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강국 핀란드를 가다] 원전으로 전력 공급 효율 높이고, 수력·풍력·재생에너지로 뒷받침

[에너지 강국 핀란드를 가다]

원전으로 전력 공급 효율 높이고, 수력·풍력·재생에너지로 뒷받침


자원 빈국인데도 유럽에서 전기요금 가장 싸

세계 최초로 사용후 핵연료 영구처리시설 완공 예정 


고준위방폐장 없는 한국, 여전히 임시보관 중


사진:TVO 제공




에너지 강국 핀란드를 가다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이 초미의 관심사다. 원전 비중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와 친환경에너지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안전과 환경을 생각하면 장기적으로는 탈(脫)원전이 해답이라는 정책 방향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부족하면서도 전력 소비량이 많은 나라로 꼽히는 핀란드도 에너지정책 논의가 활발하다. 핀란드 에너지정책의 핵심은 온실가스를 감축해 기후변화에 대비하면서도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4기인 원전을 2기 더 늘려 현재 연간 전력 공급량의 25%를 담당하는 원전 비중을 2030년경 45%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원전 사고에 대비해 세계 최초의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리시설도 짓고 있다. 동시에 재생에너지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에너지신산업을 추진하고 있다. 핀란드 ‘에너지 혁명’의 현장을 찾아 우리 에너지정책의 방향을 모색해봤다. 


               핀란드 올킬루오토에 건설 중인 세계 최초의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리시설인 ‘온칼로’ 공사 현장. 

                / 사진:Posiva 제공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리시설인 ‘온칼로’ 지하 구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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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겨울은 혹독하다. 하루 일조량이 4시간이 채 안 되고, 도시의 평균 기온은 영하 20~25도까지 내려간다. 그러다 보니 핀란드는 전통적으로 산림업과 철강·석유화학 등 전력을 많이 쓰는 업종에 강하다. 이 때문에 인구 550만 명에 불과한 이 작은 나라의 연간 전력 소비량은 85.5Wh(테라와트시·1TW는 1조 W)로, 에너지 다소비 국가에 속한다. 




동시에 연간 전력 총 사용량의 24%를 수입에 의존하는 에너지 빈국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석유나 석탄·가스등 천연자원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핀란드는 현재 석탄·석유 등을 이용한 발전량을 점차 줄이고 있다. 석탄은 2030년까지 완전히 사용하지 않을 계획이다. 유럽연합(EU)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로 선언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1990년 기준 배출량에서 40%가량 줄이는 것이 목표다. 리쿠후투넨 핀란드 고용경제부 에너지실장은 “EU의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동시에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원전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원전에 대해 줄곧 반대 입장을 표명했던 녹색당 등 환경운동 진영도 필요성에 대해선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빈국이자 에너지 다소비국

핀란드 연간 전력 공급량의 약 25%를 4기의 원전이 담당한다. 수력·풍력(23%), 목재 및 재생에너지(13%), 석탄(7%) 등 다른 발전원에 비해 원전 비중이 크다. 덕분에 핀란드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8.4유로(2017년 기준)로 EU 국가 중 두 번째로 싸다. 가장 싼 곳은 스웨덴(8.1유로)이다. 역시 원전으로 전력 수요의 33%를 충당하는 나라다. 이와 달리 원전이 없는 덴마크는 유럽 내에서도 전기요금이 가장 비싼 나라(27.5유로)로 꼽힌다. 핀란드국립기술연구소(VTT)의 에리카 홀트 연구원은 “핀란드는 수력 발전을 할 수 있는 큰 강도 없고, 겨울철 일조량이 부족해 태양광 발전도 쉽지 않다”며 “친환경 에너지로 각광받는 풍력·수력에 필요한 시설은 전력 생산량에 비해 많은 면적을 필요로 해서 숲과 자연을 파괴하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훌트 박사는 “원전은 전력 안정성을 보장하면서도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효율적인 에너지”라고 덧붙였다. 



