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도 줄서있는 서울 돈가스 집

새벽에도 줄서있는 서울 돈가스 집


소확행? 돈가스 먹으려 새벽3시부터 기다리는 사람들


새벽 3시 도착한 사람이 1등…주말엔 자정부터 대기

번호표는 35개, 아침 6시10분 이후 도착자 ‘탈락’

손님들 "떨면서 기다리는 게 추억"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고연동·이남희(22)씨는 아침 일찍 일어나 택시를 잡아타고 18일 오전 6시50분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포방터 시장에서 내렸다. 지난 11월 7일 SBS 예능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백종원 씨가 "일본에 가서 먹은 돈가스보다 더 맛있다"라고 평가한 ‘돈카2014’의 돈가스를 먹기 위해서다.


14명이 앉을 수 있다는 작은 돈가스집에 도착했을 때 고씨와 이씨는 당황했다. 벌써 80명이 줄을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오전 7시쯤부터 줄을 서면 돈가스를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는데...다음에는 더 빨리 와서 다시 도전하겠다"고 말하며 발길을 돌렸다.




           18일 새벽 4시30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포방터시장 내 ‘돈카2014’에 손님 8명이 줄을 서 있다./ 

           권오은 기자


평일 새벽에 돈가스 먹겠다고 150명 줄 서

기자가 홍은동 포방터시장에 도착한 시간은 이날 새벽 4시30분. 이미 8명이 줄을 서 있었다. 가장 먼저 온 사람은 새벽 3시에 온 이모·신모(33)씨. 이들은 단지 돈가스를 먹기 위해 전북 전주시에서 서울까지 세 번이나 와서 이날 처음으로 돈가스를 먹는 데 성공했다. 이날 서울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3도였다. 이씨는 "방송을 보고 정말 맛있어 보여 올라왔다"며 "처음에 왔을 때는 줄 뒤쪽이어서 실패했다. 그날 1등한 사람에게 물어보니 새벽 3시부터 기다렸다고 해서 오늘 그 시각에 왔다"고 했다.




올해 수능을 치른 고등학교 3학년 박서연(18)양은 전날 밤 11시에 기차를 타고 오직 이 집 돈가스를 위해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제 최애(最愛·‘가장 좋아하는 것’이라는 뜻의 신조어) 음식이 돈가스인데, 대구엔 맛있는 돈가스집이 없어요. 방송에서 이 집 치즈가스를 보고 설레 오늘만 기다려왔어요." 박양이 번호표를 받아 들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돈가스 집 주인인 김응서(39)씨가 번호표를 배부한 시각은 오전 8시 40분. 이 때 150여명이 50m에 걸쳐 줄을 서 있었다. 돈카2014는 번호표를 35번까지만 나눠주고, 하루에 받는 손님은 100명쯤이다. 번호표 35번은 아침 6시 10분에 도착한 사람에게 돌아갔다. 평범한 사람은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이곳에 도착해야 돈가스를 먹을 수 있는 셈이다.


           18일 오전 11시쯤 돈카2014에서 김응서씨가 주방에서 요리를 준비하고 있다. 아내 김소연씨가 매장 

           안을 청소 중이다./ 권오은 기자


사장 김씨는 "몇몇 분은 하루에 100명만 받는 것이 일부러 줄을 세우는 ‘품절 마케팅’ 상술이라고 말한다"며 "하지만 그 이상 손님을 받으면 몸이 너무 힘들어 다음날 장사 준비를 할 수 없다. 기다리는 손님에게는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면서도 정신없이 이날 사용할 된장국과 돈가스 소스를 만들고 있었다. 김씨의 아내 김소연(36)씨는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에 준비된 수량의 돈가스를 다 팔고나면 문을 닫고 내일 장사 준비를 한다"고 말했다.




"줄 서는 것도 추억"…초등학교에선 자랑거리

이 돈가스 집은 낮 12시부터 손님을 받는다. 이날 번호표 ‘1번’을 받은 이씨와 신씨는 9시간을 기다려 돈가스를 입에 넣었다. 주말엔 밤 12시부터 기다리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오래 기다리는 이유를 물었더니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한 겨울 새벽에 오들오들 떨면서 밤새 줄을 서는 것도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이라는 것이다.


