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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마녀 사냥

2014.06.30

- 문창극 사태의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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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이름을 날리던 문창극 씨가 꼭 총리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첫째, 그는 게임의 비평가 내지는 해설가였기에 게이머로서도 꼭 잘하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문학 평론가가 작가보다 더 좋은 문학작품을 내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 비평가가 감독보다 더 좋은 영화를 만들었다는 얘기도 별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둘째, 논조로 본 그의 사고는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때로 경직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니 완고한 원칙주의자 박근혜 대통령에게 위안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국민화합을 다짐하며 출범했던 박근혜 정부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친일 반민족분자’라는 비난은 단지 그의 발목을 잡고 싶었던 졸렬한 자들의 얼토당토않은 궤변이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궤변만을 근거로 진실을 외면하고 그의 낙마를 획책한 정치권의 작태에 환멸을 느낍니다. 오로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오로지 자기 파당에 이롭지 않다고 거짓으로 민중을 선동해 멀쩡한 사람을 반민족분자로 몰아가는 비열한 행태에 비애를 느낍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 지명 이후 구설에 오른 문제의 연설 동화상을 몇 번이나 찬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했다는 그 연설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듣기 거북할 정도로 신의 섭리를 강조했습니다. 또 평소 원조든 간섭이든 미국의 영향력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듣기 싫을 정도로 미국에 의지하는 듯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일본과 관련된 언급은 ‘우리가 좀 더 일찍 깨어 있어야 했고 더 성실해야 했다. 일제 식민통치는 그러지 못한 우리 민족을 하늘이 단련시키기 위해 내린 고난이다. 우리 민족을, 이 나라를 써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라는 정도. 솔직히 말해 그 연설은 모든 걸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소위 ‘예수쟁이’들의 상투적인 자아반성인 동시에 하늘이 우리를 크게 쓰려 함이라는 선민의식의 표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오래전 젊은 시절 먼 곳에 사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그가 신혼여행을 떠난 사이 인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한때 기울었던 가세를 번듯이 일으켜 세운 그의 누이가 막 세상을 뜬 직후였습니다. 친구의 모친은 하나님이 딸 하나를 거두어 가시고 대신 다른 딸을 주셨다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게 기독교인들이 세상일을 받아들이는 자세입니다.

문제의 연설은 KBS 뉴스로 보도되면서 뜻밖의 사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마치 연설자가 일본 식민통치를 하늘의 뜻으로 당연시하는 양 발췌, 왜곡, 편집되어 한순간에 연설자를 ‘친일 반민족’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인격 살인입니다. 그것이 소위 공영방송의 보도 독립성을 훼손했다며 파업으로 사장을 몰아낸 KBS에서 빚어진 사건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이용하기 적절한 대목만 골라 악의적으로 비틀어 짜깁기하고 확대 해석한다면 어느 누구라도 친일분자나 반민족분자로 만드는 것쯤 식은 죽 먹기일 것입니다. 성서의 복음조차 악마의 주술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한일 관계는 아베 집권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고, 군 위안부 동원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망언과 망동에 우리의 국민감정은 극도로 격앙되어 있습니다. 이런 때엔 친일, 아니 일본과의 관계를 거론하는 것만도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일제 식민통치를 하늘의 뜻이라 했다고?” 그렇게 총리 후보자를 ‘친일과 반민족 역사관의 거미줄’에 얽어맨 자들은 지금 ‘또 한 건 했다’며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그런 자들의 저의는 무엇일지. 사태를 지켜보며 일찍이 이 땅에서 벌어졌던 끊임없는 당파싸움과 숱한 목숨을 앗아간 사화(士禍)들이 떠올라 참담한 기분입니다.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이념 대립이 심각했던 1950년대 초반 미국 땅에는 ‘매카시즘(McCarthyism)’이 기승을 떨었습니다. 동서 냉전이 지속되며 공산주의 팽창에 대한 불안이 고조되는 분위기를 이용해 정적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거세하는 악랄한 정치 광풍이 정계에 몰아친 것입니다. 매카시가 점찍은 인사들은 오도된 여론의 심판대에 올라 변변히 변명도 못해보고 쫓겨나야 했습니다. 한동안 대통령, 장관은 물론 양심 있는 사회 지도자, 지식인들조차 그 위세에 눌려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사회가 이성을 회복한 다음에야 매카시즘은 ‘현대판 마녀 사냥’으로, 미국의 부끄러운 현대사의 한 장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진실을 뻔히 알면서도 왜곡되고 과장된 보도에 기대어 소위 야당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총리 후보자의 자진 사퇴와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파렴치하고 야비한 일입니다. 그런 것이 새 정치인지, 오로지 정부를 흔들기만 하면 민심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소위 여당 지도자라는 사람들도 세론의 눈치를 보아가며 오락가락했습니다. 무책임하고 비겁한 일입니다. 그런 리더십으로 과연 집권여당의 구실을 할 수 있을지,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극과 극으로 갈리는 언론들의 보도 자세는 우리 사회의 극심한 분열상을 웅변적으로 말해 주었습니다. 언론사 가운데 사실이나 객관성을 외면한 KBS의 편향적 왜곡 보도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용기를 보인 곳도 있었습니다. 반면 다른 어떤 검증 노력도 없이 오로지 KBS의 왜곡된 보도만을 근거로 총리 후보자를 '일제 강점을 합리화하는 식민사관을 가진 친일분자'로 매도한 곳도 있었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고 진실과 공정성을 생명으로 알아야 할 언론조차도 편이 갈려 제각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누군가가 의도했던 대로 또 한 편의 굿판이 끝났습니다. 문창극 후보자는 끝내 자진 사퇴의 길을 택했습니다. 한때 범법자였던 자들이 주도하는 국회 청문회는 열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런 걸 성공으로 치는 모양입니다. 성공한 의원들과 실패한 총리 후보자, 수평저울에 함께 달아보고 싶습니다. 후보자에 대한 평가가 200여 명의 선량(選良?) 가운데 어느 누구에게도 못 미친다 하더라도 불순한 의도로 왜곡되고 과장된 자료와 정보로 한 인간에게 더러운 누명을 씌워 모욕하고 매도하는 못된 행태는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되어야 합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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