  

원전 정보 투명하게 공개해 신뢰도 높여

핀란드 국민들은 원전 지지도가 높다. 핀란드 에너지기업 페노보이마(Fennovoima)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올킬루오토 3호기가 들어선 피헤요키 지역 주민 중 원전 건설에 찬성한 비율은 75%에 달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핀란드에서도 안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며 찬성률이 69%(2012년 조사 기준)로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다수의 국민은 원전을 지지한다. 후투넨 에너지실장은 “핀란드 국민의 60% 이상이 원전에 찬성한다”며 “인구가 많은 수도 헬싱키에 필요한 전력량이 많으니 아예 시내에 소규모 원전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원전 안전에 대한 신뢰도 높다”고 말했다. 


                리쿠 후투넨 핀란드 고용경제부 에너지실장은 ’국민 60% 이상이 원전에 찬성하고, 안전에 대한 

                신뢰도도 높다“고 말했다. / 사진:허정연 기자



  

원전 지지율이 높은 데는 정부에 대한 깊은 믿음이 깔려 있다. 핀란드 정부는 원전 관련 정보를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웹페이지에서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원자력 안전 규제를 맡고 있는 원자력방사능안전청(STUK)은 전 세계에서 원전 안전성 심의와 검사 기준이 가장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헬싱키에 거주하는 한나 코스키넨(47)씨는 “덴마크에서 3년간 산 적이 있는데 핀란드에 비해 전기요금이 비싸 생활비가 부담됐다”며 “국민으로서 친환경적이면서도 저렴한 에너지원인 원전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정부의 장기적인 원전 대책을 깊이 신뢰한다”고 덧붙였다. 

  

VIT 내 원자력안전연구소는 핀란드의 원전 관련 기술 개발을 총괄하는 심장부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도 연구소 1층에 자리한 실험실인 ‘핫 셀’은 2016년 원전 안전 검증을 위해 지었다. 칸칸이 나눠진 소형 실험실 안에서는 로봇팔이 원전에서 채취한 시료를 분자 단위까지 쪼개거나 가열하는 실험을 반복한다. VIT는 원자력안전연구소 건물을 짓는 데 총 6000만 유로(약 650억원)를 들였다. 이 중 핫 셀 시설에만 2000만 유로(약 260억원)를 투입했다. 미국 9·11 테러가 발생한 이후에는 미국·캐나다를 비롯해 다른 유럽 국가와 함께 비행기가 원전 외벽에 충돌했을 때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원자력연구소 내부에서는 연간 약 20발의 미사일을 원전 외벽과 동일한 재질에 발사하는 실험을 반복한다. 



  

각종 안전대책뿐 아니라 원전 가동 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방사성폐기물(방폐물)에 대한 대책도 원전 건설과 동시에 고민한다. 세계 최초로 2023년 완공되는 온칼로(Onkalo) 사용후핵연료(원자로에서 4~6년 사용한 핵연료봉과 같은 물질) 영구처리시설은 핀란드가 원전 정책을 어떻게 추진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헬싱키에서 북서쪽으로 250km 떨어진 에우라요키시는 인구 6000여 명이 사는 작은 도시다. 시내 올킬루오토 지역에는 세계에서 유일한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리시설인 온칼로 건설을 위한 굴착 작업이 한창이다. 2004년부터 시작된 공사는 15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이곳에서 불과 수㎞ 떨어진 해안가엔 올킬루오토원전 1·2호기가 전력을 생산 중이다. 내년 9월엔 3호기가 상업가동에 들어간다. 올킬루오토는 원시림이 우거진 리클란카리 국립공원 등 4개 자연보존 지역과 인접해 있다. 