새벽 4시40분쯤 가게 앞에 도착한 곽영영(30)씨는 "인터넷에서 본 돈가스 사진이 계속 아른거려서 뒤척이다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왔다. 전날 밤 11시에 올까 생각도 했었다"며 "주변에 여기 돈가스를 먹고 싶다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 와서 먹는 건 내가 처음이다. 이게 다 추억이 된다"고 했다. 점심식사를 마친 뒤 곽씨는 "돈가스가 보기에도 예쁘고 맛있어 합격점이다. 게다가 기대하지 않았던 카레가 훅 치고 들어왔다. 카레가 진국이어서 밥을 세 공기나 먹었다"고 했다.


          홍은동 돈카2014에서 판매하는 등심가스(왼쪽 사진)와 치즈가스./ 권오은 기자


강원 철원군에서 온 직업군인 안재영(35·상사)씨는 아내, 네 자녀와 함께 휴가를 내고 서울 여행을 왔다가 이날 새벽 4시40분쯤 줄을 섰다. 안씨는 "아이들이 방송을 보고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기다리면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줄 수 있다는 생각에 줄을 섰다"고 했다. 자녀들은 4시간 뒤 번호표를 받을 때 가게 앞에 와서는 "서울에 살면 매일 먹을 수 있을까?" "이 가게 위에 살면 바로 내려와서 줄 서면 되겠다"고 신이 나서 떠들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백종원 맛집’에 가보는 게 자랑거리에요." 안씨가 말했다.




며느리와 돈가스를 먹으려고 새벽부터 기다리는 시어머니도 있었다. 김모(72)씨는 서울 종로구 세검정 집에서 나와 새벽 4시부터 기다렸다. 그는 "며느리는 이렇게 오래 기다리는 줄 모른다"고 했다. 기자가 ‘며느리에게 생색 좀 내라’고 하자 "아휴 뭘… (아들하고)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라고 했다.


주변 상인들 "덕분에 매출 2배"

돈가스집의 대성공은 시장을 전체적으로 살리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상인들은 줄을 선 손님에게 담요를 나눠주고, 따듯한 차를 나눠주기도 했다.


           18일 오전 8시40분쯤 손님 150여명이 돈가스를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다./ 권오은 기자


돈카2014 매장 지하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이상현(44)씨는 "2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데, 지금이 손님이 가장 많다. 평소보다 매출이 50%쯤 늘었다"고 했다. 오전 10시쯤 들른 이 카페엔 번호표를 받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10여명이 앉아 있었다. 이씨는 추운 날씨에 새벽부터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아침 일찍 담요를 나눠줬다.


바로 옆에서 과일을 파는 예산상회 주인 이모(51)씨는 이날 아침 6시쯤 문을 열었다. 늘어선 대기줄을 보더니 주전자에 끓인 보리차를 들고 와 종이컵에 따라 50명쯤한테 돌렸다. 이씨는 "여기서 20년째 장사하고 있는데, 방송이 나간 뒤 대박이 났다"며 "사람들이 돈가스 먹으러 온 김에 시장 구경을 하고 물건을 사 간다"고 말했다.




정용래(65) 포방터시장 상인회장은 "돈카2014를 비롯해 시장 내 음식점이 방송을 탔고, 돈가스집에 왔던 손님이 다른 가게에도 들러 매출이 뛰었다"며 "이 시장 안에 있는 76개 가게는 최근 한 달간 매출이 평소의 2배쯤 된다"고 했다.


돈가스 하나 먹기 위해 밤을 새우는 일은 남들 보기엔 ‘쓸데없는 짓’ ‘실없는 짓’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런데 9시간 이상 줄을 서서 돈가스 한 그릇을 먹는 ‘노력의 과잉투자’를 이들은 다 기꺼이 하고 있었다. 트렌드 전문가들은 올해와 내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소확행’을 꼽고 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이다. 적어도 어떤 사람들에겐 ‘소확행’이 ‘지구를 지키는 일’ 만큼 의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돈가스 집 앞의 긴 행렬은 증명하고 있었다. 

손덕호 기자 권오은 기자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23/20181223005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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