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1년 만에 '쑥대밭' 된 창원..."일감도 사람도 다 떠났다"

탈원전 1년 만에 '쑥대밭' 된 창원..."일감도 사람도 다 떠났다"


도전 2019 이것만은 꼭 바꾸자

탈원전 속도조절 하자


신한울 3, 4호기 건설 중단

두산重 직접 손실만 4930억원

고급 원전 인력 이탈도 가속화


"당장 올해부터 일감 절벽 몰려"

300여개 협력업체 도산 위기


작년 흑자냈던 창원 상장사

올 3분기엔 308억 적자전환




         지난 19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에 있는 원전기자재업체 성일엔지니어링에서 김충열 이사가 일이 없어 놀고 

         있는 원전 장비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다.


“회사 매출은 늘 수도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고급 인력들이 떠나가는 건 너무 큰 손실입니다. 원전에 비전이 안 보여 나간다는데 붙잡을 명분도 없고….” 지난 19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두산중공업 원자력공장에서 만난 회사 관계자들은 ‘사람’ 얘기부터 꺼냈다. 몇 달 전 원전 설계 엔지니어 서너 명이 한국수력원자력의 발전소 정비 분야 신입사원으로 이직한 사례를 소개하며 ‘충격’이라고 했다. 두산중공업 원자력비즈니스그룹(BG) 관계자는 “경력을 손해 보면서 옮긴 것도 안타깝지만 전문성에서 설계와 정비는 비교할 수가 없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창원시 성산구 두산중공업 원자력 공장의 옥외 작업장에 신한울 3, 4호기 증기발생기용으로 제작된 

         자재가 붉게 녹이 슨 채 쌓여 있다. /서민준 기자


납품 못하고 녹슬어 가는 원자로 자재

두산중공업은 2017년 이후 원자력 부문 인력이 100명 넘게 줄었다. 전체 발전 인력은 2017년 9월 4715명에서 지난해 9월 4450명으로 줄었는데 감소 인력 40% 가까이가 원자력 부문에서 이탈했다. 이동현 두산중공업 원자력공장 생산파트장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원전 설계, 제조 분야는 직원 한 명 한 명의 노하우가 무형의 특허와 같다”고 했다. 이런 핵심 인력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은 원전산업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설명이다.




두산중공업은 원전의 핵심 기자재인 주기기(원자로, 증기발생기, 터빈발전기)를 생산하는 회사다. 세계적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가 2000년대 이후 주기기 제작을 11차례나 맡겼을 정도로 높은 기술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지난해 들어 실적이 급격히 악화하는 등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3분기에만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85.5% 고꾸라졌다. 현 정부 들어 시작된 탈(脫)원전 정책 때문이다. 원전 기자재·설계 업체는 일감 대부분이 신규 원전에서 나오는데 신한울 3, 4호기 등 6기의 신규 원전 건설이 취소된 게 결정타였다. 마지막 신규 원전인 신고리 5, 6호기 주기기 납품이 2020년 끝나면 일감이 사실상 끊긴다.


 


원자력공장의 옥외 작업장엔 신한울 3, 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자재 수십 개가 한겨울 차가운 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야외에 오래 놔둔 탓에 하나같이 붉게 녹이 슬었다. 이 파트장은 “원래대로면 조립을 해서 한수원에 납품해야 하는데 원전 건설이 취소되면서 갈 데가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런 ‘헛수고’로 인한 손해액만 4930억원에 이른다. 이 회사 한 해 영업이익의 53%(2017년 영업이익 기준)에 달하는 규모다.




중소 원전업체 도미노 파산 우려

탈원전 여파는 대기업에 그치지 않는다. 뿌리산업을 형성하는 부품업체들로 파장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런 속도라면 원전산업 생태계가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란 위기가 팽배하다. 원전 중소업체가 몰려 있는 창원이 한복판에 있다. 300개에 이르는 창원의 중소 원전업체는 사세가 급격히 기울고 있다.


원자로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성일엔지니어링은 작년 매출이 2015~2016년 대비 절반 가까이 줄었다. 김충열 성일엔지니어링 이사는 “정부가 공론화를 한다며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5개월 멈추는 바람에 일감이 확 줄었다”며 “올초부터 신고리 5, 6호기 작업을 시작하지만 하반기면 끝나 그 뒤로는 일이 없다”고 전했다.


공장의 고가 장비들은 쓰일 데가 없어 대부분 방치돼 있다. 김 이사는 “그나마 돌아가는 장비도 원래 목적과 무관한 일반 기계 작업에 투입하고 있다”며 “저런 일에 투입하려고 고가를 주고 산 장비가 아닌데”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사무실 한편에 있는 부품 인증서들을 보여줬다. 원전기자재 사업은 일이 없어도 인증을 유지하는 데 1년에 수억원의 돈이 든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는 “차라리 신한울 3, 4호기를 공식 취소하면 원전 사업을 접고 품질유지 비용이라도 아낄 텐데 ‘희망 고문’을 당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원전산업 위기, 창원 경제 위기로 번져

원전 사업 비중이 70%가 넘는 경성정기는 사정이 더 어렵다. 이 회사는 원전의 안전 운영과 직결된 핵심 부품만 10여 개를 제작한다. 성남현 경성정기 전무는 “신고리 5, 6호기 부품 납품이 올 3~4월이면 다 끝난다”며 “낭떠러지 끝에 다다른 느낌”이라고 말했다. 작년 초만 해도 80~90명이던 직원은 현재 50명 정도로 줄었다. 자금 조달의 어려움도 호소했다. 성 전무는 “경영난을 해소하려고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으려 했더니 원래 연 3~4%였던 금리를 9.5%까지 부르더라”며 “대출금 상환 독촉 때문에 공장을 파는 회사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원전산업 위기는 창원의 경제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창원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창원의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은 2017년 3분기에 1093억원의 영업이익 흑자를 냈으나 작년 3분기 308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코스닥 상장사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204억원에서 111억원으로 줄었다. 창원 기업들의 경영난과 감원은 곧바로 골목상권과 부동산시장 침체로 이어져 지역민의 고통을 키우고 있다.

창원=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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