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도 떠난다, '갈라파고스의 나라'를…


대학도 떠난다, '갈라파고스의 나라'를… 


말레이시아에 본부 두고 

6~7개 아시아대와 공유 등 脫한국 조짐


안석배 사회정책부장


   지방에서 내실 있게 학교를 꾸리고 있는 한 대학 총장을 최근 만났다. 학생은 줄고 돈줄은 말라가는 요즘 대학가 이야기를 하던 그 총장은 "그래서 우리는 해외 대학과 '공유대학'이란 걸 해보려 합니다"라고 했다. 학생들을 뽑아 아시아 6~7개 대학 캠퍼스를 돌며 공부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몇몇 해외 대학과는 의견도 모았다고 한다. 참신한 아이디어였다. "총장님이 제안했으니 대학 본부는 한국에 두겠네요?"라고 묻자, "그게… 말레이시아에 둘 겁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현행법상 우리나라는 새 대학을 만들려면 건물과 땅이 있어야 한다. 기존 대학 캠퍼스를 이용하면 불법 시비가 생긴다. 게다가 한국에 대학 본부를 두는 순간 교육부의 감시와 규제도 시작된다.


정부가 계속 혁신·실험 막으면 

대학도, 산업계도 落後될 것




카이스트는 지난해 정원 50명 규모의 무(無)전공 학과인 융합기초학부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카이스트 학생들은 1학년을 전공 없이 지내다 2학년 올라갈 때 전공을 정하는데, 융합기초학부 학생들은 4년간 전공을 뛰어넘어 공부하고 연구한다고 했다. 융합 인재를 키우는 새로운 실험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내년 3월 이 학과가 출범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이 안(案)은 과기정통부에 막혀 있다. 과기부는 과거엔 이를 "교육 선도 모델"이라더니 최근에 입장이 바뀌었다 한다. 대학이 학과를 마음대로 만들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그런 카이스트도 늘 하는 말이 있다. "그래도 우리는 교육부 산하가 아니잖아요. 그 덕에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죠."


주한유럽상의가 최근 '한국은 세계에 유례없는 독특한 갈라파고스의 규제 국가'라고 했다. 자동차, 제약 등 산업 규제를 일일이 열거하며 100쪽이 넘는 실태 보고서를 펴냈다. 만약 외국 대학이 한국 대학정책 규제 보고서를 만들면 분량이 얼마나 됐을까. 최근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학 중 한 곳이 애리조나주립대다. 이 대학은 GFA (Global Freshman Academy)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전 세계 어디서든 온라인으로 1학년 학점을 취득할 수 있게 한다. 올해 180여 개국 23만여 명의 학생들이 수강했다. 신생 대학인 미네르바대학은 아예 캠퍼스가 없다. 대신 학생들이 전 세계 도시를 돌며 프로젝트 교육으로 배운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이런 시도를 하면 바로 '불법' 딱지가 붙을 것이다.




대학은 끊임없이 변해야 살아남는다. 그걸 가장 잘 알고, 절실한 쪽은 대학이다. 그런데 우리는 공무원들이 길 중간에 버텨서 간섭하고 방해한다. 과거엔 교육부였는데, 이젠 교육부와 과기부 협공(挾攻)이다. 두 부처 공무원은 과거에 잠시 '같은 집'에 근무했다. 10년 전 교육과학기술부란 이름으로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가 합쳐졌다. 몇 년 후 둘은 헤어졌지만 그때 과기부 공무원이 교육부에서 제대로 '한 수' 배운 듯하다. 요즘 과기부가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대학 총장과 과학계 인사들 표적 감사하고 내쫓는 것을 보면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단어가 생각난다.


갈라파고스는 그 생태계를 즐기고 만드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유지된다. 정부만 답(答)을 아는 듯 규제하고, 간섭하고, 참견하고, 길잡이 노릇 하면 우리는 영영 남태평양의 고도(孤島)일 수밖에 없다. 가장 창의적이고 실험적이어야 할 대학부터 낙후되면 산업계는 말할 것도 없다. 교육부 고위 인사가 언젠가 "대한민국은 지금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궁금한 건 교육부와 과기부는 지금 어느 시대 행정을 펴고 있는가이다.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09/2018120901573.html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