로 처방을 내지 않나요? 

최근 캐나다에서 통신장비업체 화웨이(華爲)의 재무총책임자(CFO) 겸 상속녀 멍완저우(孟晩舟)가 대 이란 무역제재 위반 혐의로 체포됐죠. 미국이 스파이웨어의 우려가 있다며 5G 기술 도입을 말라는 화웨이는 작년 매출이 1,085억 달러(약 121조 원)로 중국 1위 민간기업이자 ‘차이노베이션(중국 혁신)’의 상징입니다. 나는 김포에서 33번 중국산 전기 버스를 가끔 이용합니다. 전기차는 운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내연기관이 없는 배터리 난방이라 차 안은 꽤나 으슬으슬합니다. 중국의 전기차 판매는 2017년 57만 대에 이어 작년엔 100만 대를 넘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중국 SUV도 수입돼 2,000만 원 밑으로 시판 중이죠. 반값 임금으로 자동차 공장을 세우려는 지자체가 있지만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물건처럼 가성비를 높여갈 중국차가 쏟아져 들어올 테니까요. 중국은 GDP 1만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GDP 8퍼센트 성장을 자랑하는 인도는 인간의 달 착륙 50주년이 되는 올해 초 찬드라얀2를 발사해 미국, 옛 소련, 중국에 이어 네 번째 달 탐사 국가가 되려고 합니다. 달의 토양을 분석해 지구에 전송할 계획입니다. 이스라엘은 금년 ‘베레시트(창세기)’ 계획으로 달에 무인 탐사선을 보냅니다. 어린이 그림, 사진, 이스라엘 문화, 인류의 역사에 관한 정보를 CD 형태로 타임캡슐에 담아 달에 두고 온다는 계획입니다. 

이렇게 아시아권 유력 국가들이 희망에 찬 미래로 뻗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면 우리는 과거를 파서 지구 반대쪽 남미에라도 도달하려는 것인지, 서울 지하철을 타보면 음울한 분위기로 명랑한 사람이 드뭅니다. 웃고 떠드는 것은 대개 외국인들이죠. 여론조사를 보면 20, 30대 여자들이 현 정치를 지지한다는데요. 20대 남자들은 왜 반대일까요? 취업난에 실업 급증, 어쩔 수 없이 뛰어든 자영업은 피 터지는 경쟁으로 지치고요. 종교적인 병역기피의 무죄 판결과 대체 복무 도입, GP를 제거한 후 경계를 해야 하는 불안한 안보 환경이 ‘헬 조선’일 겁니다. 

원자력발전 폐기로 희망을 잃는 원자력학과 대학생은 다른 과로 옮긴답니다. 50여 년 키워온 ‘국보급’ 첨단과학의 결정체인 원전의 폐기 비용을 분식으로 축소하고, 안보 자원인 전기를 수입한다는 발상이 말이 되나요? 그러면서 원전 수출은 하고 싶다고요. 미래의 밥그릇을 깨지 말고 원전 폐기 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합시다.

야당이 41퍼센트 지지로 태어난 정권의 폭주를 견제 못 하니까 국민이 웃을 일이 없는 겁니다. 스웨덴 국회의원은 일은 많고 대우는 낮은 3D 업종이라 자발적 불출마자가 40퍼센트라고 합니다. 우린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며 신분증 제시를 거부하는 여당 의원 같은 ‘특권층’을 늘리자는 미친 잠꼬대를 합니다. 국회의원은 지금도 많은데 세금을 더 퍼부어야 합니까? 

국제정세도 황량하죠. 전시작전권 환수와 자주국방의 무게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시리아 미군 철수에 항의한 매티스 미 국방이 ‘동맹을 중시하라’며 사임했죠. 트럼프는 동맹국들이 고마움을 모르고 무역으로 돈만 번다고 불만을 터트립니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갤리 슈미트는 “시리아 다음은 아프간 철군이라는 루머가 있지만, 유럽, 중동, 인도 태평양이 대통령의 변덕으로 한순간에 통고될 수 있다. 지금 타이베이, 탈린, 서울 혹은 암만에 앉아 트럼프의 결정이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보라”라고 경고했습니다. 

국민은 잘 돌아가는 게 없는 답답한 나라를 벗어나 기회만 있으면 해외로 나갑니다. 지난해 일본에만 700만 명 이상이 갔습니다. 집권 3년 차인 대통령은 ‘적폐다, 아니다’를 떠나 두 전직 대통령 등 이전 정권의 고위직들 구속이나 투신자살 같은 음산하고 침통한 분위기를 화합조치로 쇄신해야 할 것 같지 않나요? 그래야 내국인도, 외국인도 코리아를 밝게 보지 않겠습니까? 

‘노예사회’ 북한에서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는 《3층 서기실의 암호》라는 책에서 “북한은 50년대 말부터 원폭을 개발할 연구소를 만들었다"면서 "북한은 체제와 정권 유지에 핵무력이 필수라고 보고 있다"는 요지로 설명합니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사실상 핵무장 완성을 선언했죠. 집권세력은 전 세계가 지지하는 북핵 폐기가 한반도 비핵화라고 강변하는 북의 ‘위장 평화’에 매달릴 게 아니라, 진정한 미래를 향해 모두를 포용하고 힘을 합쳐 비전을 세우는 일을 중시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국민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다.’라는 마음으로….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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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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