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말 그리고 노량진수산시장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동아대 석좌교수 


글쓰기와 건축하기는 서로 같아

사건과 사물 관찰 통해 상상하고

이를 사상과 개념 틀에 집어넣어

선택된 재료로 창조하는 게 같다

내 건축과 말을 가다듬고 벼른 후

이 자리에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내가 아는 이가 거기 있어 더욱 그렇지만, 노량진수산시장의 갈등이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 혹시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까, 자못 불안하다. 사태가 오래 진행되어 그간에 무슨 사정이 더 생겼는지 알지 못하지만, 여기에 이르게 한 잘못의 원인이 아무리 생각해도 새 건물 입주를 거부한 상인에게도, 그 운영을 맡은 현재의 수협에도 있지 않다. 현대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지은 새 건물이 갈등의 원인인데, 이 사업을 일으킨 이들은 다 떠나고 죄 없는 이들만 비극의 현장에 있다는 게 온당치 못한 것이다. 상인의 말로는, 새 건물이 수산시장의 기능과 공간구조를 잘못 이해하여 만들어져 말이 안된다고 했다. 

  




20세기 초엽, 세계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으면서도 구시대의 관습에 끌려가고 있었을 때, 그래서 건축이 그리스와 로마 건축을 다시 끄집어내어 고전주의 절충주의 등으로 시대를 역행하고 있었을 때, 기계문명의 시대가 온 것을 감지한 아돌프 로스라는 건축가가 빈 한복판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 앞에 장식이 없는 격자의 건물을 세워, 전통을 중요시하는 왕가와 시민들이 격분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들에게는 도무지 말 안되는 건축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이미 바뀐 것을 확신한 이 건축가는 ‘현대인이 자기 몸에 문신을 한다면 그는 범죄자’라고 하며 ‘장식은 죄악’이라고 선언한다. 혁명적인 그의 새로운 말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목격하면서도 방향을 찾지 못하던 지식인들에게 대단한 자극과 영감을 주었고 그의 건축은 결국 20세기의 시대정신인 모더니즘을 여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그 이전의 건축은 비례와 양식을 따지며 시각적 아름다움을 우선하였지만, 쓸모없는 장식을 걷고 이성이 빛을 발하게 된 모더니즘에서는 합리적이고 납득할 수 있는 논리로 무장된 건축의 시대가 만개한 것이다. 

  

사실 건축은 논리가 없으면 애초부터 세워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기초와 기둥, 보 같은 구조는 반드시 합리적이어야 건물이 지탱되며 공간의 크기나 기능 또한 합당한 명분이 있어야 구성된다. 그래서 건축은 말로서 설명이 가능해야 하고 좋은 건축일수록 그 논리가 늘 명료하다. 이 까닭으로 나는 글쓰기와 건축하기는 서로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글 쓰는 이가 어떤 사건이나 사물에 대한 관찰을 통해 상상하고, 이를 사상과 개념의 틀에 집어넣어 선택된 어휘를 재료로 창조해내는 게 글이라면, 이는 건축설계의 과정과 똑같다. 글이나 집이나 다 짓기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글로 내 건축을 먼저 설명하는 버릇이 생겼다. 

  

나는 1990년대 초 ‘빈자의 미학’이란 말을 만들어 내 건축의 바탕으로 삼겠다고 선언한 바 있었다. 더러는 빈정대기도 했지만 빈자의 미학은 내게는 유행어가 아닌 진리였고 그래서 더욱 절박하게 움켜잡았다. 이 말은 결국 내게 족쇄가 되어 내 건축이 여기서 벗어나기만 하면 사정없이 나를 후려쳤으니, 말씀 언(言) 자는 입에 쇠칼구리를 나타낸 모양이라는 걸 실감했다. 나는 나를 더욱 벼려야 했고 더 정교한 말로 내 건축을 가다듬어야 했던 것이다. 



  

『인간과 말』을 쓴 막스  피카르트는 “언어는 인간에게 앞서 주어진 것”이라 하며 “인간은 말하는 존재가 아니라 말해지는 존재”라고 했다. 이 말을 이렇게 번안해서 써도 될까? 공간은 이미 주어진 것이며 건축가를 통해 재조직되는 게 건축이다. 어렵게 들릴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유행어가 집단지성을 통해 걸러지고 다듬어져서 언어가 되어 전해지는 것처럼, 공간이나 건축도 변하는 생물과 같아서 그 완성은 건축가가 아니라 거주자에 의해 시간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예컨대 지금 우리가 에펠탑 없는 파리를 상상하는 일이 가능할까? 그러나 그 탑이 처음 세워졌을 때는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파리의 삶을 망치는 흉물이라며 반대했었다. 생소하기 짝이 없어 우주선 같다던 동대문의 DDP도 이제 서울 풍경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으니, 그렇게 우리는 건축과 더불어 변하는 게 확실하다. 


그래서 확신하건대, 노량진수산시장이 말 안되는 건물이라 해도, 서로 양보하고 용서해서 모두 함께 불편을 고치며 적응하다 보면 어느새 말 되는 건물로 바뀌어 있지 않을까? 이 오래된 갈등이 화해로 연말을 맞을 수 있다면,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이 시린 계절을 지나는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할 게다. 부디 서로 용서하시라. 

  



나는 말과 건축이 같다고 주장하며 건축가로서는 너무 많은 글쓰기로 세상을 겨누었다. 특히 내게 특권처럼 주어진 지난 2년간의 이 ‘중앙시평’은 세상의 공의를 명분 삼아 내 자신만을 보호하기 위해 쓰인 무기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글이 어떤 이들에게는 상처로 남았을 것이라 미안하고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 독일의 시인 휠더린의 경구가 유난히 생각이 난다. “그리하여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도 위험한 존재인 언어가 인간에게 주어졌다.” 

  

내 건축과 말을 다시 가다듬고 벼르고 난 후 이 자리에 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 모두 평화하고 강녕하시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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