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간호사 ‘조라’ 이야기 [김수종]


로봇 간호사 ‘조라’ 이야기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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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간호사 ‘조라’ 이야기

2018.12.12

“40이 넘으면 기술자도 기계 만지기가 싫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 그런지는 엔지니어에게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개인적 경험으로는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디지털 시대로 깊이 들어갈수록 컴퓨터, TV세트 등 전자기기 활용도는 높아지고 AI스피커 등 새로운 물건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기계들이 고장이 나도 덥석 만지며 고치기가 싫습니다. 사실은 어렵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기계치(機械癡) 컴맹(盲)의 정도는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당황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젊은이들이 그렇게 편하게 쓰는 음식점의 전자 키오스크를 볼 때마다 내가 익숙하게 살아온 세상이 사라진다는 상실감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한, 나이가 들수록 기계와는 점점 더 가까이 지내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인간을 더욱 정교하고 복잡한 기계 세상으로 몰아넣을 것이 너무나 뻔합니다.
기술 발전에 따라 로봇이 산업 현장뿐 아니라 일상생활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람과 형체가 비슷해야만 로봇은 아닙니다. 사람의 명령을 받아들여 행동을 하면 그게 로봇이 아닐까요. 요즘 로봇 청소기를 쓴다는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자율주행차도 교통 인프라에 적응되게 발전된 로봇입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자율주행 택시를 타고 다닐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말만 하면 알아듣는 택시라면 운전기사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니 오히려 편하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최근 간호사 로봇에 대한 소식을 외신과 유-튜브를 통해 보았습니다. 프랑스 파리 교외에 있는 한 노인 요양병원에는 로봇 간호사 ‘조라’(Zora)가 시험 근무 중입니다. 생김새는 장난감 인형 같은데 인사말을 걸면 대답도 하고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깜찍스럽습니다. 조라는 벨기에의 로봇회사 조라보츠(ZoraBots)가 제작한 로봇 간호사로 이 병원에서 노인 환자의 건강을 관리합니다. 가격은 대당 18,000달러(약 2천만 원)입니다.

조라가 투입된 요양병원은 환자 가족들이 드문드문 찾아오는데, 치매 환자 등 눈을 떼지 않고 돌보아야 하는 노인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들 환자를 돌보는 일을 조라를 통해 실험하는 것입니다.

조라는 환자에게 운동을 따라 하도록 시범을 보이고, 게임도 합니다. 환자와 대화도 합니다. 간호사가 랩-탑을 통해 단어를 입력하면 조라는 이 명령에 따라 말을 합니다.

조라는 약을 조제하고, 혈압을 재고, 병원 이부자리를 갈아주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조라는 환자에게 음식을 먹이는 일은 해줄 수 있지만 병원은 아직 그런 것까지 조라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이 일을 로봇이 해주는 것은 환자에게 필요한 인간적인 접촉과 따스함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병원에 입원한 노인 환자들의 로봇에 대한 반응은 간호사들마저 놀라게 할 정도로 기이한다는 겁니다. 많은 환자들이 조라를 아기처럼 대하고, 껴안아 어르고, 머리에 입을 맞추는 등 감정적인 집착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환자들이 의사에게도 얘기하지 않던 자신의 건강 상태를 조라에게는 술술 털어놓는 것입니다. 로봇 간호사는 입력된 정보에 의해 움직이는 거지만, 환자들이 로봇을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유엔 통계에 의하면 2050년이면 전 세계에 걸쳐 60세 이상 노령 인구가 21억 명으로 늘어난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어린이가 너무 많이 태어나서 인구 폭탄이란 말이 생겼으나, 이제는 노인 인구의 증가가 바로 인구 폭탄이 되는 시대입니다. 세계는 노령사회로, 그리고 극도의 핵가족화 시대로 급속히 가고 있습니다. 자녀를 하나만 낳는 것이 아니라 아예 낳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이 많아집니다. 요양 병원의 로봇 간호사 고용은 시대적 필요성에 대한 대답일 수도 있습니다.

로봇은 깜찍한 기능을 갖고 있지만 감정이 없는 기계입니다. 노인들은 몸의 기능은 현저히 떨어졌지만 환경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을 갖고 있는 인간입니다.

여기서 노인들이 조라에게 보이는 애정 어린 집착은 미래 사회의 모습을 시사해 주는 것 같습니다. 노인들이 로봇 간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사는 것이 인간성이 파괴된 디스토피아로 가는 길인지, 기계와 친구가 되며 나름 행복하게 사는 대안(代案)사회로 가는 길인지 헷갈립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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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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