  

원전 외벽과 동일 재질에 미사일 쏘며 안전성 테스트

사용후핵연료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수만년 동안 방사능을 방출하기 때문에 10만년 이상 영구 격리해야 한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29개국이 총 448기의 원전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세계에서 영구처리시설을 보유한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부지 선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역 갈등과 기술 안전성 논란 등에 해법을 제시하기 어려운 탓이다. 1954년 가장 먼저 상업운전을 시작한 러시아나 세계에서 가장 많은 99기의 원전을 운영 중인 미국도 아직 영구처리시설을 갖고 있지 않다. 원전 선진국인 미국·영국뿐 아니라 탈원전을 진행하는 독일도 아직 영구처리시설은 갖추지 못했다. 



  

현재 운영 중인 원전이 4기에 불과한 핀란드가 다른 원전 선진국보다 먼저 영구처리시설을 갖게 된 이유는 정부와 기업이 일찍부터 사용후핵연료 처리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핀란드 정부는 이 프로젝트에 100년 간 35억 유로(약 4조5500억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핀란드어로 ‘동굴’이라는 뜻의 온칼로는 말 그대로 깊고 거대한 동굴과 같은 형태다. 2억년 이상 된 화성암층 437m 깊이에 지하 터널을 만들고, 터널 바닥에서 5.2m 깊이 구덩이를 파 폐연료봉이 담긴 밀봉용기를 묻는다. 시설이 완성되면 약 100년치의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수 있으며, 이를 10만년 간 보관할 예정이다. 완공은 2023년 경이다. 


                핀란드국립기술연구소(VTT)가 운영하는 원자력안전연구소의 핵심 시설인 ‘핫 셀’ 전경.




핀란드 정부는 1977년 첫 원전을 가동한 지 6년 만인 1983년 영구처리시설 건설 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약 17년에 걸쳐 핀란드 전역을 대상으로 적절한 부지를 찾아 지질조사 등 각종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했다. 국가가 책임지고 이 시설에 가장 안전한 지역을 선정하기 위해서 별도의 후보지 공모는 하지 않았다. 긴 연구 끝에 1999년 4개 후보지로 압축됐고, 이듬해 최종적으로 올킬루오토로 선정했다. 정부가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핀란드전력회사이자 원전 사업자였던 TVO와 영구처리시설 건설사인 포시바(Posiva)는 10년 넘게 지역주민과 소통하며 부지 선정을 둘러싼 갈등이나 정치적 이유로 차질을 빚는 일을 경계했다. 포시바의 미카 포요넨 이사는 “1996년부터 3년 간 지역주민을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켜 개방적인 공청회를 진행, 방사성폐기물 처리장(방폐장) 유치의 장단점을 함께 논의해왔다”며 “그 결과 주민 대다수가 임시 저장 방식보다는 영구 처분이 더 나은 처리 방법이며 현 세대가 책임져야 할 문제라는 점에 동의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에우라요키 시의회는 후보지 거부권이 있었지만 행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압도적인 찬성으로 정부 결정을 받아들였다.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리시설 건설에 지역사회 압도적 찬성

정부로부터 별다른 지원 예산도 받지 않았다. 후투넨 에너지실장은 “정부는 방폐장 건설 지역에 어떤 경제적 보상도 약속하지 않았지만 지역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효과에 대한 기대감으로 4개 후보지 간 유치 경쟁이 치열했다”고 말했다. 하리 히티오 전 에우라요키 시장은 유치 조건으로 중앙정부의 위로성 예산을 왜 받아야 하는지 오히려 되물었다. 그는 “온칼로 유치로 도시에 기업이 들어오고, 고용이 늘었는데 그 자체가 혜택이 아니냐”며 “우리가 만든 쓰레기는 우리가 치우는 게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핀란드가 운영 중인 네 개 원전 중 두 개가 에우라요키에 있다. 이후 핀란드 의회는 건설 찬반 투표에서 찬성 159표, 반대 3표로 최종 확정했다. 건설 과정에서도 안전성 검사를 수시로 하면서 공사 기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원전 정책만큼은 ‘느려도 확실한(slowly but surely)’ 기조를 유지한다. 1983년 당시 완공 목표는 2020년, 현재는 2023년 완공 예정으로 당초 계획보다 3년 더 늦어졌다. STUK의 유시 헤이노넨 방사성폐기물관리국장은 “오랜 세월 큰 차질없이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는 힘은 핀란드 정부와 정치권이 이 문제를 미래 세대 안전에 관한 문제로 인식해 정권이 바뀌더라도 큰 정책 변화 없이 꾸준히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다른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온칼로와 같은 고준위방폐물 영구처리시설은 아직 없다. 대신 중저준위방폐물의 경우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서 처분 관리를 맡아 2014년 완공한 경북 경주의 방사물폐기물장에서 처리한다. 중저준위방폐물은 고준위방폐물에 비해 위험도가 낮은 수준의 방사성 폐기물이다. 원전 내 방사선 관리구역 작업자들이 사용한 작업복이나 장갑·부품 등과 병원·연구소·산업체 등에서 발생하는 방사성동위원소(RI)가 주로 여기에 속한다. 약 206만㎡ 부지 아래 130m 깊이의 동굴에 10만개의 드럼이 묻혀 있다. 현재 이 부지에는 2단계 방폐장이 건설 중으로, 2020년 완공 시 12만5000개 드럼이 추가된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 관계자는 “1978년 고리원전 1호기가 운영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40년 동안 사용한 양이 약 13만개 드럼 분량”이라며 “현재까지 확보된 인근 부지까지 모두 방폐장을 건설할 시 향후 80년 간은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용량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고준위방폐장 없는 한국, 여전히 임시보관 중

온칼로와 같은 고준위방폐물 영구처리시설에 대한 논의는 이제 막 시작 단계다. 산업부는 고준위방폐물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를 발족해 이르면 내년 초부터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간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전국 25개 원전에서 발생하는 고준위방폐물은 별도의 폐기물장이 마련될 때까지 원전 내 임시 보관 중이다. 핀란드가 부지 선정 과정부터 온칼로를 완공하는 데 40여 년이 걸렸다는 점을 미뤄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단시간 내 시설을 마련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차성수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은 11월 경주에서 열린 ‘방폐물 안전관리 국제 심포지엄’에서 “향후 원자력의 중요한 화두는 안전과 방폐장”이라며 “원전을 지속하는 문제와 별개로 고준위방폐물의 영구처리시설을 마련해 처리하지 않으면 후대에 큰 과제를 남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 이사장은 “중저준위방폐장 건설 때 경험해봤지만 방폐장 건설은 기술적 문제를 넘어 정치·사회적 이슈가 결부된 문제로, 정책 수립 단계부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헤이노넨 STUK 방사성폐기물관리국장은 “우리는 누가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법규가 있었다”면서 “영구처리시설 사업은 항상 정치적 지지를 받았고, 기업들도 책임지고 이 사업에 전념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관계자들은 “영구처리시설 건설은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고 입을 모았다. 주요 설계를 담당한 아인스(AINS)그룹의 요르마 아우티오 핵폐기물처리사업본부장은 “영구처리시설은 수십만 년 동안 안전해야 하며 과거 몇 차례 발생한 빙하기와 지진도 충분히 견뎌야 한다”며 “철강과 콘크리트도 시간이 지나면 부식하기 때문에 영구적인 자재를 찾는 일이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AINS그룹은 여러 자재를 검토한 후 핵연료를 구리로 된 통에 넣은 뒤 주변을 화산재의 풍화로 형성된 점토의 일종인 벤토나이트로 둘러싸기로 했다. AINS그룹은 일본·체코·헝가리·영국에서도 사업을 진행했고, 한국에서는 월성원자력본부의 중저준위 방폐장을 한국전력·한국전력기술과 함께 설계했다.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영구처리시설 설계에도 참여,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영구처리시설 비용 추산과 콘센트 디자인 등을 담당했다. 아우티오 본부장은 “지질환경은 다르지만 한국에서도 적합하고 안전한 부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부지 선정 후 건설까지 걸리는 시간만 최소 20년이 필요한 작업인 만큼 충분한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헬싱키·에스포(핀란드)=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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